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지우개가 있지 않은 이상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진 않을 거고 그럼 가끔은 생각날 수도 있는거구, 뭐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옛날 꼬~ㅅ날의 일이 생각 난다고 해도 그게 내가 꼭 찌질하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거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더라도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거라던 말은 맞다. 그치만 거기에 발목잡혀 있다거나는 거랑은 다른 이야기다. 그 이후의 시간들 속에서 배운 게 참 많지.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내가 참 좋다. 그 때문에 내가 볼 수 있게 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들에 관해 생각하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정말로.

 

  나만 상처받은 줄 알고, 내 안에 갇혀 있느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뒤늦게 생각하면서, 요새는 자주 부끄럽고 미안하네. 오랫동안 잃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얻은 게 훨씬 많더라.

 

 

+ 꿈

  전기 플러그 끝에 달린 두개의 뿔처럼 생긴 기계 혹은 뭉툭한 주사바늘을 일정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오른쪽 팔에 찔러넣어야만 한다.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의 팔에 무언가 주사해야 하는 사람과 주사를 맞는 사람. 나는 주사 없이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의지와 통제력을 잃고, 살상 욕구만 가득한 괴물로 변한다. 언제나 나를 지켜보는 다른 나는 심장이 가라앉는 것 같이 슬퍼하면서 주사를 놓는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시간 간격은 측정할 수도 없이 불규칙적이다. 나를 잃어버릴까봐 초조해하며 보내는 시간은 매 순간이 끔찍하게 두려워서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둘이 하나가 되었다. 왼손에 주사를 들고 오른팔에 또 찔러 넣는다. 피가 마르기도 전에 자꾸 덧찔린 살점이 너덜너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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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12:25 2008/07/0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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