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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의 날적이

한 택배 노동자의 글이다.

택배라... 흠...

 

 

http://lastmarx.blog.me/70086893967

 

오창엽의 날적이 - 1. 택배 ①

 

나는 안양에서 살고 그 지역에서 일하는 택배배달원이다. 중학교 때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산동네에서 야구하며 살았고 고등학교 때는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에 살며 문학에 심취했다. 80년대 말에 들어간 대학에서는 사회변혁을 진지하게 모색했으며 그 후로 평생 혁명을 주제로한 책들을 탐독했다. 20대 후반 안양의 신도시 평촌으로 이사했고 피시통신 나우누리에 맑스주의연구회를 만들며 온라인에서의 소통과 학습과 조직을 실험했다. 세기말에 진보정당들이 창당했고 서른 즈음부터 청년진보당-사회당에서 주로 활동했다. 금세기 초 서울 독산동에서 살다가 결혼 후 몇 년 전 다시 평촌으로 돌아왔다.

 

신문사총무, 지하철공사장인부, 출판사영업사원, 중앙당 상근자, 신문사 기자, 사회단체 상근자 등의 일을 했는데 두 아이가 자라자 가족의 생계비를 꾸준히 버는 일을 찾다가 우연히 택배일 을 하게 되었다. 택배 배달기사로 일한지 일년 반이 지났다. 거주지도 일터도 배달 구역도 안양이어서 출퇴근시간이 총 30분도 안 된다. 차에서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고 언제든 담배를 실컷 피울 수 있다는 점들 때문에 택배일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었다.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만 주구장창 들여다보는 일들이 지겨웠다. 땀 흘려 노동하고 밤엔 책을 읽는 즉 주경야독하고 생활을 하고 싶었다.

 

나는 안양의 택배노동자

 

택배를 하려면 우선 1종면허와 1톤탑차- 트럭의 짐칸에 사각형으로 지붕과 옆면을 만들고 냉동시설을 갖춘 -가 있어야 한다. 개인이 차를 구입해야 하고 물류회사를 거쳐 택배회사에 지입으로 들어가거나 대리점의 차를 인수해야 한다. 하는 일은 분명 3D업종의 노동자인데 법적으론 모두 개인사업자로서 사장이란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아침 6시까지 출근한다. 5시 반에 일어나 씻고 집을 나선다. 아침을 차려 먹거나 집이 좀 떨어진 사람들은 4시 반에도 일어난다. 일터에 도착하면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며 담배 한 대 피우고 그날 배달할 전체 짐들을 동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봄여름엔 한 시간 정도 짐을 나르고 가을겨울엔 농산물이 많아서 두 시간 정도 작업한다. 쉴새없이 무거운 짐을 나르기에 하루 중 가장 힘든 과정이다.

 

중간에 한번 전체적인 커피 시간을 갖고 분류를 모두 마치면 다시 각자가 그날 배달한 물품들을 확인해가며 배달준비를 한다. 차에 배달할 순서와 반대로 안쪽부터 차곡차곡 짐을 싣고 8시 반에서 9시쯤 출발한다. 하루에 100~200개 정도 배달하는데, 시간당 스무 개 정도 배달하므로 3분에 하나 꼴이다. 3분 동안 차에서 짐을 꺼내어 집이나 사무실이나 상가에 방문하고 없으면 전화하고 맡겨달라는 곳에 갖다놓고 차로 돌아온다. 그 짧은 시간에 무언가를 처리하려면 동작이 굼뜰 수가 없다. 운전도 매우 거칠게 빨리 하며 주차의 달인이 되고 어떻게든 시간을 단축하려고 잔머리를 굴린다. 140개의 배달을 마치려면 7시간 내내 운전하고 적당한 곳에 정차하고 물건을 들거나 수레로 끌고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화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점심을 거르거나 빵으로 때우는 이들도 많다.

 

초보자들은 주로 아파트부터 시작하는데 지리를 파악하기 쉽고 주소분명하며 경비실 등 맡길 곳도 정해져있다. 다만 고층아파트가 섞여서 시간당 15개 하기 힘들다. 주택가를 일반번지라고 하는데 코팅한 지도위에 유성싸이펜으로 번지수에 따라 표시해놓고 그것을 보면서 코스를 잡는다. 주택가는 좁은 골목을 누비며 주정차를 어디에 하는가가 관건인데 익숙해지려면 몇 개월 걸린다. 몇 달만 배달하면 주민 이름, 어느 층에 살고 물건을 어디에 맡기는지 파악하게 된다. 가장 배달하기 좋은 곳은 관공서, 대기업, 대형공장 등인데 대부분 정문경비실이나 문서수발실 직원에게 한꺼번에 맡긴다. 시간당 30개도 가능한데 먼저 입사한 사람들이 그런 알짜배기 지역을 차지하므로 초보자들은 넘보지 못한다. 보통은 자기 지역에 아파트도 있고 빌라 등의 주택가도 있고 그 사이사이에 상가들도 있다. 상가는 대부분 1층에 있고 문이 열려 있고 언제나 직원이 있기에 배송이 빠른 편이다.

 
 

오창엽의 날적이 - 2. 택배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

 

내가 일하는 곳엔 35명 정도의 동료가 있는데 일년 반 동안 십수 명이 그만두었다. 그만큼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택배를 받아보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일 자체는 금방 익숙해진다. 그보다 연락이 안 되어서 전전긍긍할 때가 가장 괴롭다. 여름에 생선이 든 아이스박스, 가을에 과일박스를 붙잡고 전화를 안 받아서 오도 가도 못할 때 시쳇말로 돌아버린다. 물건 하나 처리하느라 30분 정도 소모하면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택배 언제 오느냐는 전화가 빗발친다.

 

택배기사들은 모두 차를 가져오고 끝나는 시간이 다 달라서 육체노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끼리 술을 마시지 않는다.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바퀴 밑의 눈을 치우며 배달한다. 오직 일요일과 공휴일만 쉬는데 명절 때는 일요일에도 일한다. 종일 걷고 제대로 밥을 못 먹고 잠을 적게 자다보니 누구나 몸무게가 준다. 석 달 안에 7~10킬로는 기본인데 나는 84킬로에서 66킬로로 줄었다. 몸은 건강해지고 힘도 좋아지는데 얼굴에 살이 빠지다보니 좀 늙어 보인다.

 

월급제가 아니고 각자가 배달한 만큼 배달료를 받기에 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절대 노동시간이 12시간 넘고 신경 써야 하는 게 많아서 노동강도도 센 편이다. 아프다고 쉴 수도 없고 휴가도 없으며 기름값, 보험료, 분실파손비용, 전화요금 등을 모두 택배기사가 부담한다. 그러다보니 할부로 구입한 차비용을 갚고 나면 바로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돈을 버는 건 물류회사와 택배회사다. 노조를 만들 수 없기에 파업도 못하고 고객과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불리한 입장에서 책임져야 한다.

 

세상에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불친절하고 교양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날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대면하고 통화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몇 달은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어느덧 중고참이 되었고 나는 늘 신입들에게 요령을 가르쳐주고 이것저것 잘 챙기는 편이다. 평생 힘든 일만 해온 형님들도 많고 대학을 못 다닌 청년들도 많이 들어온다.

 

착하고 착실해서 천대받는 사람들

 

나 역시 모든 고객과 직원과 경비원들에게 무시당하는 택배노동자지만 힘들고 정직하게 일하면서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측은한 마음을 갖고 있다. 연륜이 쌓이고 좋은 구역을 차지한 고참들은 바뀌지 않고 늘 특정 구역의 사람만 교체된다. 알면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대부분 차를 구입하고 난 다음에 일을 배우면서 자기 구역의 효율이 적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 일하면서도 수입이 적은 신입들을 보면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어진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지만 착실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 많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가 그러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천대받고 손해보고 그저 작업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다.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생으로 공부하고 상근자로 활동하고 정당운동을 해왔는데 마흔 즈음에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가끔 우리 집에 방문하는 동료들은 집안 가득히 꽂혀 있는 책들과 음반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육체적으로 힘들다보니 저녁에 퇴근해서 음악 들으며 책을 읽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고 10시만 되면 잠이 쏟아진다. 그렇게 일년 반을 살았다. 앞으로 얼마나 이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땀 흘려 일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들에게 먹을 걸 사주고 선물하는 것이 삶의 낙이다. 다만 평일에 먼 지역에 가지 못하고 옛 동무들을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게 무척 아쉽다.

 

 

 

명절 택배 전쟁

 

하루 수백만개가 움직이는 택배공화국.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싸고 빠른 배송서비스는 없을 것이다. 전국이 익일배송이고 심지어 당일배송도 늘어나는 추세다. 미친 세상이다. 세상사가 이렇게 빡빡하고 화급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안타깝고 한심스럽다. 그런 시스템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행복할 순 없다. 

 

내일까지 일을 해야 명절연휴에 들어서지만 이번 추석명절 배송은 오늘로서 거의 마무리 되었다. 연휴가 화수목이다보니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추석배송전쟁은 예년보다 수월했다. 특별히 폭발하는 날 없이 꾸준히 많다가 줄어들었고 토요일과 일요일과 오늘 월요일은 아주 적었다. 택배는 월요일에 적고 화요일에 가장 많은데 지난주 화요일과 이번 연휴 사이의 시일이 멀기에 명절 전 화요일 대폭발이 없었던 것이다.

 

택배물량은 사람마다 구역마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하나를 배송할 때 택배기사에게 돌아가는 몫도 회사마다 다르다. 초보자가 아니면 하루에 100개 이하를 배송하는 택배기사는 없다. 평균잡아 150개라고 치자. 비수기인 봄과 여름엔 120개 이하고 가을과 겨울엔 150개가 넘는다.

 

명절에는 그 수가 배가 된다. 150개 나오던 구역에서 300개가 나온다. 그러니 일은 배로 힘든다. 산술적으로 그렇지 실제로는 훨씬 힘들다. 15개가 30개가 되는 것과 150개가 300개가 되는 것은 동일한 두배가 아니다. 시간당 20개를 배달하더라도 200개면 꼬박 10시간을 쉬지 않고 배송해야 한다. 하지만 똑같이 새벽에 출근해도 분류하는데 시간과 힘이 많이 들어서 출발시간이 매우 늦어진다. 8시부터 150개 배달하다가 10시부터 200개 배달하려면 앞이 깜깜해진다. 아르바이트를 쓰거나 가족이 동원된다.

 

게다가 명절 땐 과일박스 주문이나 선물이 많아서 부피가 커지고 무게가 늘어난다. 과일박스 150개를 차곡차곡 실으면 1톤탑차가 꽉찬다. 그러다보니 두번 세번 싣고 나간다. 생선이나 전복이나 한우 등도 늘어나는데 그런 생물은 반드시 통화하고 주소확인하고 맡겨야 하기에 처리시간이 늘어난다. 무게와 성격 때문에 배로 힘들다. 산술적으로 명절 땐 평소보다 4배로 힘들고 비수기에 비하면 그보다 훨씬 힘든 것이다.

 

추석 땐 시골에서 농산물이 많이 올라오고 설 땐 춥다. 그래도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추석 전 주는 비가 자주 왔다. 비가 내리면 시야가 좁아져서 운전 및 주차가 힘들고 가끔 우비를 입어야 하기에 몹시 덥다. 지난주에 비오는 명절물량을 치우느라 몹시 고달펐다.

 

대형평수의 아파트가 많은 구역에선 23시 심지어 새벽 1시에도 배달한다. 나는 회사와 상가가 많아서 6시 전에 그곳들을 처리하고 어두어질 때 주택가와 아파트를 배송했다. 한 이틀 정도만 밤에 일하고 그 후론 평소처럼 퇴근했다.

 

몇년 동안 일하면서 감기에 걸린 적이 없는데 이번에 심한 독감에 걸렸다. 감기는 약이 없으므로 안 먹고 일했는데 머리가 띵하고 몸에 힘이 딸렸다. 온몸이 굳고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그때 필요한 게 아니라면 명절엔 피해야 하고 평소엔 화요일에 배송되는 걸 피해야 한다. 생물이 아니면 지연배송을 할 수도 있다.

 

내내 살이 빠지다가 지난달에 몇킬로 찌고 허리도 1인치 늘었다. 사라졌던 뱃살이 다시 생긴 것이다. 그 이유는 무더위 때문에 낮에 탄산음료를 자주 먹었다. 과일음료에 비해 청량감도 떨어지고 효과도 없지만 순간적인 각성 때문에 저절로 손이 간다. 그리고 밤엔 월드컵을 보며 맥주에 과자를 먹곤 했다. 종일 땀흘리며 걷고 일해도 술과 과자와 탄산음료를 먹으면 살이 찐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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