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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6/12
    [7탄] 차 떼고 포 떼는 <강제실시>(3)
    지재권대책위
  2. 2006/06/12
    [7탄]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는 불공정한 게임
    지재권대책위

[7탄] 차 떼고 포 떼는 <강제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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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탄]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는 불공정한 게임

- 의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는 80년대 이후 오히려 평균수명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에이즈와 결핵, 말라리아의 재출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짐바브웨와 케냐의 평균수명은 80년대 초중반까지 52~3세까지 꾸준히 올라갔으나 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떨어져 2002년에는 40세 밑으로 떨어졌다. 유엔에이즈계획이 지난 6월 3일 밝힌 바에 의하면 25년후 아프리카 에이즈 사망자는 1억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 인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에이즈 감염자 수가 지난해 약 830만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인도는 세계에서 에이즈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인데 인도의 에이즈 환자 중 7%, 에이즈에 감염된 임신여성 중 1.6%만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 등 치료를 받고 있다. 1분에 한명의 어린이가 에이즈로 사망한다.
- 63억의 세계 인구 중 80% 정도는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개도국 중 2/3의 국가는 국민소득 3,255달러 이하인 국가이다. 밥을 먹을 돈도 없는데 약을 살 돈이 있을 리 없다. 생명공학이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이나 재해에 대처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보건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4~5만원 정도 드는 에이즈 치료비 전액을 정부가 지원한다. 아직은 에이즈 환자가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의 수가 적은 만큼 제약사들이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아, 2000년 이후에 개발된 치료제는 대부분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지 않다. 국내에서 시판하지 않는 치료제는 희귀의약품센터에 ‘자가치료의약품’으로 신청을 하면 희귀의약품센터에서 구입해주지만 비용은 전액 환자부담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엄두도 못 낸다. 전염성 질환은 바이러스나 세균이 계속해서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또는 항바이러스제나 항균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 새로운 약을 처방해야 하므로, 신약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인 퓨제온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지 않은데, 미국에서의 환자1인당 연간 비용이 2만5천 달러이다.

정부의 지원이 가능한가, 보험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 있는가에 따라 의약품 복용 가능성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의약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세계적인 공통점이다. 원인은 특허권이다.

세계무역기구가 1994년 출범한 이후, 특허는 의약품의 수급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 달리 특허가 의약개발에 기여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의약품에 접근하는 데 장벽이 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계속되었다. 20년이라는 특허보호기간 만료 전후의 가격차이나, 특허보호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의약품의 가격차이는 100배가 넘는 것도 있을 지경이다. 반면 특허약의 마진율은 2,000%에 달하는 것도 있다. 특허권을 가진 독점기업은 가격을 낮추려고 정부가 개입하면, 시장 진입 거부로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정부와 제약사인 노바티스 간의 협상에서 정부는 노바티스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가격을 낮추면 팔지 않겠다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의약품 접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지구적 차원에서 노력해 왔다. 2002년 이후로 잠비아, 모잠비크, 짐바브웨, 말레이시아가 특허권이 걸려있는 에이즈 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강행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미국의 반대로 좌절되었지만, 에이즈의 심각성이 점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들 국가는 미국과 제약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실시를 강행할 수 있었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발명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각국의 특허법 대부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나 국가 긴급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한 경우에 강제실시를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특허법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원자력이나 보건, 환경 관련한 개별 법규에서 일정한 경우 강제실시를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점규제를 위한 목적으로 미국에서는 수천건에 달하는 강제실시를 이미 허용한 바 있다. 의약발명의 경우 강제실시를 허용하면, 국영기업이 약품을 생산하여 무상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고, 제3의 제약회사가 정부 허락을 얻어 저가의 카피약품 판매가 가능하다. 강제실시를 하는 경우에도 특허권자에게 합당한 보상은 하게 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는 글로벌펀드의 설립과 세계보건기구의 각종 결정을 들 수 있다. 2002년에는 G7 국가에 의해 에이즈·말라리아·결핵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가 설립되었고,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3by5 계획, 즉 2005년까지 에이즈 치료가 필요한 600만명 가운데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제공한다는 계획이 채택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각국 정부가 보건의료정책의 추진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협정(아래 트립스협정)이 보장하는 융통성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아래 FTA)에 의해 우회적으로 금지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각국의 강제실시를 방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세계적 차원의 노력에 대해서도 계속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의 회의에 참석할 대표들을 보건 전문가가 아닌 제약회사의 전직, 현직 임원으로 구성하여 제약회사의 이익을 제한하는 어떠한 결정에도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해 왔다. 미국 주요 기업들이 재정을 지원하고 기업의 전현직 대표들이 그 이사로 있는 허드슨연구소는 미국 정책결정자와 정치가를 상대로 교육활동을 전개하는데, 이 연구소는 특허약품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카피약의 안전성이나 효능이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유포하고 있다.

 

FTA는 미국의 방해 전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과 미국이 체결한 FTA 협정문을 보면 강제실시권은 트립스협정이 인정하는 범위보다 지나치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도 그 특허발명의 실시가 비상업적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강제실시를 허용한다.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의 실시가 가격이 저가라도 상업적이라고 인정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비상업적’이라는 제한은 강제실시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급이 불충분한 경우에는 특허권자의 권리남용으로 보아 강제실시를 허용하는 것이 1880년대 ‘산업재산권 보호에 관한 파리협약’ 이래 보장되었다. 그러나 미국식 FTA는 이를 금지한다. 따라서 제약회사가 국내 시장이 소규모라거나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의약품 공급을 거부할 경우,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강제실시가 가능하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나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특허보호기간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특허보호기간이 20년이라는 원칙은 그대로 두 되, 특허출원의 심사과정에서 심사가 지연되는 기간만큼 특허보호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허출원을 심사하는 특허청 입장에서는 심사기간 단축의 부담이 커서 신중하게 심사할 수 없게 되고, 부실한 특허권을 양산할 우려가 높다. 부실한 특허권은 동종업계 내의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어 분쟁해결 비용이 증가할 것이고, 분쟁비용을 감당할 자본력이 우세한 기업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에서도 이와 같은 요구를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1차 본협상이 마무리되고 지적재산권분야 통합협정문이 작성된 지금 아마도 이미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한미FTA에 우리는 찬성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특허권을 기술의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제도로 인정하고, 특허권자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것이 기술발전, 이에 따른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도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도식은 특허제도가 어느 누구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한 중립적인 제도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런 통념에 의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가 특허권자에게 정당한 보상인가의 문제는 늘 남아있기 때문에, 특허권은 사회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다는 중도적 입장이 항상 대안처럼 제시된다. 중도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한미FTA는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 강제실시권과 같은 사회 정책상 필수적인 수단들을 FTA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간 통찰력이 필요하다. 특허제도는 먼저 발명하여 상품화한 사람에게 일정한 시장 독점력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 특허제도에 의해 기술혁신이 추동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명백히 증명된바 없다. 오늘날의 특허제도는 초기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자본주의 성장과 더불어 점차 견고해지고 강력해졌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어 온 6·70년대 이후 특허제도는 세계적으로 통일화되면서 더욱 강력한 수준으로 진화했다. 이 모든 흐름을 이끌어 온 것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정부이지만, 그 뒤에는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 트립스협정만 해도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와 IBM 등이 초안을 만들었다. 이러한 특허제도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때 적어도 오늘날의 특허제도는 이미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성장의 이익을 배분하는 중립적인 제도가 아니라 미국의 주요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리모델링한 편파적 제도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미국 정부의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거대 기업들의 전·현직 대표나 이사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정부관료가 되거나 이익단체를 만들어 정책이나 법률을 만들고 정부가 반영하도록 로비한다. 한미FTA는 미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를 앞세워 한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장으로 조성하기 위한 전략이며, 특허권의 강화는 그 주요한 전술이다. 한미FTA체결로 특허권이 점차 강화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생활과 생명을 갉아먹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방식과 속도의 문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에이즈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것이 우리가 한미FTA를 반대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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