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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귀환'관련 글 중에서

온갖 선거정치공학적인 분석이 아니라, 이념적 차원과 이후 지형관련해서 생각해 볼 만한 글

 

 



어떤 이념의 핵심적 특징이 무엇이냐, 그리고 현실정치에서 상대적 위치가 어디쯤인가 하는 두 차원으로 정치이념을 나눌 수 있다. 현 정부를 포함해서 그 왼쪽에 있는 모든 세력을 뭉뚱그려 민주-개혁-진보-평화세력이라고 길게 부르는 이유도 이 세력 안에 혼재하는 핵심적 특징들을 구분하면서도 전체 오른쪽 세력에 대한 상대적 위치를 강조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오랫동안 반목해 왔으면서도 사실은 서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숨은 ‘저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본다고 믿고, 상대를 경멸적으로 호칭하는 것까지는 정치적으로 자연스럽다고 치자. 하지만 저편이 의존하고 있는 기본 전제랄까 가치체계와 같은 문제에 대해선 대체로 무관심하다. 예컨대 오른쪽은 왼쪽의 여러 세력이 가진 개별적인 특징을 잘 모르거나 그 차이를 애써 무시한다. 이런 논법대로라면 노무현 정부나 대통합민주신당이나 시민사회단체나 민주노동당이나 모두 엇비슷한 집단이다.


당사자로선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게 우리 현실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인식이 현실정치에서 일정한 설명력을 가지기도 한다. 국제발전론의 비유를 빌려 표현하자면 바다의 크고 작은 배들은 밀물이 들면 함께 뜨고 썰물이 나가면 함께 주저앉는다. 이때 다른 배가 주저앉아도 나 홀로 뜰 수 있다고 믿는다면 비현실적이다. 대선 정국에서 왼쪽에 있는 배들이 다들 뜨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바다의 ‘물’이 오른쪽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회창씨의 출마가 의도하지 않게 우리에게 준 선물은 정치이념을 현실정치의 상대적 위치뿐만 아니라 각 이념의 핵심적 특징으로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데 있다. 현재 한국의 오른쪽은 왼쪽보다 적어도 십년쯤 늦게 이념의 핵심적 특징을 분명히 드러내는 방향으로 분화되고 있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말하는 세 덩어리 보수주의와 비슷한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국가, 질서, 반공, 법치, 온정주의를 강조하는 ‘성향적 보수주의’ 세력이 이회창씨와 함께 이번에 맨 오른쪽으로 분가해 나갔다. 그 옆에 이명박 후보가 대변하는 ‘자유시장 보수주의’와 뉴라이트로 상징되는 확신형의 ‘교의적 보수주의’가 한나라당의 지붕 아래에서 아직까지는 동거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 보수주의의 특징이 몇 가지 드러난다.


첫째, 성향적 보수주의는 50대 이상, 영남, 서민층으로 상징되는 비계급적·전통지향적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둘째, 자유시장 보수주의가 우파적 계급성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면서 보수주의의 중심세력으로 떠올랐다. 강남의 중산층이 좋은 예다. 셋째, 교의적 보수주의는 그들의 본래 색깔과는 달리 현실정치의 상황에 따라 자유시장 보수주의와 어중간한 동맹을 이루고 있다.


지난 십여년간 오른쪽에서는 상대적 위치의 논리가, 왼쪽에서는 핵심적 특징의 논리가 득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핵심적 특징의 논리가 터져나왔고 왼쪽에서는 이념의 상대적 위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연합 움직임이 감지된다. 바닷물이 오른쪽으로 쏠린 상황을 고려할 때 오른쪽이 끝까지 핵심적 특징의 논리를 고수할 것인가, 결국 상대적 위치의 논리로 되돌아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번 대선을 좌우할 핵심 변수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본질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오른쪽은 핵심적 특징을 강조할수록 권력 획득의 가능성에 빨간 불이 켜진다. 왼쪽은 상대적 위치의 논리에 기울어질수록 정체성의 실종이라는 고민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정치는 냉전 식의 강요된 이념대결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본격적인 가치논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겨레 11. 9. 조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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