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자동차와 텔레비전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조상들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력으로 여행을 한다. 움직임의 기술은 - 자동차에서부터 그칠 줄 모르게 뻗어 있는 콘크리트 고속도로까지 - 인간의 정주지가 고밀 도심에서 주변 공간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공간은 그러므로 순수한 움직임의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자동차로 얼마나 통과하기 혹은 빠져나가기 쉬운지를 기준으로 도시공간을 계측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힘에 종속되어 있는 도시 공간의 외관은 반드시 중립적이어야 한다. 운전자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최소화되어야만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운전을 잘 하려면, 표준화된 표지판, 중앙분리대, 배수관, 그리고 다른 운전자들만이 존재하는 도로가 있어야 한다. 도시공간이 단지 움직임의 기능만을 할 때, 공간 그 자체는 활기를 잃게 된다. 운전자는 공간을 뚫고 지나가고 싶어할 뿐, 공간에 의해서 자극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육체라는 물리적 조건은 공간으로부터 감각의 분리를 강제한다. 속도 자체만으로도 지나가는 풍경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속도 상자(sheath of speed)가 발달하는 것만으로, 차를 운전하는 데 필요한 동작인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가볍게 밟는 일과 백미러를 보는 눈의 작은 움직임은 마차를 운전하는데 필요한 힘든 육체의 움직임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현대 사회의 지형을 항해해 나가는 데는 아주 적은 육체적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므로 접촉(engagement)도 적다. 실제로 도로가 직선화되고 표준화됨에 따라 여행자는 가장 단순화된 환경에서 미세한 동작만으로 이동하면서,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건물을 알 필요가 점점 더 적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새로운 지형은 대중 매체를 강화시킨다. 여행자는 텔레비전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마취된 상태에서 경험하게 된다. 유체는 수동적으로, 공간에서 둔화되어 조각나고 불연속적인 도시 지형내의 목적지로 이동하게 된다.

 

고속도로 기술자와 텔레비전 연출가는 둘 다 "저항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창조한다. 기술자는 방해물, 노력이나 접촉 없이 움직일 수 있는 통로를 설계한다. 연출가는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너무 불편하지 않은 채로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영화를 본 후 내 친구로부터 사람들이 물러서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친구의 다친 육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경험에 의해 흔적이 남고 제약받는 실제의 육체가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체를 저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소망은, 현대 도시 설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접촉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있다. 예를 들어, 계획가는 주거지구를 업무지구로부터 격리시키는 쪽으로 교통량을 유도하거나, 강을 주거지구 가운데 배치해서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 혹은 인종이 다른 지역을 분리하려 한다. 계획가는 지역사회 개발에 있어서, 학교나 주거지구를 사람들이 외부인들과 접촉할지 모르는 주변보다는 지역의 중심에 건설하고자 한다. 담장이 있고, 문이 설치되고, 경비가 잘 되어 있는 계획된 지역사회가 구매자들에게 좋은 삶의 인상을 주면서 점점 더 많이 팔려나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쟁영화를 본 상점가 근처의 교외에 대한 연구에서 사회학자 바움가트너는 "일상생활을 기준으로 할 때, 생활은 갈등을 부정하고, 최소화하고, 억누르며 피하려고 하는 노력으로 채워져 있다. 사람들은 대립을 멀리하고, 잘못을 비난하는 것과 불평거리를 찾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접촉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기술은 그러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 오늘날의 질서란 접촉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 즉 육체를 무감각하게 하는 현대 기술과 연합한 현대 도시의 넓게 확장된 지형의 근거가 현대 문화의 몇몇 비평가들이 현재와 과거사이에 커다란 불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게 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역사적으로 특이한 현상으로 보일 정도로 감각 중심의 현실과 육체적 활동이 손상되었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원인을 도시 군중의 변화한 성격에서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 때 도심에 빽빽이 차있는 밀집된 육체였던 대중이 오늘날에는 흩어져 버렸다. 대중은 지역사회와 정치 권력의 더욱 복합적인 목적보다는 소비를 위해 상점가에 모인다. 현대 군중에게는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위협인 것이다.

 

- 리차드 세넷, <<살과 돌 - 서구 문명에서 육체와 도시>>, 문화과학사, 15p~18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