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from diary 2010/12/03 02:55

 

 

땅 속에 있으면 답답하고

땅 위에 발 붙이고 서 있으면 지루하고

하늘 위에 떠있으면 어지럽다.

 

땅 속에 있으면 편안하고

땅 위에 발 붙이고 서 있으면 다행이고

하늘 위에 떠있으면 황홀하다.

 


 

자라고 있구나

자랐구나 하는걸 많이 느끼고 있다.

 

모든 것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더라. 정말로.

그리고 지금의 모든 것들도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

똥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든 다 좋겠단 생각.

 


 

아가페 정신으로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게 옳은 것 같고.

 

준호 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건지

아니면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곁에 있어준 사람을 사랑하는건지 혼란스럽다.

어찌되었든, 내가 준호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는 확실한 사실인데 굳이 이유를 따진다면 뭘까.

 

준호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고 있는걸까.

이해받길 바라면서 이해하지 않는 내가 과연 준호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준호도 좋아해주길 바라고, 내게 관심 가져주길 바라지만 나는 그러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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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준호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단 한번도. 아마.

내가 배려하지 않은 것인지 배려하지 못한것인지 배려라는걸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내 배려가 부족한 것인지. 내가 이기적인건지 모르겠다.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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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준호와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려 노력하지만 그러기란 쉽지 않다.

부딪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자꾸만 부딪치게 되는 많은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관계를 지속시켜나가고 싶다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걸까.

아니면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일까. 아니 둘 다 일지도.

함께해줘서 고마운건 사실이다.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요즘들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슬퍼진다.

애써 그런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준호가 알았으면.

왠지 그렇게 느낄 것만 같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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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어서 자주 운다. 그리고 또한 고마워서.

 


 

사람들은 의외로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A라고 느꼈던 것을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 했을 때.

아 사람들은 의외로 같은 것을 느끼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신기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네가 있어 다행이다 라는 생각.

지금의 내가 있어 다행이다 라는 생각.

 

이 정도의 복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이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깊은 안도.

 

그제는 집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재랑이에게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제, 결국 재랑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재랑이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지난 삼년의 시간이 떠올라서 눈물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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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쉽게 말한다.

 

걸러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말하는 순간에는 더더욱.

내뱉는다.

 

그리고 너는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왜 네가 상처 받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너는 내게서 미안해하는 태도를 찾지 못한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사이인줄 알았는데

네가 상처를 받으면 나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이내 그렇지 하고 이해한다.

 

더 큰 마음을 가져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가까울수록 더 조심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는 더 배려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지친다.

그러다 힘내고.

그러다 지치고.

 

지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어떠한 일을 지속시켜야하는 사명감을 띤 사람처럼.

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갈 뿐.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갈 뿐 이라고 써놓고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다 되는거니? 상대방의 마음은 배려하지 않고?'

라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속의 준호가 내게 하는 말.  지워버릴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둔다.

 

이런점에서 보면,

난 정말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다. 인정.

 


 

누가 날 좋아하는 것 같다 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나도 느꼈던거다. 내가 둔한 편은 아니라서. 그런게 다 느껴진다. 미묘한것까지.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 라는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지 않다 라는것까지 느껴진다.

 조금은 피곤한 일….

 

어쨌든 그 누군가가 날 좋아하는건 분명하다. 그게 사랑이든 아니든.

나도 물론 좋아하고. 좋은 사람이다. 쿠쿠.

 


 

어제 오전에 늦게 일어나서 요가 못갔고,

저녁에는 재랑이랑 경아랑 민진이랑 대화하는게 즐거워서 안갔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야되는데 잠이 안온다. 그래서 컴퓨터를 켰고, 또 이렇게 긴 글을!

 


 

아, 어제는 길거리 홍보를 했다. 사진 찍는다는걸 깜빡.

좋은 경험이었다.

아, 그리고 사람들이 리플렛을 버리면 어떡하나 했는데 아무도 버리지 않았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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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02:55 2010/12/03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