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아닌 문제

from diary 2010/12/20 14:46

 

 
誰も知らない (아무도 모른다 Toy Piano Ver.)를 오후내내 듣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이 음악을 들었다.
 

 

그러니까 늘 이게 문제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들이 일처럼 되버리니까 하기 싫어지는거지. 즐겁게 하려고 해도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거나 그것들이 내 시간을 없애버린다러나 하면 그만하고 싶어져. 그런데 그것들이 내 시간이 될 수는 없다는게 더 슬퍼. 그러니까 내 시간이라는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뜻하는건가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러한 것들은 내 시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아. 나를 위한 것 같지 않다고. 나를 갉아먹고 있어. 힘드네. 그래 힘들어. 이걸 그만둘 수도 있지. 그런데 이걸 그만두면 그건 또 나를 위한 것 같지 않을걸. 결국 지금은 나를 갉아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이것을 지속시켜나가야해. 지속시켜나갈 힘이 필요한데 그걸 타인에게서 얻으려 한다면 난 더 피곤해질것이 분명해. 그래서 나는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 늘 이런게 반복되는거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늘 이게 문제야' 라고 할 만큼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 그냥 그렇다는거지. 그렇다ㅡ.

 


 

집을 부숴라 부숴. 어째서 집에서라도 고요해야할 연말에 공사질이니. 너희는 지금 다른 집에서 고요하게 지내고 있겠지. 여기가 시끄럽다는 것 조차 너희는 모르겠지. 그것에 대해 나는 화가 나. 그래 나는 지금 화풀이 대상을 너희로 잡았어. 어차피 너희는 내 말을 듣지 못할테니. 이왕 너희에게 화를 내기로 한 거 더 말할게. 있잖아. 살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그러니까 최소한의 예의라는게 있잖아. 윗집에서 쿵쿵거리면 아랫집이 시끄러우니 사뿐사뿐 걸어야한다던지 그러한 아주 기본적인 것들. 너희는 지금 날 아주 못살게 굴고 있어. 난 지금 굉장히 예민한 상태인데 그 드르르륵 거리는 소리로 날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날 좀 쉬게 내버려둘 수 없어? 집에서는 고요하게 보내고 싶은데 어째서 내 집인데도 그게 안되는거지. 그러니까 나는 그냥 지금은 좀 쉬고 싶다고. 그냥 그냥 그렇다고. 모르겠어?

 

이래서 아파트가 문제야. 진짜. 시골로 가버리겠어ㅡ. 근데 시골로 가면 이러한 소음도 없어서 외로워질까? 이러한 소음을 그리워하게 될까. 그건 정말 미친짓인데 말이지. 사실 나는 지금 미친짓을 하고 있지. 사람들 속에 있는데 사람들 밖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 미칠듯한 우울감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정말 이건 미친 짓 아니야? 이러다가 또 철저히 고립되면 그 때는 또 사람들과 북적거리던 때를 그리워하겠지. 내게 현재의 만족이란 없는걸까? 어째서 늘 반대 방향을 향하려고 애쓰는거지. 정말 이건 내 문제야. 이럴거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도 빨리 와버려 당황스럽군.

 


 

준호야 라고 불러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이제는 준호야 라고 불러. 그런데 웃긴건 이러한 작은 변화가 날 행복하게 만든다는거야. 풋풋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기야 라고 부르는것보다 준호야 라고 부르니까 더 친밀해진 느낌이야. 확실히 이름은 중요해. 준호도 내게 정현아 라고 부르는데 내 이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내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익숙한 느낌. 이런 모순적인 말 따위 싫은데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되네. 어쨌든 쉽게 말해 좋다는거야. 으하하하하하. 그리고 난 지금 준호랑 아주 잘 지내고 있지. 우린 아픔을 보듬어주고 있어. 그래, 생각해보니까 준호와 내가 헤어질 수 없는건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어. 그것마저 사라진다면? 글쎄. 아니 그게 없었다면? 글쎄. 어쨌든 나는 준호가 좋으니까.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준호가 채워주니까. 아니 내가 준호로부터 내 마음을 채우려 노력하니까. 내가 말이야. 하긴, 이런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쨌든 좋으면 됐지. 그래 누구말처럼 좋은게 좋은거지 그걸 굳이 따지면서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래도 좀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은 별로야.

 


 

좋고 싫음이 분명해서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답답해. 분명히 마음속에는 좋고 싫음이 분명할텐데 그것을 뭉술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보면 가끔씩은 짜증이 나. 그건 그 사람의 성격이니까 싫어할 수는 없는데 짜증이 날 수는 있는거겠지. 예를 들어 어디 가자 라고 했을 때 거기에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래 하고 말하는게 내 눈에는 다 보이니까 내가 피곤해. 그게 안보이면 뭐 짜증도 안나겠지. 그러니까 거짓과 가식이 보인다고. 아니 거짓과 가식이라고 표현하는건 좀 그런가. 그러니까 분명 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게 보이는데 그걸 맞다 라고 표현하는게 안쓰러워. 그리고 안쓰러움을 넘어 짜증이 나고. 말해버려! 라고 말하고 싶다니까.

 

그리고 있지. 내 성격이 피곤한 성격이란걸 최근에 알게 됐는데 말이지. 그래, 누구말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가 있어. 그래 좀 틀렸으면 좋겠군. 그런데 문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자꾸만 들어맞으니까 괴롭다는거야. 그리고 조금은 두렵고. 내가 나의 그러한 예측력이랄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과신하게 될까봐. 나의 판단력을 믿고 상대를 판단해버리고 단정지어버릴까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순식간에 판단되버리는 것들은 조금 감당할 수 없다. 판단'되'는 그 찰나를 내가 감당할 수는 없지. 그걸 내가 감당하지 못하다니 웃기군.

 

그리고 또 이러한 성격이랄까 능력이랄까 하는 것들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서움을 불러일으킨다는거야. 내 마음을 간파당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정현아 넌 정말 무서워'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혹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면 뭔가 나의 능력에 우쭐하게 되고(이런걸 난 두려워해) 또 조금은 슬퍼져. 결국은 나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니까. 물론 그 반대로 나의 그러한 능력을 잘 써먹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이건 분명히 주관적인 것이고 객관성이 될 수 없는데 나의 시각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 나쁘지는 않지만 그것도 나는 조금 두렵다. 내 판단으로 인해 모든게 결정될까봐.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내뱉지 않으려고 해.

 

상대는 나를 무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러한 것들이 무겁다. 믿음의 무게는 이토록 무거운것일까. 알면 알수록 난 더 힘들어지네. 관찰자적 입장으로 산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해. 양쪽을 다 보게 되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오해만 하고. 자기식대로 생각한다. 그러면 난 또 답답해져 그건 아니지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 또 내게 뭐라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분명 오지랖이지. 내가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거다. 관계를 도와주고 풀어주는건 좋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건 자기네들이 알아서해야지. 제3자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제3자는 그저 지켜보는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

 

그렇지. 그리고 그러한 것을 말했을 경우, 내 생각일 뿐인 판단을 옳은 것이라 믿을 수 있다. 그래서 난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음 분명해지는군. 그래 이제는 입을 꾹. 그냥 그대로 지켜보기. 이건 마치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래. 영화 좋다. 아마 이러한 관계들을 지켜보는건 내가 영화를 하고 심리학을 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 아 그렇다고 사람들을 '이용' 한다 라는 의미는 아니고. 아 뭐 이용한다고 치자. 그게 나쁠건 없지. 내가 공부하게 될 심리학과 내가 만들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된다면 좋은거니까. 음 이런식으로 좋게 생각할수도 있군. 그런데 그 당사자도 당사자지만 보는 나도 힘겹다. 보지 않으려 하는데 그것도 막상 잘 안되고. 즐겨야겠지. 어렵네!

 

상대가 나에게 또 뭐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듣는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더 선명해진다. 그러면 나는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그 전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더 잘 파악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결국 타인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그러니 정신적 피로도가 심할 수 밖에 없다. 난 내 일만 생각해도 충분히 피로도가 심한 사람인데 타인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관계까지 알게 되니까 더 피곤하다. 그러면 난 쉬고싶어지고 잠수타고 싶어지고. 결국 또 혼자 있고 싶어지고 더 외로워지고. 아 정말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결국 그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는 눈과 귀와 막아야겠지. 그래야 상대방의 표정이나 마음을 읽지 않을 수 있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을 수 있겠지. 그런데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지 않다는게 문제지. 히히. 그래서 결론은 이러한 것을 즐기자 인데 그래 나도 알고 있어. 그리고 누구말처럼 이것을 잘만 활용한다면 능력 있는 심리학도가 되겠지. 심리학도로서 좋은 자질을 갖춘 사람 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난 피곤해! 그러니까 나는 내가 피곤하다 라는 것을 너에게 말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싶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그런건 별 상관이 없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내가 이렇다 라는 것을 말함으로써, 그 말하는 행위로도 충분히. 아마도.

 


 

지금도 드르르르르르르륵ㅡ....

밖에 나가야겠다. 사람들 속으로. 책 속으로. 나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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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14:46 2010/12/20 1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