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 간 거의 탈 일이 없던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오래 맡겼던 밤이었다.

  "우비 사세요. 친환경 우비요. 사천원이에요. 비상용으로 하나 사세요."

  토요일 밤. 주말을 즐겼던지 일하며 좋은 날씨를 저주했던지, 귀가하는 사람들이 빼곡한 열차 안에서 키작은 중년 여자는 사람들을 헤쳐가며 우비를 들이대길 멈추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도 서울살이 5년쯤 하면서 지하철 잡상인들을 꽤 봤지만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비가 쏟아져도 우산보다 덜 팔리는 우비인데, 이렇게 쾌청한 날에, 밤에, 우비라니. 듣도보도 못한 친환경 우비는 또 뭐란 말인가. 결정적으로 지하철 안에서는 이천원을 넘어가면 물건이 아무리 좋더라도 사는 사람의 수가 격하게 적어진다는, 나도 아는 사실을 왜 저 여자는 모르나. 편의점에서도 이천원에 파는 걸 세상에 사천원이라니. 말주변도 없어 같은 말만 반복했다.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 제대로 알아보고 준비해야지 아무도 사지 않을 물건을 들고 지하철을 타기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정신상태를 봐주기가 정말 힘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결국 손수레를 끌고서 다른 칸으로 향했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거세게 일었다.  이상했다. 사실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낸 것처럼 그 시공간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가려는지, 그녀의 집은 어떤 곳인지, 남편이나 자식은 어떻게 사는지, 실은 나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어서. 열차 안에서 그 여자만이 봄처럼 진달래빛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아서.

  슬퍼서 없어져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손장난으로 밀가루 반죽 매만지듯 하던 생각을 확실히 단단하게 뭉쳤다. 서울을 떠나자.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서울이든 다른 지역에서든 돈을 열심히 벌자. 하기 싫은 일 하면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 안되면 어떻게라도 한국 어느 구석에 내 집 한 채 살만큼은 돈을 벌자. 그러고는 정말 안녕이다. 어찌 보면 이제까지 내 짧은 생은 서울에 살기 위해 애써왔는데, 이제는 제 일 목표가 서울을 벗어남이 되어 있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이냐.

 

  가사도 모르고 그저 들리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비틀즈만 듣던 시절,  나는 Eleanor Rigby의 가사가 all the lonely people이 아니라 ordinary people인 줄 알았다. 너무 똑똑히 잘 들려서 확실히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후에 확인하게 되었을 때 좀 충격이었다. 그러나 all the lonely건 ordinary건 무슨 상관인가? 대체 죄송할 이유가 뭐냔 말이다.

 

  ah, look at ordinary people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come from?

  where do they all belon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07 10:12 2010/04/07 10:12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peel/trackback/270

  1. 하늘섬
    2010/04/07 19:56 Delete Reply Permalink

    너무 슬픈 얘기네요...

« Previous : 1 : ... 96 : 97 : 98 : 99 : 100 : 101 : 102 : 103 : 104 : ... 22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