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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군정치의 나라(?)

 지난 3주간 팔자에 없는 미국 여행을 다녀오느라 블로그에 글을 한달 넘게 올리지 못했다.

 

몸은 진작 귀국했는데, 구름 위를 헤매고 다니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한동안 고생했다.

 

이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슬슬 귀국 보고 대회를 하고자 합니다.^^

 

미국, 선군정치의 나라(?)

 

"이제 우리 미국의 진정한 영웅들을 불러보고자 합니다. 2차대전 참전 용사들 일어나 주세요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환호성),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환호성), 이라크전 참전용사들(환호성), 육군(환호성), 해군(환호성), 공군(환호성), 해병대(환호성), 그들의 아내, 아들, 딸, 부모, 모두 일어서주십시오.(환호성)"

 

지난 3주간의 미국 방문 동안 내게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하와이에서 한 호텔에서 있었던 디너쇼 형식의 하와이 민속춤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랐을때 사회자는 그렇게 '미국의 영웅'들을 호명했고, 그 행사에 참석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한번씩은 일어났다.

 

나중에 얘기를 듣고 보니 그 호텔이 군 관련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유독 군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내겐 섬뜩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워싱턴 D.C에 있는 2차 세계대전기념관의 성조기)

 

어느 사회에서나 전쟁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일상의 조직적인 파괴, 전쟁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잔혹성, 더 나아가 악마성, 또 전통적ㆍ공동체적 규범이 급속히 무너지면서 경험하게 되는 기존 가치체계의 혼란. 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가족과 예기치 않은 이별이나 상실, 신체의 부분적 상실, 극도의 굶주림과 가난, 예측 불가능한 미래...



  이처럼 인간의 잠재적 광기를 총동원하는 전쟁은 인간의 집단적 기억 속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로 각인된다. 따라서 전쟁 이후의 역사는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사회도 반세기전 일어났던 한국전쟁과 그 결과인 분단체제로 전쟁의 비극성과 잔인성을 경험하고 있다.
  
3주간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한국보다 훨씬 많은 전쟁을 수행한, 그리고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 아래 실체가 불분명한 위협세력과 전쟁 중인 미국 사회 곳곳에서 그 상처를 엿볼 수 있었다. 또 이런 상처를 직면하는 방식의 차이는 적잖은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집집마다 나부끼는 성조기, 일상화된 검문검색
  

"9.11 이후 옷에 성조기 배지를 달고 다녔다.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9.11 테러 이후 전사회적인 애도의 물결에 동참하고 싶었다."
  
하와이에서 만난 40대 미국 시민은 지난 2001년 9월 11일 이후 3년 넘게 성조기 배지를 달고 다녔다고 밝혔다.
  

워싱턴, 뉴욕 등 도심 주택가로 들어서면 집집마다 성조기를 걸어놓은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성조기를 워낙에 좋아했지만 일년 내내 성조기를 걸어놓는 풍경은 9.11 테러 이후 비롯된 것이라고 미국 정부 관계자가 설명했다.
  
또 9.11 테러 이후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가 검문검색이 일상화 됐다는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미국 입국시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지문 채취와 사진 촬영을 기본적으로 한다. 또 국방부, 국무부 등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정도 규모의 빌딩에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신원조회, 가방검사 등을 거쳐야만 했다.
  
특히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은 4차례의 검문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우선 건물 바깥에서 군인들에게 신분증 및 가방 검사를 마친 뒤 건물 입구에 마련된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두 가지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면 안내데스크로 가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방문 목적 등을 확인받아야 한다. 방문 일정이 확인되면 안내요원이 사진촬영을 한 뒤 사진이 인쇄된 방문증을 만들어준다. 이 방문증을 가지고 다시 줄을 서서 방문증 뒷면에 찍힌 바코드를 인식하는 기계가 달린 출입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펜타곤 건물에 진입한 것이다.
  
펜타곤 건물 내에선 기본적으로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사진기는 얼마든지 테러용 폭탄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펜타곤 내에서도 브리핑룸 외에 사진 촬영이 자유로운 곳이 있다. 지난 9.11 테러 당시 여객기 테러로 희생된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당시 비행기 충돌로 탑승자를 포함해 모두 1백89명이 숨졌다. 이 기념관에는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대리석 비석, 희생자들의 사연이 소개된 책자 등이 있다. 한 옆에 작은 예배당도 딸렸다.

 

새로운 관광명소가 된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붕괴된 지점. 원래는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 등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 또는 피폭 중심지를 뜻하는 군사용어)에서도 9.11 테러가 미국인들에게 준 충격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Freedom is not Free"
  
미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전쟁이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 한복판에는 제2차 세계대전기념관, 한국전쟁기념관, 베트남전쟁기념관이 이웃해 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전쟁기념관들을 찾은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국민들에게 아이디어를 공모해 만들어졌다는 베트남전쟁기념관은 기념관 입구에 사망자 이름이 알파벳 순으로 정리된 책자가 몇권 배치돼 있었다. 그 책에는 사망자 이름 옆에 기념관 벽에 그 이름이 새겨진 위치가 기록돼 있어 추모객들이 찾아갈 수 있게 했다. 기념관의 검은 대리석 벽면에는 날짜순으로 사망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기념관은 당시 군인들의 모습을 형상해 놓았다. 기념관 한쪽 벽면에 새겨져 있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글귀는 의미심장했다.
  
바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경고가 어쩌면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1950년대 반공법을 연상케하는 '애국법'(Patriot Act)이 통과되는 등 일련의 민주주의적 퇴행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아닌가 싶었다. 9.11 테러가 발생한지 6주만에 만들어진 이 법은 수사당국에 이메일과 전화 도·감청, 의료·도서관 기록 검열 등 개인정보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과 비밀영장·체포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내용 때문에 애국법은 숱한 인권 침해 논란과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위협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말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이 입안된데 이어 공교롭게도 기자가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인 3월초 미국이 2025년까지 전세계 독재국가를 민주화시키는 등 민주주의와 자유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democracy act of 2005)이 의회에 상정됐다. 부시 제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을 대표하는 이 법안에 대해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반발이 거세다.


 

(펜타곤 내 9.11 당시 여객기 테러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기념관. 9.11테러를 포함한 각종 전쟁 희생자들을 미국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들로부터 미국을 지켜낸 'American Heroes'라 칭한다.)


 

(뉴욕 그라운드 제로. 뉴욕시는 이 자리에 새로운 건물과 9.11 테러를 기념하는 기념관 등을 지을 계획이지만 아직은 무역센터 빌딩이 철거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 참상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다.)


 

(워싱턴 D.C의 한국전쟁기념관. "Freedom is not free"라고 새겨진 대리석에 기대 어린이 관광객들이 장난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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