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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명이 동시에 모유 수유 신기록!

만 명이 동시에 모유 수유 신기록!
 

[앵커멘트]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3.htm?linkid=197&ac=view&pid=ytn&articleid=2007050305040275517#;

필리핀에서 만여명의 여성들이 동시에 모유를 먹이는 행사를 벌였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잔에 천 만원이 넘는 칵테일이 등장했습니다.


만여 명의 필리핀 여성들이 오전 10시 정각 필리핀 전역 300여 곳에서 모유 수유를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16%에 불과한 필리핀 모유 수유 비율을 확대하기 위한 행사입니다.

아동의 면역력 강화에 필수적인 모유 수유를 권장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 행사는 기존 동시 모유 수유 기록, 3천7백 명을 깨고 기네스 북에 오를 전망입니다.


[인터뷰:데일 루트스테인, 유니세프 대변인]

"필리핀 모유수유는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모유 수유는 생존의 문제 입니다."

가장 값 비싼 칵테일이 일본의 한 호텔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한 잔에 만오천 달러.

천4백만 원 가량입니다.

마티니에 1.06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호텔은 예비 신랑 신부를 겨냥해 청혼 상품용으로 다이아몬드 마티니를 내놓았습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유럽 최대 화산인 에트나 화산이 사흘째 용암과 증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에트나 화산의 남동쪽에 새로운 분화구가 열리면서 용암 분출물들이 180m 높이까지 치솟았습니다.

에트나 화산의 용암 분출은 지난 3월이후 세 번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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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자들에게 희망은 '호흡'입니다 한국에서 사망한 네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 네팔의 시골 마을
우리는 누구도 쉽게 꺼내 펼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의 이웃이었지만 이방인의 삶을 살다가 한국땅에서 생을 마친 그들, 그리고 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이주노동자라 부릅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몰랐던 20년쯤 전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이방인으로 주위를 맴돌았을 뿐 우리네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이는 쓸쓸함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찢겨진 몸과 마음을 안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나마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여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하다 사망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는 80여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그 중 언제, 어떤 사고로 사망했는지 파악되는 사람은 60여명 남짓합니다.

죽음을 둘러싼 기본적인 정황조차 파악되지 못한 스무 명 가량의 사연은 알 길이 없습니다. 한 나라의 사망자 수만 보더라도 이러한데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전체 이주노동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가슴이 메어 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여정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심란하고 두려웠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잊혀진 존재였던 그분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통해 죄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을 만날 때마다 어찌할 수 없는 난망함이 더해져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항상 무거웠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무심한 사회

▲ 네팔 거리의 아이들
2006년 7월 8월, 네팔의 하늘은 아침에는 햇살을 강렬히 비추다가 오후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장대같은 비를 뿜어 댑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상처를 되새겨야 하는 사망자 가족들과 그런 마음을 헤집어 기록해야만 하는 복잡한 심사를 알아서였을까요. 인터뷰 하는 기간 동안 네팔 하늘은 우리를 시험이라도 하듯 뜨거운 햇살과 장대비를 번갈아 내려주었습니다.

여정의 시작은 카투만두에서 버스로 반나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투월에서부터였습니다. 송구하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시작한 첫 방문, 하지만 의외로 우리를 따뜻이 맞이해주는 가족들 덕분에 순조롭게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의 인터뷰에서도 사망자 가족들은 돌아온 혈육을 반기듯 우리를 맞이해 주셨고 기꺼이 마음 한 켠을 내어주는 데에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구구절절한 아픔과 실낱같은 희망이, 죽어서도 잊지 못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혹여나 무심히 옮겨진 활자 뒤로 묻혀버리지는 않을까. 그러나 기록으로나마 되살아나 가족들의 외로운 기억이 조금 따스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적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마다 그분들의 소중한 마음을 잘 전하기 위해 내용을 되새기고 얼굴을 떠올리며 우리들은 여정을 시작할 때의 다짐을 되새기고는 했습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네팔의 사원에서 초를 파는 청년
사실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한국땅에서 이미 낯선 일이 아닙니다. 여수의 보호소에서 열 분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석 달, 참사가 발생하고 며칠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열악한 이주노동의 현실에 대한 기사들이 다투어 쏟아져나오기도 했습니다.

불이 나도 철창문을 열어주지 않는 보호소에 갇혀 죽어간 그들의 절규에 우리 사회는 때늦은 반성의 고삐를 다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참혹한 '떼죽음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모두에게 잊혀져버렸습니다. 장례는 쓸쓸히 치러졌고 살아남았지만 더욱 고통스러운 부상자들은 떠밀리듯 대한민국 땅을 떠났습니다.

'이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 불교 사원에서 마네를 돌리며 기도하는 여인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한 민족으로 살아왔다는 믿음 때문일까요. 의지의 선택이건 불가피한 질곡이건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의 텃세와 장벽은 무척이나 단단하고 높기만 합니다.

구호처럼 '다문화'가 범람한 지도 벌써 몇 년째이고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주민 100만명 시대가 온다는 등의 기사를 자주 마주치지만,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우리의 강고한 편견과 대면하게 만드는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하여 아무도 반기지 않는 땅에서 때로는 목숨을 걸고 일해야만 하는 것이, 여전히 바뀌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체류 자체를 불법으로 몰아 범죄자 취급하고, 사람이 죽어도 그저 목숨값을 계산하고 사건을 '처리'하기에만 급급합니다. 값을 치르고 나면, 한 켠이 뻥 뚫린 가족의 무너진 가슴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국인이고, 또 그들은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도와 법률을 뛰어넘고 피부색과 민족을 넘어서는 보편의 인간애 정도만이라도 되새기자고, 인간의 기쁨과 슬픔은 다르지 않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를 마련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말입니다.

▲ 네팔 거리의 음식 상점
가족의 생계를 양어깨에 걸쳐메고 발 딛은 낯선 땅에서, 아빠가 남편이 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황망한 죽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간의 한 가운데를 그들은 지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몇 해씩이나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하고 살았던 가족의 죽음 후에 남겨지는 것은 결국 산 사람의 삶입니다. 웃고 울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 그저 일상이기도 합니다.

한국으로 떠나보낸 가장을 잃고 어렵사리 생활하면서도 남겨진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삶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질곡이지만,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희망은 호흡처럼 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꿈 그리고 악몽> 표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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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빠른 이주노동자들의 117주년 노동절

 
 
어제 서울역에서 이틀 빠른 117주년 이주노동자 노동절 대회가 열렸다. 5월 1일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절과 상관없이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노동절 맞이 이주 노동자 대회'는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같기도” 노동자일 뿐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의 얼굴은 밝았다. 집회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지난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사건을 툭툭 털고 이주노동자들이 더욱 단결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117주년 노동절 맞이 단속추방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이주노동자 노동권 확보를 위한 이주노동자 대회’라는 긴 이름이 말 해 주듯이 이주노동자들이 싸워나가야 할 현실은 험난하다.

이쇼르 북부지부 지부장은 최근 단속된 사람들이 90여 명에 이르고, 새벽 6시에도 단속반이 들이닥치고 있다는 현실을 전했다. 현재 정부는 5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합법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결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선별합법화가 아니라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전면적인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까지만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권만 제대로 보장해줘도 이주노동자 문제는 다 해결된다”며 “일을 하는 노동자가 왜 단속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라며 분노했다. “영주권을 주겠다, 비자도 주겠다고 하지만 받을 수 있는 이주노동자가 없다. 정부에서 얘기하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합법화가 실현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까지만 이주노조 위원장은 “6개 공동체 등 여러 나라 이주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단결을 호소했다.




이주노조를 비롯해 6개 공동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대회에는 각 국가별 공동체의 참가가 높았다. 방글라데시 봉제공장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현재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마후라 압달은 “조직을 잘 해야 사장과 정부의 악법과 정책을 바꿀 수 있다”며 단결해서 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버마행동은 알록달록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고 ‘어린이 춤’이라는 민속춤을 보여주어 집회 참가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춤을 춘 활동가가 50세라는 사실을 밝히자 다시 집회 참가자들은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버마행동은 이어 프리 버마(Free Burma)라는 노래를 부르며 투쟁의 열기를 높였다.

네팔 공동체 대표 범 라우디도 “오늘이 노동절이 아니지만, 이렇게 모여 우리가 투쟁하고 있다”며 “함께 하고 있는 것이 기쁘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은 “이 차별과 착취의 나라에서 사업장 이동의 금지, 1년마다의 재계약, 입출국 금지, 가족초청 금지, 장시간 야간 노동을 강요받으며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며 “이것이 고용허가제의 현실”이라고 짚었다. 결의문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계속해서 양산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서 전개해 나가겠다”고 결의했다.



400여 명의 집회대오는 서울역을 출발해 명동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같은 날 창원에서도 이주노동자 대회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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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04월29일 117주년 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대회

2007년 117주년 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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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중단하라 &quot;노무현&quot;은 되진하라 !!!

한미FTA 중단하라” “노무현은 퇴진하라”
 

  [관련기사]
 한미FTA는 양극화 확대·강화 협정이다
 ‘재협상’요구하는 미국의 의도
 한미FTA 체결 저지를 위해 메이데이는 전국 집중 집회가 돼야 한다
 한미FTA 반대 국회의원들을 백안시해야 하는가?

허세욱 동지는 16년 동안 택시노동자로 살아오며 민주노조 건설과 월급제 쟁취 등을 위해 투쟁해 왔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정치적 운동에 헌신한 투사였다.

여중생 압사 항의 운동, 탄핵 반대 투쟁, 이라크 반전 운동,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 등에 그는 항상 앞장섰다. ‘그날이 오면’ 서점 대표 김동운 씨는 “서점 앞은 항상 동지가 가져온 포스터로 도배됐고 책상에는 동지가 가져오신 각종 투쟁을 알리는 선전물이 끊일 날이 없었지요” 하고 추억한다.

어렸을 때 서울로 상경해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 온 허세욱 동지는 철거 반대 투쟁을 겪으며 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빈민운동을 하던 여자 간사가 용역깡패들에게 얻어맞는 일이 벌어졌는데 나는 그냥 구경만 했어요. 그 뒤 많은 걸 깨달았죠”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허세욱 동지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민주노총 조합원이었고 NGO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참여연대’의 모범적인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1백20만 원 정도의 많지 않은 월급 중 10퍼센트를 꼬박꼬박 당비·회비·지지금 등으로 지출했다.

그는 “1만 원 아껴 봐야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당에 1만 원을 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1만 원 아껴 봐야 못 배운 한을 못 풀지만, 당에 1만 원을 내면 세상의 이치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어린 활동가에게도 꼬박꼬박 ‘동지’라고 부르며 존칭을 쓰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번에 서울시당 대의원으로 출마하며 “한미FTA의 모순점을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한미FTA를 몸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이를 철저히 실천했다.

그는 택시를 운전하며 하루에 1백 장 정도의 한미FTA 반대 유인물을 승객들에게 나눠주며 토론했고, “나머지는 퇴근 길에 집집마다 돌렸”다고 한다. 그는 “한미FTA 반대 유인물을 주었더니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손님도 있었다”고 좋아했다.

그는 신문과 책에 밑줄을 쳐가며 한미FTA의 문제점을 탐구했고 분석했다. 그래서 직접 한미FTA를 조목조목 폭로하는 팻말을 만들어서 1인시위를 하고 집회에 참가했다.

동지의 이같은 삶과 투쟁은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허세욱 동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노무현 정부가, 동지의 시신을 빼돌리는 등 사망과 화장 과정까지 더러운 개입을 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허세욱 동지가 죽음으로 호소한 투쟁의 과제가 남겨졌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한미FTA 체결 저지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할 것을 약속”했다.

동지는 4월 1일 분신 과정에서 화기가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무릅쓰고 계속 “한미FTA 폐기”와 “노무현 정권 퇴진”을 외쳤다. 강력한 대중 투쟁을 건설해 이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 동지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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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정규직 대책, 구조조정의 신호탄!

정부 비정규직 대책, 구조조정의 신호탄!

 

예산증액이나 증원계획도 없이 기간제 지속사용 종용까지
 
준비도 없이 생생만 내려는 정부의 비정규 대책
결국 돌아온 것은 외주화를 통한 구조조정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5월 시행을 앞두고, 4월 기획예산처와의 협의를 거쳐 5월 중 노동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선정을 마무리하려는 가운데 이번 대책이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오히려 외주화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19일로 입법예고 예정인 기간제법과 파견법 시행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기간제, 파견직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법이며, 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확산시키는데 한 몫하고 있다고 노동자들의 분노가 모아지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경우 정부가 대책을 실현하기 위한 예산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황이라 제대로 된 대책은 기대하기 더욱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각 기관들은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명단을 내고 “무기계약 전환 시 필요한 소요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겠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기획예산처는 예산 불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기관은 무기계약으로 전환시킬 인원까지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 외주화 계획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노동계의 지적대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을 물론이며 외주화를 통한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을 불러올 것이 불가피하다.


공공기관은 정부 탓, 정부는 기획예산처 탓

 

이에 17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부의 비정규 대책이 “비정규 확산의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기자회견에는 철도노조 KTX 승무지부, 새마을호 승무원, 전국평생교육노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공공노조 의료연대지부, 보건의료노조, 민주노동당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해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세원 KTX서울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이철 사장은 KTX, 새마을호 승무원들을 외주화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이유는 없고 기획예산처에서 기관 평가 시 인건비 퍼센트 절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라며 “승무원들의 외주화를 통한 구조조정은 철도노동자 전체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정규직화 노사합의도 물거품으로 만드는 비정규 대책?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으로 인해 이미 체결된 노사합의까지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은 노동부 산하 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다. 2005년 한국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맞서 66일 간의 파업 투쟁을 통해 노동부 장관까지 나서서 노사합의를 이끌어 낸 바 있다. 노사합의는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되, 2007년도에는 우선 비정규직의 50% 수준까지 전규직 전환이 되도록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발표 이후 사측은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옥준 전국평생교육노조 부위원장은 “무기계약은 정규직이 아니며 영원히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노동부는 기획예산처 탓을 하고 기획예산처는 노동부가 거짓 약속을 한 것이라고 말하며 노사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다”라며 “예산도 확보하지 않고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것은 사기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배워도 소용 없네~ 박사도 모두 비정규직!


비정규직에는 박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2월 정부출연기관의 연구 인력은 무기계약 대상에서 제외되며, 정규직 전환은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입장을 각 기관에 전달한 바 있다. 전국공공연구기관노조에 따르면 24개 정부출연기관의 무기계약 전환 계획서에는 연구인력 3천 2명 중 458명 만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로 선정했다. 연구기관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연구인력은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에서 대부분 제외된 것이다.

이에 대해 박병수 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지부 사무국장은 “정부출연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중 최소 66% 이상이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무기계약 대상자에서 이들을 제외하는 것은 물론이며,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시적, 간헐적, 보조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현실을 왜곡해 보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과학기술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에 최근 5년간 신규 채용된 연구 인력 6천 315명 중 67.7%인 4천 276명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며, 박사는 채용인력 2천 185명 중 49.2%인 1천 75명이 비정규직으로, 석사의 경우는 78.1%가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노동부가 마련하고 있는 기간제법 시행령에는 2년 후 정규직 전환에 예외 직종으로 박사학위를 갖고 해당분야에 종사 하는 자 등을 포함하고 있어 박사학위자들의 비정규직화도 급속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박병수 사무국장은 정부의 기간제법 시행령에 대해 “엉터리 시행령”이라 꼬집었다.

 
국립병원들, 분리직군 계획 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병원에도 비정규직의 바람은 불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비율은 사립대학 병원보다 국립대학 병원이 평균 20~30% 높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공립대 병원들은 정부의 비정규 대책에 따라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지만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들을 별도의 직군으로 묶어 차별을 고착화 시키는 분리직군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노조 의료연대지부에 따르면 강원대병원과 제주대병원의 경우 기간제 노동자의 무기계약 전환 이후 임금체계에서 별도직 신설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은영 공공노조 의료연대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사무장은 “서울대병원은 2006년 노사합의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인원 206명 등 215명 이외의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는 직종별, 부서별 직무분석을 한 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를 구분하고 적정인력을 산출해 부서별로 인력을 재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내고 있다”라며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선별은 전체 직종에 대한 직무분석이 들어가면서 구조조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은영 사무장은 “비정규직 업무 또한 무기계약-기간제-임시직-파견-외주로 구분해 업무에 따른 고용형태의 구분은 물론이며 임금형태의 구분까지 연동시켜 가며 분리직군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보호는커녕 고용만 더 불안하게 만들어

결국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용을 안정하겠다고 만든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외주화를 확대시킬 것으로 보이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직군을 분리하면서 차별을 고착화시키는 등의 효과를 낳아 노동형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정부는 기관별로 제출한 계획서를 공개하지 않고, 각 기관의 인사노무 또는 비정규 담당들을 모아 놓고 예산지원 불가, 자체적으로 해결, 기간제 사용사유 조항 적극 활용을 통한 기간제 사용지속 등을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라고 정부의 행태를 폭로하고, “애초부터 예산증액 및 정원증원에 대한 계획이 반영되지 않은 정부 대책에 제대로 된 기관별 계획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라며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은 비정규직 확대와 외주화 등 구조조정을 야기하는 대책이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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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직원 사칭 취업 사기

               법무부 직원 사칭 취업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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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직원 행세를 하면서 불법체류자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들은 체류기간을 연장시켜주고 중국 친척들을 연수생으로 초청해주겠다며 돈을 뜯어왔습니다.





서울 구로구의 재중국동포 밀집지역.

이 곳에 사는 재중국동포들 중 상당수가 체류기간이 만료돼 불법체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재중국동포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50살 이 모 씨 등 2명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을 사칭해, 체류 기간을 연장해 주고 직업도 소개해 주겠다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의 돈을 받아갔습니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습니다.

[인터뷰:김 모 씨, 중국동포 피해자]

"난 지금 불법체류 상황이고 비행기표 다 끊었다, 지금 가야된다 하니까 안 가도 되는 방법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이 씨는 또 '한국연수진흥공단'이라는 가짜 회사까지 만들어 중국에 있는 친척을 산업연수생으로 초청해 주겠다고 속여 돈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이 씨가 사기 행각을 벌인 장소는 불법체류자들이 자주 모이는 커피숍.

[기자]

이 씨는 재중국동포들이 근무하는 커피숍을 자주 드나들면서 이 곳 직원들로부터 불법체류자들을 소개받아왔습니다.

이 씨는 수갑과 무전기까지 보여주면서 불법체류자들을 깜쪽같이 속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 2005년부터 최근까지 피해를 당한 재중국동포들이 35명.

이 씨가 챙긴 금액만 해도 1억 2천만 원에 이릅니다.

[인터뷰:이 모 씨, 피의자]

"처음에 중국인하고 결혼하면서 왔다갔다 하다보니 서류 절차 같은 거 알았고, 출입국 사무소 신분증 목에 걸고 있는 거 보고 (위조) 해줄 수 있냐고 그랬더니.."

경찰은 이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법무부 직원 신분증을 위조한 49살 김 모 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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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허세욱 님, '살아있는' 전태일 되십시오&quot;

     허세욱 님, '살아있는' 전태일 되십시오"


   한국과 미국 정부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지만 한미FTA 반대 운동의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7일 오후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서울 대학로에서 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연달아 집회를 열고 정부를 규탄하며 '협상 무효'를 주장했다.
  
  또 이들은 이날 저녁 서울광장에서 '허세욱 님의 조속한 회복을 바라는 범국민 촛불문화제'를 열어 허 씨가 하루빨리 병상에서 일어서기를 빌었다. 허 씨는 택시 노동자로 지난 1일 협상이 열리던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앞에서 분신해 치료를 받고 있다.
  
▲ ⓒ프레시안

  "허세욱 동지는 우리의 거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온 몸이 불타 들어가는 순간에도 허세욱 동지는 '한미FTA 저지'를 외쳤다"며 "한미FTA 체제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 희망적인 미래는 없다. 이제 비준저지투쟁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받아 안고 한미FTA를 반드시 저지시키자""고 주장했다.
  
  특히 집회에 참가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허세욱 씨가 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며 "허 씨가 끝까지 살아 남아서 한미FTA 반대 투쟁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 씨가 후원회원이기도 했던 서울대 앞 사회과학서점 '그 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는 편지글을 통해 "허세욱 동지는 그 적은 택시기사 월급을 쪼개 여러 군데 후원을 하면서도 서점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서점을 후원하셨던 분"이라며 "동지는 항상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망국적 한미FTA 폐기하라, 굴욕졸속 반민중적 협상을 중단하라,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고 마지막 남은 힘을 내서 외치시던 분이 바로 동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온몸아 큰 쇠망치에 맞아 뻣뻣하게 굳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 허 동지를 일으키는 일이 한미FTA를 무효화시키는 것으로 기필코 우리가 동지를 살리겠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전태일 열사가 되셔야 한다"고 말해 집회 참가자들을 숙연케 했다.
  
  
▲ ⓒ프레시안

  "장밋빛 광고, 민중 심판 받을 것"

  
  범국본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한미FTA 협상은 당초 경고했던 바대로 '얻는 것 없이 마구 퍼주기' 협상, 또 국민주권과 건강권·생명권을 위협하는 망국 협상으로 귀결됐다"며 "이번 한미FTA 협상이 '전면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범국본은 "정부가 자동차와 섬유 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자동차는 수출 분야에서 현지 생산 비율이 높아져 사실상 관세철폐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섬유 분야도 미-싱가포르 FTA보다 후퇴한 6~20개 품목만 원사가 한국산일 경우에만 관세혜택을 받게 돼 이익이 미미할 것"이라며 "기만에 가까운 협상이었다"고 주장했다.
  
  범국본은 또 자동차 세제 변화, 지적재산권 침범, 스크린쿼터 현행유보, 의약품 가격 상승, 투자자-정부 제소 제도, 농어업 피해 등을 언급하며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독단을 견제할 책임이 있는 국회와 언론이 책임을 방기할 경우 국민적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프레시안

  범국본은 "오늘 비록 장밋빛 미래를 선전하는 허황한 광고들이 거리를 메우고 미국과 노무현정부, 보수언론과 관료들의 벽이 두터워 보일지라도 단결해 싸우는 민중의 힘을 당할 수 없다"며 한미FTA 협상안의 국회 비준 저지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해나갈 것임을 결의했다.
  
  대학로에서 집회를 마친 이들은 오후 4시40분부터 종로와 을지로를 통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까지 행진을 벌였고, 오후 7시부터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허 씨를 위한 추모 촛불문화제는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울산, 청주, 천안, 제주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범국본은 오는 14일에도 전국적으로 촛불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한편 지난 3일 한미FTA 협상 타결 소식에 비관한 채 이웃 주민들에게 공기총을 쏜 뒤 도주한 경북 예천의 농민 이모(44) 씨가 이날 범국본의 집회에 참가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집회장에서 이 씨를 수색하는 전단지를 뿌리는 등 검거 작전을 펼쳤으나 이 씨를 찾지는 못했다.
  

  다음은 '그 날이 오면'의 김동운 대표가 허 씨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허세욱 동지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허 동지를 일으키는 일이 한미에프티에이를 무효화시키는 것입니다. 기필코 우리가 동지를 살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전태일 열사가 되셔야 합니다
  
  허세욱 동지, 꼭 쾌유하셔서 우리 곁으로 다시 오셔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 병상에서 온 몸을 붕대로 감으시고 마취의 깊은 잠에 빠져 계실 동지를 생각합니다.
  
  지난 4월1일 서점에서 일하다가 동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망국적 한미FTA 폐기하라, 굴욕졸속 반민중적 협상을 중단하라,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고 마지막 남은 힘을 내서 외치시던 분이 바로 동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온몸아 큰 쇠망치에 맞아 뻣뻣하게 굳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지가 너무 걱정이 됐습니다. 동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저들에게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또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하셨는지, 왜 저를 또다시 그렇게 부끄럽게 만드셨는지. 그렇습니다.
  
  동지는 항상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셨습니다. 그 거울을 보고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지역 행사에서, 집회에서 제가 일하는 서점에 찾아오셔서 뵐 때마다 항상 반갑게 두손을 맞잡고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하셨지요. 제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겸손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 용산미군기지 월례집회, 평택미군기지 투쟁, 택시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유인물과 포스터를 가져오셔서 서점 앞은 항상 동지가 가져온 포스터로 도배됐고 책상에는 동지가 가져오신 각종 투쟁을 알리는 선전물이 끊어질 날이 없었지요.
  
  서점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아시고 요즘 학생들이 사회적 모순을 인식할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 공부를 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그날이오면' 서점 후원회에 가입하셨죠. 그 적은 택시운전사 임금을 쪼개 그 많은 단체들에 회비를 내고 후원을 하시면서도 말입니다. <그날이오면을 위한 신영복 선생 강연회> 포스터들을 한묶음 가져가셔서 여러 곳에 나눠주시고 강연회에도 직접 오셔서 많이 후원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셨지요.
  
  죄송하다니요. 많이 후원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20만원어치나 되는 상품권을 사러 오셨습니다. 사가지고 가시다가 저에게 전화를 하셨지요. 뭔가 미흡하신 듯한 어조로 도서 상품권을 서점에 사는 것이 서점에 도움이 되는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이오면' 자체 상품권을 사시면 좀더 도움이 되기는 한다고 하니까 한참 가셨던 차를 다시 되돌려 오셔서 '그날이오면' 상품권으로 바꿔 가셨습니다. 조카도 직접 '그날이오면'에 와서 책을 사면 더 좋을 거라고 하시면서요. 조카가 오면 좋은 책을 추천해서 읽게 해달라고 저에게 부탁하시면서 마치 큰부탁이라도 하듯이 하셨습니다.
  
  지금 동지가 계신 병원에서 며칠 전 알게 된 일입니다. 동지가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에서 저를 그렇게 자랑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동지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저를 말입니다. 사경을 헤매며 누워 계신 병원에서 들은 그 얘기는 정말 저를 더욱 참담하고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허세욱 동지! 동지가 계실 곳은 병상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입니다. 한미FTA를 무효화시키는 그 날, 노동해방의 그 날, 통일의 그 날이 기필코 오게 하기 위해 동지와 함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동지가 정말 필요합니다. 그 길을 끝까지 함께 하기에 부족한 저희들 곁에 항상 계셔서 긴장을 풀지 않게 하시고 열심을 품게 하셔야 합니다. 허세욱 동지! 동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 일이 한미FTA를 무효화시키는 일이고 동지를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몰아간 적들에게, 이 땅 민중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적들에게 복수하는 일입니다. 이제 기필코 우리가 동지를 살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전태일 열사가 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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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자살시킨 사진의 황당 진실!

                  작가를 자살시킨 사진의 황당 진실!
 


“우선 맨 먼저, 정말로,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생의 고통이 기쁨을 뛰어넘어, 더 이상 기쁨 따위가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북데일리] 1994년 사진 ‘독수리와 소녀’(사진 참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케빈 카터(1960~1994). 그는 시상식이 열린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이 몰던 차 안에서 자살했다.

남겨진 유서에는 생(生)과의 작별을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고민과 방황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 나는 생생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살인, 시체, 분노, 고통, 굶주림, 상처투성이 아이들, 히히거리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정신 나간 무리들. 그 대다수는 경찰관이나 킬러, 처형자... 그 같은 지독한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

케빈의 자살 소식을 보도한 언론들은 ‘독수리와 소녀’가 그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이라고 추측했다. 과연 어떤 사진이기에.

화면은 단순하다. 아프리카의 전쟁터에서 뼈가 앙상한 소녀가 기도하는 자세로 땅바닥에 엎드려있다. 그리고 아이와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독수리가 깃을 접고 앉아있다.

사진은 1993년 3월 ‘뉴욕 타임즈’ 1면에 컬러로 게재되자마자 단숨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처음엔 절묘한 상황을 포착한 케빈의 능력에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곧 ‘촬영 따위는 집어치우고 먼저 소녀를 구했어야 옳은 게 아닌가’ 라는 비판이 들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진 속 독수리가 소녀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중이라 봤던 것.

그러나 촬영 당시의 상황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랐다. 아프리카에서 5년간 특파원으로 근무한 후지와라 아키오는 저서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예담. 2007)에서 ‘독수리와 소녀’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전한다.

문제의 사진에 의문을 품은 아키오는 1997년부터 본격적인 취재에 매달렸다. 관련 정보를 모으던 중 케빈의 사진촬영에 동행했던 또 한명의 작가 조아오 실버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당시 정황을 들을 수 있었다.

“제 어머니가 아이를 살짝 땅바닥에 내려놓았을 뿐이었어. 아이 사진을 찍고 나니까 뒤쪽으로 독수리가 휙 하고 날아와서 앉았대. 녀석의 바로 눈앞에 말이지. 그래서 독수리가 달아나지 않도록 살그머니 몸을 움직여서 양쪽 핀트가 제대로 맞는 장소로 10미터 가량 옮겨 찍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몇 장 찍는데 독수리가 ‘휙’하고 날아가 버렸다더군.”

즉 사진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산물. 섣부른 오해와 추측이 한 재능 있는 사진작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셈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에는 이외에도 저자가 아프리카에서 발로 뛰며 취재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이아몬드를 파는 혼혈인, 차별사회의 현실, 그가 직접 경험한 범죄사건 등. 이를 통해 독자는 지리적, 심리적으로 먼 나라 아프리카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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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재건공산당 지도부의 착각
김용욱 

△아프가니스탄 주둔 이탈리아 군대

지난 2월 21일 이탈리아 중도좌파 연립정부의 총리 로마노 프로디가 아프가니스탄 파병 연장 동의안 부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런 정치적 혼란은 최근 비첸차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 대중 시위에서 드러난 대중적 반전 정서의 압력 때문이었다. 이 시위에는 재건공산당 당원들도 대거 참가했다.

그러나 재건공산당 지도부는 이런 정서를 애써 외면했다. 이번 표결에서도 재건공산당(리폰다찌오네 꼬무니스타) 의원들은 1명을 빼고 모두 파병 연장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들은 연립정부를 깨지 않는 것이 베를루스코니와 우파의 복귀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믿기 때문에, 제국주의 전쟁에 동참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프로디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없었다.

약점

재건공산당의 이런 약점을 잘 아는 프로디는 총리직을 사퇴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프로디는 신자유주의적인 2007년 예산안을 상원 표결에 부치고는 예산안 통과를 자신의 신임과 연계해, 재건공산당과 연립정부 내 다른 좌파들을 단속했던 경험을 반복하려 한다.

프로디는 자신이 다시 총리로 복귀하는 대신 아프가니스탄 파병 연장 찬성을 포함한 12개 조항에 합의하라고 종용했다. ‘베를루스코니가 돌아오는 게 싫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하고 윽박지른 것이다.

중도좌파 일간지 <라 레푸블리까>는 베를루스코니와 우익의 복귀를 막고 프로디 정부의 안정을 유지하려면 극좌파들이 프로디의 “개량주의적 정치 계획”을 군말 없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베를루스코니의 복귀설로 혼란에 빠진 재건공산당 지도부는 이런 협박에 다시 한 번 굴복할 듯하다. 그들은 반대표를 던진 상원의원 2명을 연립정부 내 우파와 주요 언론들이 마녀사냥하는 것을 방관했다.

심지어 재건공산당의 프란코 죠르다노 총재는 “우리에게는 오로지 프로디만이 있다” 하고 말했다. 지금 재건공산당 지도부는 곧 있을 프로디 복귀 재신임 투표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도록 의원들을 단속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이것은 베를루스코니와 우익의 복귀를 효과적으로 막지도 못할 뿐아니라 이탈리아 대중 투쟁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중 행동

프로디 정부의 목표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유지해 이탈리아 국가의 제국주의적 위신을 유지하는 것 외에 이른바 ‘유럽 경제의 병자’인 이탈리아 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급속히 구조조정해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연금혜택 축소 등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해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을 비롯해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줄줄이 대기중이다. 12개 조항에 합의하는 것은 재건공산당 지도부 다수가 이런 공격에 맞선 저항을 조직하지는 않고 수수방관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타협으로 우익의 복귀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재건공산당 지도부의 착각과 달리, 프로디는 우파 야당의 일부인 기독교민주연합을 연립정부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는 주류 정치의 우경화를 더한층 촉진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재건공산당 지도부의 타협에 반대하는 재건공산당 평당원들의 분노를 대중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재건공산당 내 혁명적 좌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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