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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05
    [13탄]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7)
    지재권대책위
  2. 2006/07/05
    [13탄] 공공영역의 사망 선고, “기업-국가” 소송과 비위반제소
    지재권대책위

[13탄]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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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탄] 공공영역의 사망 선고, “기업-국가” 소송과 비위반제소

2006년 6월 19일 다국적제약사들이 소공동 조선호텔에 모였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추진 방안’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국적제약사들은 의약품 선별보험등재 제도(positive list,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을 미리 정해놓는 정책)가 신약의 개발 의지를 꺾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의 진정한 의도는 높은 약가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한미FTA가 타결되면 다국적제약사들은 더 이상 호텔에 모여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FTA 중재기구에 분쟁을 제기하면 된다.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투자자 대 국가 소송을 인정하는 FTA의 분쟁해결 제도이다. 다국적제약사는 한국에서 신약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적재산권자이고, 지적재산권자는 투자자의 지위를 가지므로 다국적제약사는 투자자로서 한국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다. 즉,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 제약사는 한국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으며, 손해배상과 한국 정부 정책의 철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투자자의 정부 제소와 함께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비위반제소 문제이다. ‘비위반제소’란 말 그대로 위반 사항이 없어도 제소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FTA는 두 나라 사이의 계약이고 약속이므로 어느 한 당사자가 FTA로 약속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FTA를 위반하면 다른 당사자가 문제를 삼을 수 있다. 그런데 FTA를 위반하지도 않았거나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제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비위반제소이다. 미국-호주 FTA에서는 지적재산권 분야를 비롯하여 농업 분야, 원산지 규정, 서비스에 대한 국경 무역, 정부 조달, 내국민 대우 및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분야에서 기대 이익의 무효화나 손상을 이유로 한 분쟁을 인정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내에서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비위반제소를 인정할 것인지는 10년도 더 넘게 논의하였으나(실제로는 미국만 인정하자고 주장하였음), 아직까지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지재권에 대해 비위반제소를 인정하면 무분별한 분쟁의 남발로 인한 주권 침해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조약이나 협정 등이 비위반제소와 무관하다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일치한다.  WTO 지적재산권협정(아래 트립스 협정) 이사회에서 비위반제소 문제를 논의할 때에도 이것을 트립스 협정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나라는 단 하나 미국뿐이었다.  유럽과 캐나다는 비위반 제소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신중한 검토를 하기 전에는 이를 도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모든 개도국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이 비위반제소의 인정을 주장하는 주된 목적은 트립스 협정 제8조에 따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개도국 정부의 조치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일방적인 논리와 다른 국가의 공공정책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미국이 협상력이 약한 나라를 상대로 한 FTA에서 관철한 독소조항인 ‘비위반제소’가 한국에도 상륙하려고 한다.

 

비위반제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소의 원인이 되는 ‘기대되는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의 의미와 범위가 막연하고 불분명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분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다른 나라 정부의 합법적인 조치 예를 들면, 세금 부과, 광고 규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 조치 등을 문제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경제, 문화, 환경, 보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나, 저작물의 공정이용을 넓게 인정하거나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법원의 판결들이 모두 비위반제소의 대상으로 될 수 있다. 또한, 일방적인 분쟁절차의 개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특허법이나 저작권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권리 제한 조치들이 억제될 수 있고 다국적 기업의 제소를 피하기 위해 공공 정책이 위축되고 주권이 훼손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2001년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를 상대로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의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하였을 때, 다국적 제약사는 한국 정부가 강제실시를 허용한다면 특허권자가 기대했던 이익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WTO 하의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NAFTA의 경우 외국 기업이 상대국의 규제로 피해를 입는다고 여기면 -협정에 의거하지 않아도- 특별 법정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외국기업들이 지금까지 청구한 배상액만 1백30억 달러(약 13조원)를 넘는다. 반면 외국 기업의 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국제 법정에 제소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고 환경이나 건강, 안전에 대한 아무리 중요한 규제도 NAFTA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한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이 미국의 지재권자로부터 직접 제소를 당할 수 있는, 그것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비위반 제소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공영역을 고려한 정책을 펼 수 있겠는가? 비위반 제소와 투자자-정부 소송은 공공정책을 무덤으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가 될 것이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 huri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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