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악덕이다-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학생의 이야기

 

  진보넷이 안되서 이글루스에 잠깐 올려둔 글에 많은 이들이 다녀갔고 흔적을 남겼다. 내 생애 최다 댓글과 조회수였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댓글을 확인하지 못했다. 무서워서. 침묵은 어쩌고 저쩌고 대차게도 적어놓고선 겁나서 댓글도 확인 못하는 처지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지금이라면 겨우 인터넷 댓글에 마음이 패이진 않겠지만, 무튼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내 안에는 뿌리 뽑기 힘든 댓글 공포증 이랄까 하는 게 자라나 있는 모양이다.

  이제 보니 악플이랄 건 없다. 그치만 문제의 자보가 아니라 내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관련있는 댓글을 적은 이도 없다. 왠지 거절당한 느낌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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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이 미덕이 되는 순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 외의 침묵은 죄고 악덕이고 최소한 절대 자랑할 거리는 못 된다. 내가 사전을 만든다면 이렇게 쓰겠다.

침묵 [沈默] [명사]  1. 자기 안위  2. 나약한 근성  3. 고상함을 연기하는 일  4. 귀차니즘  
                            *(예외적으로)좋은용법  1. 타인의 비밀  2. 자기 과시 

  침묵에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해해보려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다. 침묵해야 할 일에 대해서 떠버리느라 힘을 다 써서 말해야 하는 순간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이젠 그냥 침묵이 역겹고 다문 입들이 역겹게 느껴짐을 인정한다. 나를 포함해서. 유치원 때 처음 가지게 된 국어사전은 '포함'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말은 불완전하다. 사람도 불완전하다. 발언 후에 항상 발견하는 건 모자란 자신이다. 손상되고 싶지 않은 자의식과 싸워야 한다. 타인의 시선과 오해와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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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비록 내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희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을 말살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희망이라는 것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확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략)

  나 자신은 현재 이미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결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아직 그 때 나 자신이 가졌던 적막한 비애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고함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적막 속에서 치닫는 용사들에게 약간의 위로가 되고 그들이 앞장서서 달려가는 데 거리낌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함성이 용맹스러운 것인지, 슬픈 것인지, 증오스러운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중략) 나 자신으로서도 내가 겪기에 고통스러웠던 적막감을, 내 젊은 시절과 같이 꿈에 부풀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결코 다시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자서' 中 (루쉰소설전집,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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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8 14:13 2010/03/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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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횬종
    2010/03/18 15:13 Delete Reply Permalink

    네 글이, 참 감동적일 때가 있다. 고맙고. 흠....

    이 부분은 오래 기억해두고 싶네..............말은 불완전하다. 사람도 불완전하다. 발언 후에 항상 발견하는 건 모자란 자신이다. 손상되고 싶지 않은 자의식과 싸워야 한다. 타인의 시선과 오해와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가?............

    사실, 이 자보 붙은 날 나도 봤는데,나는 고작 '좀 더 직선적으로 써도 좋았을텐데, 아쉽다'고 생각했어. 한 마디도 못할꺼면서 어쩜 이렇게 '평가하는 말'은 쉬웠을까.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어도 그것을 꺼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결코 '아는 것'이 아닌데 말이지... 말이란, 참...무겁구나.

  2. 이니스
    2010/03/21 01:48 Delete Reply Permalink

    아.. 반성하게 되네요. 사람들을 이해시키기를 포기하며 침묵하는 주제에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쌓아두던 일이 무수히 생각납니다. 바람님의 말, 저도 기억해 두렵니다.

  3. 어느바람
    2010/03/22 09:50 Delete Reply Permalink

    저도 다를 거 없답니다.. 같이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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