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에게

 

지난 저녁 돌아오는 전철에서 h의 선물을 물끄러미 보곤 내내 좋더군요. 고맙고 고맙고... 돌아와 열어서 티셔츠를 입어보곤 "어, 얘가 내 치수를 어떻게 알았지?"하곤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맞춤처럼 꼭 맞고 이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맙다는 편지부터 써야겠구나 했답니다.

 

지난 밤 주량은 실은 속물기를 들킬만큼 꼭 맞았고, 간만에 초여름 도시의 거리 풍경도 보았습니다. 그만큼 칩거해 산다고 하는 편이 옳습니다. 지방의 풍경 좋은 곳을 다녀도 실은 홀로일 때가 많아 감탄도 홀로 짓고 삽니다.^^

 

한 2, 3년 속물기 내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른 이후부터 한번도 세상의 코드에 맞춰본 적이 없이 살았더군요. 그저 학교와 공부의 무게 밑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그래서 그냥 속기 내며 여느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회사생활 힘들지만, 그래서 마음 저 밑바닥에서 고독하라고 할 때까진 세상과 한번 싸워보길 바랍니다. 사실 자신 안에는 여러 자신이 있기에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인지 착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에게도 속고 또 자신을 속이고 하며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그런 참자신을 보기 위해서 불교에선 스스로 고행을 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어쩌면 세속에 있는 우리로선 이 풍진 세상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단련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의례 말하듯 '다 지나가니' 말입니다.

(중략) 

전 내일 전주집에 갔다가 순천 들렀다 올 생각입 니다. 서재와 뜰에서 세상에 소리내지 않는 것이란, 책을 쓰며 풀과 나무을 가꾸며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어쩌면 지금은 잠시 휴식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잘 지내고, 일로 건강 해치지는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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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한 노교수가 친구에게 쓴 편지다. 이 편지는 읽는 모두에게 말을 거는 종류의 글이기 때문에, 따로 허락은 받지 않았지만 무단 전제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올린다며 자기가 중2병이 걸렸는지 어쩌고 변명을 붙였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참고 아름다운 것을 내보이는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덕분에 마치 내가 편지를 받은 것처럼 든든하다. 

 

오랜만에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폈다.

 

"당신은 아직 젊으시며 무엇보다도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감히 부탁드리는 것인데, 제발 당신의 마음 밑바닥에 도사린 미해결의 문제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그 문제 자체를 밀폐된 방이나 낯선 말로 씌어진 책처럼 사랑하시고 지금 당장 성급히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 모든 것을 살면서 체험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우선 그 문제 속에 살아보십시오. …… 당신의 의지나 당신의 내면의 어떤 필연에서 올 때만 그걸 감수할 것이며, 결코 그것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고독이 크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그 사실을 기뻐하십시오.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위대함을 지니지 않은 고독이란 대체 무엇인가. 고독이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크고도 참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오게 마련입니다.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은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만으로라도 그들과 조금이나마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시간들이 바로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착각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그 고독뿐입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몰입하여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것─ 그런 것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처럼 고독하십시오."

 

 

이전에 위 편지를 받은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일 때문에 밤을 새야 한다는 애를 다시 회사로 들여보내는데 헤어지는 길에 녀석이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을 죽 흘렸던 적이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시험 낙방 소식을 들었던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 목적지 아닌 어느 역에서 내렸다고 했다. 아무 출구로나 나와서 처음 가는 번화가를 지나 으슥한 골목에 숨어 들어가, 꺽꺽 울었었노라고 말해줬다.

 

이 두 가지 눈물에 대해 '아름다운 것'이라는 제목을 붙여 글을 써봐야겠다 생각만 하고 미뤄뒀었다. 오늘 아름다운 편지를 보니 왠지 생각이 났다. 

저 눈물들을 떠올릴 때마다 타인의 고독을, 그이들의 가장 순정한 핵을 잠깐 들여다 본 듯한 느낌이었다, 고 감히 적어본다. 우리는 보통 경박한 편을 택했었는데, 아이로 만난 우리가 어른이 되고 있구나 싶다. 누구로도 채울 수 없는 고독을 져야 함을 알아버린 나이지만 너 역시 그러하다는 것도 다행히 알고 있다. 나로서는 가족 아닌 타인 앞에서 마음껏 엉엉 울어본 건 두번인데 다 저이들 앞에서였다. 

 

최근엔 외롭다고, 오랜만에 생각했다. 애정과 열정은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거였지, 고마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떠올렸다. 일상이 풍요로운 미궁이 됐고 나는 더 예민해진 것 같다. 나를 자꾸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 많아지고 약간 거짓되고픈 유혹도 받았다. 가 닿지는 못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것은 큰 행운이다. 그리고 나대로 더 고독해야겠다고, 저 편지들 덕에 외로움이 편안해졌다. 나도 아름다운 편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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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2 08:39 2013/05/2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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