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도 작품이라는데, 35년이나 이전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림체나 사운드가 멋졌다. 보통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어려운 낯선 그림체는 매력적이고, 그로테스크로 요약될 수 있을 법한 작품의 분위기는 창의적이고 기괴하다. 외계 생명체를 그리는 작품이야 많지만 이만큼이나 독특한 배경의 행성과 생물들은 처음이었다.

 

 

 

 

  이얌 행성에는 트라그 족이 살고 있고, 옴은 트라그족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애완동물이다. 옴은 바로 인간과 같은 모습, 감정을 지니고 있다. 현실세계의 인간이 애완동물을 대하는 모든 일반적인 행위가, 그 입장이 전도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인지 실감나게 느껴졌다. 애완동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귀찮은 벌레나 가축들에게 살충제를 뿌리고, 덫을 놓고, 움직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 그리고 인간의 잘못 때문에 불균형해진 생태계를 복원한답시고 동물 살해를 허용하는 일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동종간의 공감을 인간 외의 타자에게까지 확장해야 하며, 그렇지 않았을 때 파멸을 맞고 만다는 것이 「판타스틱 플래닛」이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상을 쓰고 난 후에 알게 되었지만, 1차적으로 이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 담았던 주제는 식민지배국으로서의 반성, 하지만 뭔가 미묘한 이중성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35년이라는 세월이 있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는 게 맞느냐 따질 건 없고, 한 작품을 두고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사람이 속한 당대와 사회의 영향력이란 역시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임을 새삼 확인했다.

 

 

 

 

  마지막은 예상 가능한 당연한 결말이지만,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가 앞서의 전개에 비해 너무 급작스레 처리된 것이 아쉬운 감이 있었다. 갑자기 뭥미? 하는 느낌. 트라그족이 결국 선택한 평화라는 것도 옴이 자신들만큼이나 영리하고 위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후의 일인데, 그러고 보면 힘의 균형이 있어야만 평화도 가능한 일이겠다. 작품 속 옴의 진화는 인류의 진화를 압축시켜 놓은 듯한 모습이다. 주술에서 지식으로, 강력한 지식의 힘을 통해 과학 문명으로, 그리고 가장 힘있는 종이 되어 지구에 군림하게 된 인간 말이다.

  어쨌든「판타스틱 플래닛」은 현실세계의 이야기를 다른 경험적 차원으로 옮겨 놓았을 때 SF가 갖는 강력한 호소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시에, 요즘 애니에서 보기 힘든 분위기가 참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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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13:00 2008/06/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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