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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와 기본생활권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감염자가 3천명을 넘어섰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나라는 멕시코와 미국뿐이다. 멕시코에서 유독 사망자가 많이 나온 이유는 ‘가난’과 의료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가 2000만명에 이르는 수도 멕시코시티 시민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데, 사망자 대부분이 멕시코시티에서 발생했다. 이들이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병원비 부담으로 주로 스스로 약국에서 약을 사서 치료하다가 병을 키웠고,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는 비용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알려져 있다 시피, 멕시코는 OECD국가 중 빈곤율이 가장 높고, 빈부의 격차 또한 가장 크다. 반면에 전체 GDP중 사회복지, 의료 등에 쓰이는 사회지출비중은 두 번째로 낮다. 가장 낮은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축산업의 대형화와 개방화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산업구조조정 및 세계화가 신종플루 발생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1994년에 발효된 멕시코, 미국, 캐나다가 맺은 자유무역협정인 NAFTA에 빗대어 신종플루를 ‘나프타 플루’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난이 증가하고, 사회보장은 취약하고, 전염성 질병의 발생과 확산은 증대하는 가난과 질병 확산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하여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감염이 발생한 사실 뿐만 아니라, 감염이 확산되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멕시코와 미국을 빼닮았거나 뒤따라가는 형국은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감염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가난한 이들의 비율을 나타내는 빈곤율이 앞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OECD국가 중에서 멕시코 1위, 미국 3위, 한국이 6위이다. 소득불평등이 심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건강권을 포함한 사회적 권리를 국가와 사회가 보장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GDP중 공적인 사회보장지출은 한국이 가장 낮은 1위이고, 그 다음이 멕시코이다. 미국은 터키 다음으로 공적 사회보장지출이 낮은 4위이다. 미국은 민간의료, 기업의료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어떠한 건강보험도 적용받지 못한 인구가 5천만명에 이른다. 멕시코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건강보험제도와 빈곤층에게 적용되는 의료급여제도가 있어서 그나마 병원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또한 풍전등화의 신세로 내몰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경제위기를 맞아 경제살리기란 명분으로 삶의 전 영역에서 기본적인 삶과 생활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빈곤층이 많아진 건 IMF경제위기를 겪고 난 이후이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빈곤층으로 떨어진 이들이 경제가 회복된 이후에도 빈곤을 탈출한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가속화된 노동유연화 등의 조치로 오히려 실업과 半실업, 비정규직을 넘나드는 악순환 구조속에서 빈곤양산 시스템이 고착화된 게 현실이다. 그 결과 빈곤인구는 정부 통계상으로 700만에 이른다. 여기에 더하여 전 세계적인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한국의 경우에도 그 여파로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실질화되면서 빈곤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부 공식 통계상으로도 실업자는 100만명에 육박했고, 실질 실업자는 400만명에 이른다는 연구보고도 제출되고 있다. 일자리는 매달 줄어들어 들고 있고, 정부가 청년인턴, 희망근로 등 단기간의 임시직 일자리의 고육지책을 쓰고 있지만 올해에 50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늘어나는 실업계층은 대부분 가난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IMF가 예측한 대로 -4% 경제성장이 현실화되면 불행히도 빈곤율은 20%를 넘어서게 된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이렇게 빈곤층이 늘어날 것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들 빈곤층이 누려야할 사회적 권리의 확대는 제자리 걸음에 그치거나, ‘새발의 피’수준의 확대에 머물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생활공감’ ‘희망근로’ ‘민생추경’이니 하며 요란을 떨지만, 안타깝게도 정부의 빈곤대책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요원하다. ‘봉고차 모녀’나 ‘가락동 할머니’처럼 혹 대통령의 눈에 띄는 행운이 생긴다면 모르겠다. 차라리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는게 오히려 좋을 지 모른다. 그만큼 정부의 정책은 빈곤과 실업이 늘어나고, 빈곤층의 삶의 고통을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거꾸로 빈곤과 실업의 악순환 구조를 고착화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4대강 정비사업 등 경제적 효과가 의문시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삽질’예산은 대폭 늘리면서 사회복지예산은 자연적, 제도시행에 따른 증가분을 빼면 오히려 축소하였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자격조건을 완화하는 듯 하면서 근로능력 유무를 증명하라는 등 거꾸로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여 수급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6개월짜리 희망근로를 시행한다면서 임금은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등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되어 있는 근로기준법 마저 정부스스로 위반하고 있다.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이 앞장서서 노동유연화를 위한 비정규직 개악안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으며, 최저임금마저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노인돌보미 등 사회서비스일자리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임은 누구나 알려진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민간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으며, 바우처의 확대로 사회서비스 민간공급기관만 배불리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서민층이 주거할 수 있는 임대주택 건설 의무마저 완화해 버렸다. 그러면서 ‘보금자리주택’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그린벨트를 완화하는 등 환경마저 훼손하고 있다. 서비스산업 활성화란 이름으로 병원의 ‘돈벌이’를 더욱 추동하는 의료채권법, 병원간 인수합병허용, 병원경영지원회사 활성화, 건강관리서비스의 상업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가난한 이들에게 병원문턱이 높아지는 건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기초생활보장, 주거, 건강, 사회서비스, 노동권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삶의 권리를 침해하고 후퇴하는 조치가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경제침체가 지속화될 경우 한국이 멕시코 등 남미국가처럼 빈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나라로 바뀌는 것은 쉽게 예상 가능하다. 설사 최근에 주가가 상승하고, 환율이 안정되는 등 경제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 경제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빈곤층하고는 거리가 먼 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품이라 하더라도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자 전기와 가스요금을 인상해 국민들의 부담을 늘리려 하는 게 그 예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빈곤과 실업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가장 최우선시 되어야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도 일자리 늘리기도 아니다. 기초생활보장, 주거, 건강, 사회서비스, 노동권 등 가장 기본적인 삶과 생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앞서서 지켜야하고 확대되어야 할 일이다.

(反빈곤뉴스레터 200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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