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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글쓰기

조카 중의 한명이 글쓰기를 했댄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다.

학교에서 소설쓰기 숙제를 냈는데,  뭘 쓸까 고민하다가

첨에는 이종사촌동생의 얘기 - 이제 다섯살인데, 간질로 고생하고 있다 - 를 쓸려고

했다가, 요즘 미식축구 선수인 하인즈 워드 얘기를 많이 떠들고 있길래

이걸 영감삼아 썼다고 한다. 

 

엄마가 나한테 보여주면서 삼촌의 감상은 어때? 라고 하길래..음..좀더 살 붙이고, 다듬어 보라고 그랬다.

 

 

 



20년 전쯤이었을 겁니다. 저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났고, 그 곳에서 저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와 같은 봉사활동 단체에 속해있는 베트남 사람으로 그리 잘 살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부자일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저를 위해 봉사해주시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제가 마음에 들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희는 같이 한국으로 귀국해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 생활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저희는 항상 ‘국제부부’라는 타이틀을 벋어날 수 없었고, 남편은 일자리를 구하는 일 조차 힘에 겨워했죠. 그러던 중 신발 제조 공장에 취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뒤 저희의 생활을 순탄할 것만 같았습니다.

8년 전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라면 시작이었습니다. 저희에게서 시작되었던 것이 바로 그 아이에게로 넘겨졌기 때문이지요. 그 아이는 혼혈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냉대에 부딪치고 말았던 겁니다. 그래도 저희는 아이를 강한 아이로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교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좋았어?”

“응, 너무너무 좋았어. 친구들도 잘 해주고”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아이는 학교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아마 아이들이라 그런지 자기와 생김새가 다른 아이들이라도 좋게 대해주는가 봅니다. 그 뒤로 저는 아이의 학교에 대해서는 걱정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덧 4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하민아, 너 여기 왜이래?”

“아, 그.. 그거? 아까 요 앞에서 넘어졌어요. 원래 내가 좀 잘 구르잖아요.”

넘어졌다고 하는 하민이를 보고, 저는 걱정했지만 그렇게 큰 의미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때 알아챘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바보처럼 전 아이의 아픔조차 알지 못했던 거였어요.

그 날 저녁,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던 저는 아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걸 알았어요.

“뭘 그렇게 숨기고 있어? 어? 공개수업?”

“아, 이제 다음주 화요일에 학교에서 공개수업 한대.”

“그래? 근데 이걸 왜 숨기고 있어?”

“엄마 바쁠까봐 그랬지. 엄마 오지 말아요.”

“괜찮아. 엄마 하나도 안 바빠. 바빠도 딸 일인데 엄마가 빠지면 안 되지.”

“오지 말라고요!!”

처음이었습니다. 하민이가 저에게 그렇게 화를 낸 것은, 저는 놀랐지만 이 아이가 저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알았어. 안 갈게.”

그 뒤로 꼭 8일이 흘렀습니다. 바로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지요. 학교에 가면서까지 하민이는 저에게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마음에 공개수업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시간에 학교를 찾아갔지요.

그때는 쉬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5-6반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모습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민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떤 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 우리 하민이 못 봤니?”

“아 그 튀기요? 걔 아마 화장실에 있을걸요?”

튀기라니 좀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전 그냥 하민이의 별명이겠거니 하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웬일인지 화장실에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꽤 시끄러웠죠. 그 아이들은 제가 그 곳에 들어온 것도 모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비웃고 있었지요.

충격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비웃음의 대상은 바로 우리 딸 하민이었어요. 아이들은 하민이를 둘러싸고 발로 밟고, 때리고 또 화장실 물을 아이에게 붓고 그랬지요.

이거였습니다. 하민이가 저를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한 이유. 아이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겁니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제가 알면 슬퍼할 것을 알고 또 자존심도 상했겠죠.

저는 그 아이들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저를 발견하면 하민이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또 미안해서 하민이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나왔습니다. 이제껏 하민이가 이상하게 행동했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것이 뭐가 그렇게 잘못이라고 아이에게 그러는 걸까요.

저는 아이에게 무척이나 큰 상처를 준 장본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제 스스로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결혼한 것까지도 후회하게 되어 버렸지요.

학교에서 하민이가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는 밝은 모습으로 저에게 말하더군요.

“엄마, 오늘 공개수업 안 왔네. 잘했어요.”

“그래.”

아이를 보자 흐르는 눈물에 저는 하민이를 쳐다볼 수 없었지요. 그런데 그 아이는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하민이를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학이라는 큰 결단을 내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하민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하민아. 너 전학갈래?”

“갑자기 무슨 전학이야~”

“그냥, 너 학교생활 힘들지 않아?”

그냥 그 말을 꺼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민이는 눈치를 챘나봅니다.

“.....왔었지?”

“오긴 어딜와~ 그냥 해본 소리라니까”

“왔었잖아! 학교 왔었잖아! 와서 다 봤잖아! 그러고 지금 이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왜 이러는데? 맞지?”

“그래 갔었어. 가서 다 봤어! 그래서 너 전학 보내려고 그래. 너 힘들잖아.”

“됐어. 이제 와서 그러지마.”

하민이는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하민이니?”

“아, 저기 여기 삼성병원인데요. 혹시 윤하민씨 보호자 되시나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아까 사거리에서 사고가 났어요. 아주 큰 사고였죠. 그래서 지금 환자의 상태가 아주 위급합니다. 지금 와주셔야 합니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 했습니다. 사고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눈물을 머금고 저는 병원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글쎄요. 제 생에 이렇게 빨리 뛰어본 적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잠시 뒤 저는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기요. 여기 윤하민 어디 있어요. 어디 있어요!”

“윤하민 환자는 지금 수술 중입니다.”

나는 미친 듯이 눈물을 쏟아내며 수술실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말았지요. 만약 하민이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제 잘못이겠죠. 내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수술실에서 나오는 하민이와 의사 선생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민이는 머리와 몸에 온통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고요.

“어떻게 된 거죠?”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이 학생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3중으로 차에 부딪쳤나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환자의 상태는 심각합니다. 과다출혈과 뇌손상과....”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살 수 있나요?”

“글쎄요 아직은…”

아직은 이란다. 아직은 이라니. 그럼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됩니다. 어떡하죠. 어떡하지. 어쩌면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 하민이는  중환자 실로 옮겨졌습니다.

하민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정말 흉측할 정도로 많이 다쳐있더군요. 이게 다 하민이가 한 짓이라니. 뛰어들었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그랬지요. 아이가 감당하기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버거웠던 것이었던 걸까요.

그 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때까지 하민이는 깨어나지 않았고요. 저는 여기저기로 불려다니며 하민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바빴지요. 오늘도 그런 일들로 잠시 병실을 비웠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 하민이가 좋아하는 초밥을 사들고 병실로 향했습니다.

“하민아, 엄마 왔...........................”

하민이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간호사에게 물었죠.

“여기 있던 환자 어디 갔어요?”

“아 그 환자분 보호자 되세요? 그 환자분 오늘 아침 사망하셨다고...”

사망. 사망. 사망. 사망.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간호사가 지금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냉대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이의 최후였던 것입니다.


2007년 12월 28일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습니다. 어떤 무덤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울고 계십니다. 이 아주머니는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면제였습니다. 아이의 죽음 앞에 슬퍼하던 어머니는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 손에는 이렇게 써져있는 종이가 쥐어져 있군요.


‘우리의 죽음으로 더 이상 혼혈아라는 이름아래 아파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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