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미치게 아름다운
이성복
1998년 1월 2일 선산에서 상주로 통하는
25번 국도에서 개나리 덤불이나 관목숲,
하다못해 갈대까지도 성에로, 서리로
하얗게 코팅한 상태에서, 감 홍시 같은
해는 안개 낀 하늘 위 데구루루 굴러
내 차는 유리창 앞에 딱 붙어 섰는데, 그것들
너무 아름다워 내 눈이 나도 모르게 웃었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미치게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전속력 전방위적으로
아름다운 것, 왜 이렇게 아름다우냐고
물으면, 왜 어떻게 아름답다고 대답할 뿐,
코팅한 입으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미치게 마음에 드는 시다. 아름다운 것을 아무리 현란하고 다채롭고 신선한 언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본래의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조잡하다. 위대한 작가가 대단한 언어를 만들어내더라도 그것은 또 새로운 미치게 아름다운 언어이지, 본래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코팅한 입으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멋진 배우들, 화려하고 세련된 패션, 대단한 감동을 주는 명작들...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은, 갑자기 내가 아름다운 것들 앞에 뚝 떨어진 것처럼, 아름다움에 기뻐 어쩔 줄 모르고 행운에 감사해 마지 않도록 하는 종류의 것들은 아니다.
갈대, 창에 낀 성에, 해.
한적한 국도 가에 핀 풀꽃.
나무 이파리나 강물에 부서지는 햇빛.
눈을 마주치며 달아나는 고양이.
낯선 이의 사심없는 친절.
살짝 모자라게, 약간, 쫌, 그럭저럭 아름다운 거라는 건 없다. 아름다운 것들은 정말 언제나 완벽하게, 가슴 터지게, 미치게, 전속력 전방위적으로 아름다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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