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절반 

                              이병률

 

 

한 사람을 잊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이 사는 데 육십 년이 걸린다 치면

이 생에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나니

 

당신이 살다 간 옷들과 신발들과

이불 따위를 다 태웠건만

당신의 머리칼이 싹을 틔우더니

한 며칠 꽃망울을 맺다가 죽은 걸 보면

앞으로 한 삼십 년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데

꼬박 삼십 년이 걸린 셈

 

이러절 한 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일진대

남은 삼십 년 그 세월 동안

넋 놓고 앉아만 있을 몸뚱어리는

싹 틔우지도 꽃망울을 맺지도 못하고

마디 곱은 손발이나 주무를 터

 

한 사람을 만나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을 잊는 데 삼십 년이 걸린다고 치면

컴컴한 얼룩 하나 만들고 지우는 일이 한 생의 일일 터

 

나머지 절반에 죽을 것처럼 도착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지지는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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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9 23:25 2010/01/1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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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횬종
    2010/01/21 17:57 Delete Reply Permalink

    아, 이 시가 마음에 턱 걸리는구나.

  2. 어느바람
    2010/01/26 01:32 Delete Reply Permalink

    그러게 나두 첫행 읽자마자 탁 걸리는 느낌였달까
    삼십 년 지나야 잊을 사람 만난 적두 없는 거 같은데..

  3. 스머프...
    2010/01/29 16:15 Delete Reply Permalink

    한 사람을 잊는데 30년씩이나 걸린다는 걸 몰랐다는...ㅎ
    어쩌면 못 잊는다는 말도 포함하는 거 아닐까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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