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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경순감독
    라울-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경순감독

kmdb 다큐멘터리 초이스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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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출발은 언제나 이 현실에 대한 `부채`와 `분노`에서 부터이다. 80년대의 군부독재를 거쳐 2000년대 신자유주의적 야만의 현실까지 어느 하나 즐거이 삶의 긍정을 노래할 수 없었던 역사 속에 이곳의 다큐멘터리스트는 빚진 감정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에서 연대의 정신은 부드러운 자본의 유혹으로 치환되었고 미학적 고민은 안이한 자위로 뒷전에 놓여졌다. 우파개혁정권의 등장과 맞물려 그 기로의 정점에 서있던 2003년. 마치 당신은 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가를 질문하듯 당신의 분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정당한가를 되묻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경순 감독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독재정권 시절 의문의 죽음을 당했던 이들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의 활동을 그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대한민국에서 `사람`으로, 또는 `사람 노릇`하며 살기에 대한 감독의 깊은 분노와 성찰이 담겨져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늙은 유가족의 몫이라는 사실에 분노한 감독은 <민들레>라는 전작에서 400일이 넘는 지난한 싸움의 과정을 함께 하며 그 성과로 얻어진 위원회의 활동에까지 카메라를 이어 든다. 그리고 위원회의 활동과 그 결과를 통해 이 사회가 얼마나 진실에 둔감한지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를 두려워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감독은 이런 바깥으로 드러나는 위원회의 활동에만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위원회에 참여한 민간조사관의 열정과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그들 내부의 인식의 차이, 여성 조사관에 대한 불평등한 처사 등 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행위가 얼마나 구체적이면서도 실천적이어야 하는지를 스크린에 눈만 걸치고 있는 관객들에게 거침없이 되묻는다. 그리고 대단히 애석하게도 ‘분노’의 출발점이 되었던 유가족들이 또 다시 벌이는 싸움의 한 가운데에 감독은 다시 선다. 이렇게 영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는 진심과 너무나도 명징한 자신의 분노를 담아 이렇게 외친다. ‘나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경 순 감독은 관객들에게 반성을 요구한다. 그 방법은 저돌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고(중간 ‘문반장’과 ‘그 386’ 시퀀스는 최고의 블랙코미디) 어떨 때는 매우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뛰어난 형식미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특유의 전투적인 관계 맺기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매우 성실한 인터뷰 시도. 그리고 상황 시퀀스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촬영, 단락을 이어주는 그만의 CG 씨퀀스등으로 이 곳 독립다큐멘터리의 고유명사가 된 ‘경순스타일’을 하나씩 펼쳐 나간다. ‘경순스타일’의 백미는 이야기의 밀도를 쌓아가는 그만의 구성력이다. 자칫 이야기의 맥락이 보이지 않는 듯 하지만 그 텐션은 경순감독의 중성적인 목소리와 스타일로 묶어가며 결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시퀀스 구성력으로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다. 전통적인 ‘뉴스릴의 해설’이라는 틀에 고정되어 있던 독립다큐멘터리의 형식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매우 영리한 수사법으로 관객들은 부담스럽고 수치스러운 반성이 아닌 공감 어린 반성을 가슴에 담아 극장을 나서게 된다. 바로 성찰의 DNA가 작동하는 순간이며,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변하시킬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 라는 해답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단지 하나의 텍스트로만 읽기에는 재미가 없다. 이 작품의 전작과 그리고 그 이후 경순감독의 행보를 보면 한명의 다큐멘터리 작가가 어떻게 변화 발전해 가는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이곳의 독립다큐멘터리스트의 원형과도 같은 ‘분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로 전화되어가며 함께 읽고 나눠야 하는 예술이 되어 가는지를 볼 수 있는 것. 부끄러운 국가에 대한 유쾌한 전복이었던 <애국자 게임>, 신화화된 가족 속에 개인의 존재를 드러낸 <쇼킹패밀리>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 속의 여성 노동에 대한 응시인 <레드 마리아>까지. 여성, 노동, 국가, 가족에 대한 경순 감독의 거침없는 질주를 확인하셨다면 그 씨앗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인 것이다.

2000년대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곧고 굳은 심지와 그 전투력을 확인하고 싶은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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