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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1
    기계적 균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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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11/10
    오바마 현상(보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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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9/08
    주대환, 최병천,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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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8/19
    지젝으로 박노자 업어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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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8/19
    비 개방적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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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8/19
    판타스틱 경품행사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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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8/18
    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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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8/18
    이강국과 프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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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7/21
    경제위해 밥을 두끼만 먹자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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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7/11
    경제? 뭐 얼어죽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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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균형에 대해

한창 촛불 정국이 하나일때 하나의 글을 읽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정기적으로 메일로 구독하는 메일링 중에 '다산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고려대학교 김민환교수도 글을 쓰는데, '어떤 신문을 볼 것인가'(391번 글)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100%는 아니어도, 그의 말에 일리가 있겠다싶어 집에서는 경향신문을 구독하고 사무실에 와서는 한국일보를 찾아본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김민환 교수가 말하는 균형이란 그야말로 기계적 균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자(11일자) 한국일보 6면에는 '부동산 정책'에 관한 이야기가 실렸다.

"정부 구닥다리 처방에 거꾸로 가는 시장"

적절한 헤드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은 그것이 아니었다. 소위 시장전문가랍시고 등장하는 부동산업자들의 말을 인용해 '중소건설사 무주택자 등 배려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에 찬성입장을 보이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에 일정정도 영향력을 발휘해온 -특히 종부세관련해서- 서강대 김경환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다.

"현 위기 상황이야말로 왜곡된 규제 없앨 기회"

가 헤드라인이다. 그런가? 촛불집회땐 바로 그런 위기가 집회를 그만둬야할 이유가 되었으나, 지금의 위기는 오히려 정부의 실패하고 있는 정책을 지속할 때라고? 게다가 김경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종부세 등) 한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필요를 다했으니 없애야 한다". 좋다 이 정도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시는 바뀌지 않을,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 사람이 교수맞나?

제도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없앨 수 있는 것이라면, 종부세, 분양가 제한 등은 한국의 필요에 의한 제도인 것이고, 따라서 그 필요가 다했다고 생각하면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다시는 바뀌지 않을이라니...

나중에 새로운 필요가 발생되어도 바뀌지 않을 제도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건 뭐, 거의 강마에 톤으로 "똥덩어리" 수준아닌가?

그리고 신문을 넘기는데 10면에 "오바마-부시 정권이양 벌써 파열음"이라는 헤드라인이 보였다.

오바마 인수위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의 훈령 200여개를 취임즉시 파기하겠다는 것이었다. 법령이 아니라 훈령 정도면 대통령이 바뀐 마당에 당연한 조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를 '파열음'이란다.

그러면, 이명박이 정권잡고 좌파 10년 법안을 다 뜯어고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주 '아싸리 판' 아닌가? 그런데 한국일보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이렇게 평가하지 않았다. 결국 드는 생각은 당파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앞서 내가 존중했던 김민환 교수의 균형감각이라는 것이 결국은 기계적 균형감에 불과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겨레의 당파성이 조선일보의 그것만큼 거슬리지만 그럼에도 가운데 점인 '한국일보'가 균형일 순 없다고 말이다.

뭐 그렇다는 거다.

스펙트럼을 만든 후 자로 좌, 우를 재고 가운데 점을 균형이라고 칭하기는 싶다. 하지만 그것은 균형이 아니라 가운데 점에 불과하다. 가운데 점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어떤 의미도 없다.

아침에 출근해서 지난 금요일 토론회 결산보고서를 쓰는 참에. 집어든 한국일보 덕분에 아주 기분이 상해버렸다. 균형은 말이다, 김진석 선생이 말한대도, 기우뚱한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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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현상(보론)

윤삼님의 [‘오바마’라는 환상을 횡단하기] 에 관련된 글.

1. 뭐 논쟁을 하자고 트랙백을 한 것은 아니다. 단지 하나의 현상에 대해 나와 다른 반응에 대해 수집하고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일 뿐.

2. 이상하게도 나는 윤삼님의 비평에 100% 동의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래서 '오바마를 특별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글의 결론으로 미끌어들어가 못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오묘한 동시성의 결과로 그와 다른 맥락에서 비슷한 시기에 '오바마 현상'이라는 글을 쓰도록 했다.

3. 재미있는 것은 윤삼님의 글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드나들고 있는 박노자 블로그에서 본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간단하게 보자면 혁명의 실존성에 대한 논쟁일 수 있겠는데, 박노자는 '혁명은 전제한다했을 때 지금은 뭘할거냐'고 묻는 셈이고, 반대편은 '지금 뭘할거냐고 묻는 것 자체가 혁명의 폐기이자 곧 개량'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4. 마찬가지로 윤삼님이 말한대로 오바마의 당선은, 지금껏 미국을 미국이게 만들었던 그 상징체계를 다시금 구체화한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그가 지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나 전쟁 들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면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신임 대통령인 오바마가 우리의, 세계의 희망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5. 그럼에도 매케인이 아닌 오바마는 다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엄청난 투표률과 지지율은 최근 2~30년간 미국 현대사에선 보기 드문 현상이다. 또한, 보통의 생각과 반대로 '경제'자체로 당선했던 클린턴과는 다르게 오바마는 '새로운 미국'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걸었다. 그래서 나에겐 오바마는 하나의 현상이었던 셈이다.

6. 사족이지만, 현상학적 전통에서는 '사물 그자체로'라는 판단중지는 도구적 개념보다는 정언적 명령에 가깝다고 본다. 오바마를 내 입장에서 뭔가 추출해서 전유하려면, 그렇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7. 애써 윤삼님의 글에 비해 선명하지도, 굳건하지도 못한 관점을 가진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일까? 흐흐흐 (나중에 이런 자격지심을 기억하자...^^) 암튼 생각은 써야 자극을 받는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써놓으니깐 윤삼님의 글도 찾아보고 그러잖아?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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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최병천, 시대정신

최병천의 레디앙 기고글(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0900)

주대환 선생이 '시대정신'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 가지고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90년대의 주대환 선생과 2000년대의 주대환선생에겐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믿는 고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레디앙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쭉 쫓아 가보았는데 최병천 아저씨가 있더라.

뭐, 예전부터 사민주의를 입에 달고 다닌 분이라 대강의 정치적인 입장을 알았지만 이번 주대환 논쟁에서 끼어든 폼새가 영 마뜩찮 부분이 있어 코멘트.

1. 대한민국을 긍정하기

최병천은 줄곧 좌파와 우파의 문제성정을 고집한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좌파는 친일부역으로부터 자유롭고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이 정치적 자원이라는 표현.

문 제는 그렇게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사회과학적(그가 글 곳곳에 명기하는 논문들의 학문적 기반인 과학적 방법론) 개념으로 그리 적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우파는 합리적 보수주의까지 포괄하는 유연성을 가지는 반면, 그가 말하는 좌파는 자유주의자까지 좌파로 부르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대환이 주장한 대한민국 긍정하기는, '한국전쟁'에 대한 경험여부로 유권자들의 세대간 이념 격차를 설명하는 '과학적이고 명확하고 고차원적인' 심리주의적 방법을 들이미는 최병천과 겹친다. 한마디로 어디 정치평론에나 쓸말을 과학적 개념인 양 들이미는 걸까

주대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그가 '어떤 대한민국'인가라는 질문대신에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인가 부정인가'라는 잘못된 선택지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병천 역시, 아주 쉽게 이 부분을 건너뛴다.

2. 시대정신, 조선일보?

기본적으로 나는 최병천 류의 사민주의자들을 자유주의라로 보고 있다. 그것은 이런 그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일보 반대에 대한 입장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다원성을 해치는 것이다.!! 라는 ....

정 치적 판단의 기본은 당파성이다. 따라서 특정 매체에 대한 정치적 입장에 따른 호불호는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팩트'를 매체의 입장에 종속시키는 언론에 대한 태도 문제다. 나는 여기의 대표적인 매체가 조선일보라고 생각한다.

애초 조선일보 반대운동이 '조선일보 제 몫찾아주기'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조선일보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 매체의 경향에 대한 것이 아니라 '팩트'에 대한 왜곡이 핵심이다.

그 런데 최병천은 이야기 한다. 어떤 이야기든 그것을 이용한 것은 기고자의 잘못이 아니라 매체의 몫이다. 이런 젠장~~!!! 그 이야긴, 90년말 2000년 대 초 강준만의 실명비판에 대한 이진우, 임지현 등 소위 좌파연 했던 지식인들의 멘트와 닯았다. 그 명민한 이론가들이 왜 조선일보에 대해서만 백면서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주대환 논쟁에  있어 '시대정신'이라는 매체를 문제 삼는 것은 정세의 결을 배경으로 하는 당연한 질문이다. (그런데, 최병천은 레벨이 있는 잡지로 자신도 애독자라며 '읽어는 봤냐'며 달인 흉내를 내고 있다)

나는 역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주대환은 시대정신이라는 잡지에 기고함으로서 이것이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 몰랐을까?
(몰랐다면, 주대환 바보-> 끝, 알았다면, 다음질문)

주대환이 말하는 글의 진정성이 '시대정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믿었을까?
(안 믿었다면, 주대환 바로-> 끝, 믿었다면 다음 질문)

그러면 그나 최병천이 거품물고 있는 그 '오해'들이 바로 주대환이 의도했던 것 아닌가?
(의도하지 않았다면, 주대환 바보-> 끝, 의도했다면 빙고!!)

내 가 묻고 싶은 것은 주대환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예상가능한 반발(그것에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던)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을 통해 이야기되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바보라고 주장하지 않을 바엔, 이 참에 '미디어 운동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고백하던지... .

3. 사민주의?

끝으로, 최병천류의 사민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한계는 '~에 반대하는 세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과제를 제시'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이것이 알리바이가 된다는 점이다.

당 내 소위 전통적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족주의자에 대한 비판 세력이라는 자기 포지션말고 뭐가 있을까? 그리고 민주당내 좌파와 연합하자고? 그것 최병천이 할 수 있나? 결국 불가능한 이야기해놓고 안하면 그것이 사민주의자의 알리바이가 되고 만다. 그러게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며 말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먼저 본인 스스로 이해찬이 만드는 '광장'에 가입하여 활동하던지, 아니면 새진보연대와의 구체적인 연대사업을 진행하라. 그래서 민주당 좌파가 실존함을 보여주면 감사하겠다.

4. 안티조선일보, 그리고 좌파, 민주주의

난, 아직도 안티조선일보의 문제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배치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좌파의 문제설정이 되면 안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얼치기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면, 먼지가 묻고 생채기가 난 민주주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 '짠~~하고 나타나는 아름다운 민주주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논문 짜집기 해서 권위를 보충하고, 말도 안되는 개념을 썩어쓰면서 과학적인 글인양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고하고 순수한 개념에 집착하면서도 밑바닥 개싸움에 훈수를 두고자 하는 최병천류의 글을 보면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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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으로 박노자 업어치기?

붉은수염님의 [박노자 교수, 그에게는 C급, 짝퉁이라는 수사가 어울린다] 에 관련된 글.

1. 뭐, 편할때만 이용해먹는 못된 습성이 나오는 것 같아 씁쓸하군. 일전에 소개된 <한겨레>의 지젝논쟁이라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군.

2. 2008년의 정세와 1917년의 정세가 유사하다는 것은, 원숭이와 인간의 형태가 유사하다는 것 외의 어떤 가치도 없는 주장인셈. 오히려 세계 1차세계대전이라는 임박한 위기가 당시 인민에게 끼친 거대한 아노미를 어떻게 설명할지. 오히려 2008년의 입장에선 1989년의 혁명이 더 적극적으로 해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3. 과학적 분석은 위대하지만 과학주의적 분석은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맥주로 수염을 붉게 만든 이의 지적 허영이 못내 짜증스럽구만.

4. 그냥, 골방에서 독서나 계속하는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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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방적인 블로그

아래의 표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낸 자료의 일부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료 취합을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많은 수가 비공개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공개를 하는 블로그가 20% 정도라니...

재미있는 것은, 개방 비율에 성차와 연령대별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덜 개방적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의외로 20대가 가장 덜 개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세대로 꼽혔다.

그리고 30대가 가장 개방적인 것으로 나왔는데, 왜 그럴까?

우리나라가 인터넷 선진국입네 하지만서도, 접근도나 정보의 개방성 부분에선 그리 잘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수치로 확인하니 재미있다. 다만 국제 비교가 안되어 있어 외국은 어떤지 모르겠다.

정부에서 하도 포털을 잡아 족치길래, 웹상으로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즈음...
누군가 그러더라. 포털을 통하지 않으면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일종의 '인터넷 장애'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다. 블로그가 매체로서가 아니라 소지품 정도로 존재하는 한, 포털의 댓글은 유일한 소통의 창구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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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경품행사 합니다요~~~

내가 정기구독하는 몇 안되는 잡지 <판타스틱>에서 경품행사를 한다길래,
면 불구하고 이렇게 착!!

궁금한 분들은 http://fantastique.co.kr로 와서 구경함 해보셔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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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

행인님의 [좀 쉬세요 들...] 에 관련된 글.

행인의 글을 읽다 문득 떠오르다.

역사적으로 공화파는 부르주아 정치의 이념형이었다. 1848년 프랑스 혁명 당시, 공화파는 배신을 통하여 파리코뮌을 저버린다. (정확한 역사적 일자는 별도로 확인하자, 이것은 나의 기억일 뿐)

공화주의는 공동선을 전제로 하며,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공동선을 알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특수한 사람'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화주의는 절차주의 혹은 '심의제 민주주의론'과 연결된다. 심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는 곳 한 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나가면,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와 대립한다. 민주주의는 '민주'라는 절차적, 혹은 과정적 개념이지만 공화는 목적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국은 꼭 민주공화국으로 존재하게 된다. 공화주의의 비교적 높은 문턱은 민주주의에 의해 마름질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최근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공화주의는 입헌제에 입각한 개헌론의 연장선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최대강령적인 헌법이 과연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간만에 행인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무지막지하게 긴글을 보다가 들었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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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과 프락치

오늘 일간지엔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일제 말기와 해방공간 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공간이 있을까 싶다. 한국판 마타하리라...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기사하나를 보자.
“여간첩 김수임 사건 조작 의혹”
 
한국판 마타하리’로 알려지며 6·25전쟁 직전 간첩혐의로 처형된 김수임(1911∼1950)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AP통신은 최근 비밀해제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1950년대 자료를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김수임 사건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고 16일 밝혔다.

특히 이 문서에는 그동안 김수임이 월북시킨 것으로 알려진 ‘독일유학파 공산주의자’ 이강국은 1953년 정전 이후 북한 당국이 ‘미국 간첩’으로 처형한 것으로 나와 있다.

미 육군 정보국 비밀자료에도 이강국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조직인 ‘JACK(한국공동활동위원회·Joint Activities Commission,Korea)’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란 이화여전을 졸업한 미모의 인텔리 김수임이 미군 헌병대장 존 베어드 대령과 동거하면서 중요 기밀을 빼내 북측에 넘기는 등 간첩활동을 하다 1950년 3월 붙잡혀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그러나 미 국립문서보관소 자료에 따르면 당시 베어드 대령은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다. 또 베어드 대령과 다른 미 육군 장교들은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이에 따라 김수임은 한국 경찰의 고문을 받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도 허위자백한 것으로 미군 관계자들이 결론내렸다고 AP는 전했다


내가 이 기사에 눈이 간 것은 이강국 때문이다.


1. 이강국

내가 이강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강국연구와 출간되고, 그의 저서가 나오면서다. '민주주의 조선의 건설'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 때가 2006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국내 정치학 문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런 관심은 편집증으로 발전하고 있는 차다.

박치우, 신남철 등의 인사들도 이런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강국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경성제대와 독일베를린대학을 나온 인텔리 출신 공산주의자로 박헌영과 함께 남한 공산주의운동을 이끈 장본인 중 한명이다. 1930년대엔 원산 등지에서 적색노조 건설운동을 하였고, 해방 후엔 건준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북으로 가서 초대 외무장관을 하곤 박헌영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적어도 난, 박헌영과 이강국의 처형을 정치적 살인이라는 견해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김일성 등 소련파가 박헌영 등 국내파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공작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활동가인 박헌영과 이강국의 문헌은 중요하다고 보았다.

2, 프락치

그런데, 최근 해제된 미국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이강국은 미국 스파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왜?

난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도 남쪽도 아니고 북쪽도 아닌, 미국의 스파이를 택한 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참 소심한 인간인지라, 내중 안하던 블로그에 들어와 쓴다는 글이 이강국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괜히 쓸쓸해 진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3. 일종의 가설: 이상의 이념화가 빚은 참상

사람에 대한 일반론을 참 싫어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의 특수성이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인텔리 출신의 엄격한 이론가인 이강국이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탄압에 이어 해방된 남한과 북한의 현실이 너무 '헐겁다'고 느꼈을 수 있겠다 싶은 거다.

유연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은 여유는 고사하고 자신의 신념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조차 힘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결국 원칙으로, 원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고 그런 선택이 현실에서의 적절한 타협이 아니라 현실부정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원하는 사회의 반정립인 미제국의 스파이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난 개량보다 원칙을 숭상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느낀다. 그리고 주변의 평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원칙이 힘들어지면 개량보다는 전향을 선택하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자각한다.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최근 촛불정국에서도 그렇고, 진보신당 내의 전진논쟁도 그렇지만 나의 원칙이 '무행동의 전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강국을 보면서, 그에 깜도 안되는 주제인 내가 심란한 까닭을 다소 억지스럽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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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해 밥을 두끼만 먹자고?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기 자료 유출 공방에서 핵심은 아무래도 '전관예우'인 듯하다. 전임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해야 적절한가일텐데, 사실 개인적으론 넓으면 넓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꼬메고픈 전직 대통령도 있는 법이다.

 

이른바, 전재산이 20만원밖에 없는데도 골프장도 가시고, 해외도 가시는 전두환 각하되시겠다.

사형을 당하지 않은 것만해도 감지덕지 일텐데, 꼴에 이명박 지켜준다고 한마디 거드시셨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하루에 밥을 두끼만 먹자~~

 

거참, 이를 어떻게 봐야하지?

 

문제는 이 말을 하는 전두환의 모습을 떠올리니, 80년의 광주학살과 삼청교육대와 각종 정화운동이 떠오른단 말이지. 거 뭐냐, 금강산 댐도 이 사람 작품이지 아마?

 

이명박이 참 인복이 없다는 건, 도와준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명박의 이미지를 깍아먹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댄데, 정부가 나서서 하루에 밥 두끼만 먹읍시다라고 주장하나?

이거야 말로, 북한에서 하는 천리마 운동과 뭐가 다른가?

 

기사를 보고 웃어버렸지만, 곱씹을 수록 불쾌하다.

 

도대체, 전직 대통령이라는 전두환이라는 이는 국민들을 뭘로 보고 있는건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면 우리는 왜 국가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 속된 말로, 뭥미? 이젠 이명박도 모자라 전두환까지, 바보들의 합창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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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뭐 얼어죽을 경제!

 

1. 이명박과 국민수명과의 상관관계

 

이젠 별걸 다 경제적으로 계산한다 했다. 그리고 드뎌 또 한건 해내셨다.

 

전경련에서 '촛불집회의 사회적 비용'이라는 보고서를 냈나 보다. 그런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이 몇 해전에 집회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반박글이 프레시안에 실렸다.(기사보기)

 

그런데, 이 기사를 다 보지 않고도 한국개발연구원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자.(이 역시 윗 기사의 일부다)

 

 

 

①113개국 법·질서 지수와 일인당 국민소득의 상관관계가 0.75로 유의하게 나타남. ②113개국 법·질서 지수와 경제성장률의 상관관계도 0.41로 유의하게 나타남. ③법·질서 지수가 한 단위 높은 국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9%포인트 높았음. ④OECD 평균 법·질서 지수 5.5에 비해 우리는 4.4가 나와 연평균 0.99%포인트의 성장을 추가적으로 이룰 수 있었음. ⑤불법시위에 단호한 처벌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적인 대응도 해야.

 

그럼 이것과 비교해볼까?

 

①일반적으로 스트레스와 수명과는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②스트레스 중 비의사적 스트레스, 즉 자신의 행위 결과로 인하지 않은 외부요인에 의한 스트레스의 강도는 다른 요인에 비해 높았다. ③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국민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이명박에 대한 스트레스 수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④ 촛불집회는 100만명의 핵심층과 그10배 정도의 적극동조층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전국민의 50% 정도는 이명박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⑤ 이명박의 존재는 1100만명의 수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키치며 잠재적으로 전국민의 절반에 무형의 스트레스를 가함으로써 수명 손실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꼴에 박사학위까지 받고 와서 국책연구원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까지 좋지만, 연구자의 양심을 의심케하진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어쨌든, 위 프레시안 기고자는 이렇게 썼다. "언어능력과 발바닥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맞다.

 

거참....

 

 

2. 한국경제신문이라는 이데올로기 수단

 

어제 이사를 힘들게 하고 텔레비젼을 틀었더니, <100분토론>.

왠 이상한 아저씨가 김상조 교수에게 뭐라하고 있었다.

 

"경제문제를 거리에서나 할법한 선전선동문제로 , 어쩌구, 저쩌구.."

 

저 사람 뭐야? 하는 생각에 자막을 봤더니 '한국경제신문'!!

결국 김상조 교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를 위기라고 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해결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를 선택하는 행위는 당연히 가치 개입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뭐, 경제학 개론을 말해야 하니...

 

점점 올라가는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채널을 넘기기 전까지 들었던 생각은 이렇다.

 

'탈법, 불법승계를 기획한 이건희 수사에 대해서는 봐주기 수사를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면서, 촛불집회 참가자에겐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전경련 등 재벌들은 중립적인가?"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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