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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18
    탈매체화?
    유마

탈매체화?

가타리는 <세 가지 생태학>에서 좋은 삶의 문제와 결부시켜

자본주의적 매체의 탈매체화를 촉구한 바 있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매체는 우리를 모방-동일화의 방향으로 이끈다.

매체의 수용자로서  우리는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쉽게 빠져 든다.

즉 대중 매체는 우리의 욕망을 막고 그 공간에 욕망을 포획시킨다.

욕망을 자극하는 동시에 가로막기. 소비의 욕망을 자극하되 탈주의 욕망을 저지하는 것.

이것이 대중 매체 아닐까?

이렇게 갇혀진 욕망의 정치를 벗어나 매체를 새롭게 전유하는 것, 이것을 탈 매체화라고 하자.

 

탈매체화는 사람들의 탈정치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제 의회가 더 이상 사람들을 '대의'하지 않는 것처럼,

매체 역시 사람들의 다양한 뜻을  하나의 여론으로 생산할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이 매체 자체가 확대되어 버린 상황에서 여론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미디어 액션을 하기가 쉽지 않았던 조건. 이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글의 울림과 자신을 동일시화함으로써 공명하고 이 공명을 통해 하나의 생산하는 문제. 

이런 점에서 이 하나의 소리는 희소성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디어의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의 소리에 자신을 겹치는 것보다 자신의 소리를 내는게 더 편하고 수월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신문의 소리에 자신을 겹치는  주체로 생산되지 않는다,. 훈육 시대의 종말이라고 할까?

 

미디어의 과잉이라는 조건 하에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관심을 받을가에 관심을 둔다. 댓글이 달리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두려움 아닐까?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것보다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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