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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2
    [시 한 편] 박노해 '민들레처럼'
    누구나
  2. 2009/11/11
    [시 한 편]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누구나

[시 한 편] 박노해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박노해

  

  

일주일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염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 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오"

어느 도적놈인진 조직폭력배인지

민들레꽃 한 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 쥐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도 맞춰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합니다

민들레꽃 한 송이로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하며

민들레 꽃을 바라봅니다

어디선가 묶은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와 내 손에까지 몰래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는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는

흔하고 너른 풀잎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은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순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퉁이

쇠창살 너머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가진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밟히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 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 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성의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 중에 수천 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 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 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이 시는 대학교 때 접했지만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긴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ㅡㅡ;

다만 이 시는 개인적으로 민들레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이미지를 그린 시라서 기억한다.

 

꽃과 있을 때 화려해보여서 아름다운 꽃,

어떤 상황에서 돋보이는 꽃보다는

들판과 잘 어울리고, 풀과 잘 어우러지는 꽃들이 좋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민들레가 돋보이는 순간은

도심 한 뻠 흙에서, 집 앞 골목길에서 만났을 때 뿐이다.

어떨 땐 시멘트에서 피어난 것도 같다.

맨 흙 위에서나 시멘트 위에서는 돋보이지만

들판과 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

 

2007년에 '민들레처럼'이란 노래를 처음 들었다.

야학교사MT에서 술자리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술에 취한 한 친구가 방 한 가운데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고 있거나 분주하게 술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그 친구는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두손을 모으고 반듯하게 서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인 것은 분명한데 왠지 익숙한 가사.

이내 7~8년 전 스쳐지나쳤던 시였던 것을 기억해냈다.

노래를 들으면서 시를 읽었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지만 시에 담겨진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그렇게 살고 싶은 놈인가보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시인도 그 마음으로 이 시를 썼겠구나, 더 절절했겠구나...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삶과 참 멀게 느껴져 부끄러웠다.

나에게 그 시는 하나의 이미지였구나 삶이 아니라.

그러니 느낌도 감흥도 없고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했던 시, 아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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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 김남주 '나의 칼 나의 피'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그대 살찐 가슴 위에 언덕 위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평등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놓은 법이

법관이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농부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너머 평지길 황토길 위에

사래 긴 밭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는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투석기의 돌 옛 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평등이여 평등의 나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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