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대청소를 했었다. 잡생각을 떨치고 싶을 땐 청소만큼 좋은 건 없다. 그보다는 사실 집이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상태였지. 저녁 내 쓸고 닦고 뒤집고 하면서, 100리터 봉투가 꽉 차도록 쓰레기를 눌러 담았다. 계속 미뤘던 손빨래도 하고, 무튼 할 건 다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12시 조금 넘어서 일찍 잠이 들었는데.

 

  날이 밝았고,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났다. 주변에 고양이야 많이 사니까 소리 들리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닌데, 왠지 이상한 느낌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온아, 온아, 불렀는데, 방 안 여기저기를 다 찾아봤는데도 온이가 없었다. 밖에서 나는 울음소리 온이 거구나, 덜컥 확신이 들어서 나가서 복도니 옥상이니 뛰어다녀도 녀석은 보이지 않아서... 아웅 하는 소리를 듣고 내려가 보니 계단 밑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계단에 꼭 달라 붙어 있는 걸..

 

온이를 안고 온아, 괜찮아 괜찮아. 누나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만 울면서 되뇄다.

 

얼마나 무서웠고, 놀랐을까. 청소를 하면서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온이가 들어왔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닫은 거다. 청소 다 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방 안에 온이가 없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 하다하다 못해 온이까지 잊어버리니. 미치겠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건망증 정도가 갈수록 더해가는 것 같은데, 말마따나 병원에 가봐야 하나..

 

남자에 정신 빠져 있느라 그랬던 거라는 생각도 드니, 괜스레 그 사람까지 밉고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아이 있는 엄마가 남자 만나다가 없는 새에 아이가 아팠거나, 혹시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의 그런 느낌이 이런 걸까. 만약 온이가 이대로 사라졌다면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들을 헤매게 되었을까. 아이를 잃어버리는 건 정말 한 순간인 걸, 아이를 잃어버린 수많은 부모들의 심경이 어떠한 것일지 나는 온이를 잃어버리는 상상을 통해서만 짐작했던 것이지만...

 

정말 다행이다, 아무 일 없이 네가 근처에 있어줘서 다행이었다. 정말. 너를 지켜주고 안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널 잊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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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3 12:05 2008/06/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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