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약간의 마조키스트적 기질이 있다고 생각되는 정희진씨에게 한창 열광했을 땐
사유는 상처에서 시작된다는 그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모든 상처를 다 경험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그 당시 내가 쓴 글을 보면 "철이 없게도 난 그녀의 상처를 부러워한다." 라는
문장이 있을 정도로 나는 나의 경험에서 생겨나는 나의 생각을 무척이나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참 철이 없었다.
상처 혹은 불행을 경쟁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효과를 낳을까.
나는 너보다 더 아파- 나의 상처는 너의 것보다 더 깊어-
라는 생각이 낳는 효과에 대해 회의가 드는 이 시점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어떤 기억으로 남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상처를 받은 이가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만드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피해감이나 불행을 사유의 원천으로 전화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라고 아마 정희진씨는 얘기하는 것이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은 참 오독하기 쉬운 것 같다.
경험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타자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는 일이 참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나의복잡한 마음들이 자신들을 언어로 정리해주길,
원한다.
집요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세상엔 정리될 수 없는 것이 정리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음을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이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음을
내가 어찌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정리되지 않고 서술되지 않는,
어떤 논리나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
그거...난 관심과 표현이라고 생각해.
믿음? 믿음은 관심과 표현 이후의 일.
그건 어떤 경험적 판단인거지 어떻게 사람을 처음부터 믿을 수 있겠어-
너의 관심과 표현이 부족하다 느끼면 난 너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고
폭발할 것 같은 궁금증을 참다 참다 결국은 너에게 말해버리고 말겠지.
너의 사랑이 의심스럽다고, 날 더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날 정말 사랑하는 거 맞냐고.
하지만, 사랑이란거, 상대적인 개념이란 거 나도 알아.
그치만 각각이 상대적이면서도 비교급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 독특한
색채를 가진 감정이란 것도 알아. 여러가지 형태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랑이
존재하겠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서로가 서로에게 몰입되버리는 사랑이야.
네가 내게 몰입하지 않는 한, 내가 너에게 몰입하지 않는 한
나는 항상 이 사랑이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낄꺼야.
그리고 너의 사랑을 의심하겠지.
너의 잘못이 아닌 일로
너에게 상처주는 것- 너무 속상하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