영혼이 따뜻했던 날

from diary 2010/11/20 12:26

 

 

성은이랑 부산비엔날레 다녀와서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오니 엄마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어. 그리고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눴지.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순간이었어. 그 어느때보다도 우리의 영혼은 따뜻했어. 삼년간 난 참 많이도 외로워했어. 일주일에 다섯번은 울었어. 거의 매일 울다시피 지냈지. 한달에 울지 않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일 정도로 많이 힘들어했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엄마 또한 힘들었지. 물론 아빠도 힘들었고. 엄마가 그러더라. 내가 얼마나 서러워하고 외로워하고 쓸쓸해했는지 알았다고. 내 영혼의 작은 움직임들까지 다 느낄 수 있었는데, 어떤 순간은 외면하고 싶었대. 그래서 외면했대. 난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감기는 애였대. 내 모든 것을 받아줬어야 했는데, 그런것을 알면서도 외면해서 미안하대. 마음이 너무 아팠어.

 

엄마가 나의 아주 미묘한 영혼의 울림까지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느껴지니까.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알아. 그리고 내가 엄마를 얼마나 많이 괴롭혔는지도. 엄마는 한시라도 나에게서 벗어난 적이 없어. 나만큼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엄마를 나는 무려 삼년 동안이나 붙들고 있었어. 이제는 놓아주려해. 어쩔 수 없었어. 이건 엄마도 잘 알고 있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엄마 뿐이었으니까. 준호에게도 올 일년 동안은 많이 의지했지. 엄마와 준호에게 미안해. 아 나는 있잖아. 너무 슬펐어. 응. 이건 정말 글로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다. 너에게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을 말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 같아.

 

날 이해했어. 아주 깊숙한 곳까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는데 너무 힘들었다. 엄마는 삼년간의 그 고통의 시간들이 앞으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거래. 엄마의 말을 들으니까 정말 힘이 났어. 얻은 것도 많겠지만 잃은 것이 더 많았던 것처럼 느껴져서 무척이나 공허했었거든. 그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들이라 여기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근데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수능 끝나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확실히 그 시간들은 나를 성장시킨 것 같아.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하는 생각들을 들어보면 내가 일 년 전에 했던 생각들과 너무나도 같더라고. 난 친구들보다 일년 더,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삶을 살아냈던 것 같아. 일찍 고생한게 좋은 것 같기도 해. 어차피 겪게 될 것이니까.

 

단지 빨리 겪었을 뿐이지. 그러한 고통들은 언제일지 몰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겠지. 난 그걸 10대에 겪었을 뿐이고. 10대에 겪어서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이제는. 엄마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어. 그리고 나 또한 엄마를 위로했고. 힘들어하는 날 보면서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 엄마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내게 힘이 되지 않을거란걸 알고 있었대. 그래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대. 근데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어. 그래서 난 괜찮아. 그리고 엄마가 외면한 순간들마저도 난 이해할 수 있어. 엄마가 나를 이해하는만큼 나 또한 엄마를 이해하고 있으니까. 난 엄마가 참 좋아. 엄마를 사랑해. 정말로.

 

이제 모든게 정말 끝이 났어. 곧 있으면 한예종 시험치러 서울 올라가. 내일이면 시험을 칠거고. 내가 한예종을 가게 될지 대구대를 가게 될지 대구가톨릭대를 가게 될지, 아니면 세 곳 다 떨어질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엄마가 그랬어. 그 세 곳 모두 다 떨어져도 새로운 길이 있을거라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들부터는 내게 좋은 일만 일어날거라고. 그 어떤것도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힘들지는 않을거라고. 엄마 말이 맞아. 내게는 어떠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거든. 응, 정말 그런게 느껴져. 그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는 힘. 그래, 내 안의 힘이 생긴 것 같아. 내가 그토록 바랬던 그 힘 말이야.

 

엄마가 얼마나 깊은 사람인지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 정말 난 복 받은 사람이야. 엄마를 만난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복인 것 같아. 아 뭔가 할 말이 많은데 마음이 뭉클뭉클해서 글을 못쓰겠어. 그냥 갑자기 지난 삼년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그냥 참...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너에게도 고마워. 날 오랜시간동안 지켜봐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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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0 12:26 2010/11/20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