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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박노해
일주일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염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 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오"
어느 도적놈인진 조직폭력배인지
민들레꽃 한 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 쥐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도 맞춰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합니다
민들레꽃 한 송이로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하며
민들레 꽃을 바라봅니다
어디선가 묶은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와 내 손에까지 몰래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는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는
흔하고 너른 풀잎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은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순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퉁이
쇠창살 너머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가진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밟히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 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 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성의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 중에 수천 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 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 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이 시는 대학교 때 접했지만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긴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ㅡㅡ;
다만 이 시는 개인적으로 민들레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이미지를 그린 시라서 기억한다.
꽃과 있을 때 화려해보여서 아름다운 꽃,
어떤 상황에서 돋보이는 꽃보다는
들판과 잘 어울리고, 풀과 잘 어우러지는 꽃들이 좋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민들레가 돋보이는 순간은
도심 한 뻠 흙에서, 집 앞 골목길에서 만났을 때 뿐이다.
어떨 땐 시멘트에서 피어난 것도 같다.
맨 흙 위에서나 시멘트 위에서는 돋보이지만
들판과 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
2007년에 '민들레처럼'이란 노래를 처음 들었다.
야학교사MT에서 술자리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술에 취한 한 친구가 방 한 가운데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고 있거나 분주하게 술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그 친구는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두손을 모으고 반듯하게 서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인 것은 분명한데 왠지 익숙한 가사.
이내 7~8년 전 스쳐지나쳤던 시였던 것을 기억해냈다.
노래를 들으면서 시를 읽었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지만 시에 담겨진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그렇게 살고 싶은 놈인가보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시인도 그 마음으로 이 시를 썼겠구나, 더 절절했겠구나...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삶과 참 멀게 느껴져 부끄러웠다.
나에게 그 시는 하나의 이미지였구나 삶이 아니라.
그러니 느낌도 감흥도 없고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했던 시, 아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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