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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3/03
    역사적 예수에서 사도 바울로
    평발
  2. 2008/02/26
    역사적 예수에서 위안을...
    평발

역사적 예수에서 사도 바울로

거 참. 난 기독교 신자도 아닌데 종교서에 심취해 있다니.

어쨋든 까먹기 전에 한 마디.

 

요즘 샌더스의 '바울'과 바디우의 '사도 바울'을 병행해서 보고 있는데, 내가 왜 바울을 보게 되었더라.

 

그것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태도를 보기 위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기독교가 어떻게 예수살렘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 전세계에 보편화되었을까. 그것은 비 유대인들의 기독교화가 주효했음을 의미한다.

 

바울의 말 처럼, 유대인이 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만나면서 역사적 예수의 보편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전지구적 자본화, 그리고 지역화된 싸움 속에서 보편 윤리에 대한, 그리고 공통의 무기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회로인 셈이다.

 

어쨌든 함, 읽어 보자고. 그나저나, 샌더스는 소위 기독교에서 칭의(justification)이란 개념을 오역이라고 지적하더군, 사회과학에서는 정당화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개념이다. 바울이 사용한 믿음 속에서 구현되는 옳바름은 'righteousness'으로 이해 해야 한다는 것. 칭의는 그것을 '옳은 것'으로 만드는 수동적 관점인 데 반해 바울의 그것은 주체가 '옳음'을 향하여 변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뭐, 이 동네에서는 교리라는 것, 즉 말 하나로 도시하나를 멸망케 할 정도로 난리를 친다지만.^^

 

개념하나로 난리 치는 것은 그닥 먼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노동당 봐라. 그치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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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에서 위안을...

요즘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글과 책을 찾아보고 있다. 역사적 예수가 뭔말인가 싶으면, 한글판 위키페디아를 확인할 것.  위키페디아 한글판 http://ko.wikipedia.org/wiki/

 

간단하게 말하면, 보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격화된 예수가 아니라 실제로 생존했던 예수의 흔적을 살펴보는 작업. 상식이지만, 현재 캐논으로 되어 있는 4대 복음서는 짜집기. 최근 '사해사본'이 발견되었다는 둥 소란도 예수의 행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문제는 이걸 왜 보고있냐는 건데... 그냥 궁금해서다. 대략 역사적 예수를 파고들고 있는 경로는 이렇다.

 

'위키페디아' 우연히 방문 -> '역사적 예수'관련 항목 읽음 -> 한국기독교연구소의 글 중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문 탐독 -> '어! 이거 일전에 김용옥이 강의했던 요한복음강론이 '견유파'의 관점에서 해석한 예수였구만'이라는 생각이 듬. 관심이 증폭됨. -> 크로싼의 '예수' 탐독: 역사적 예수 관점에서 본 예수 전기 -> 사도 바오로(바울)에 대한 관심이 생김. -> 마침, 바디우의 <사도 바울>이 번역됨. -> 바울서신을 모아서 읽기 시작 ->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를 읽다가 아감벤도 바울에 관련된 책을 썼다는 사실이 나옴. 이와 별도로 지젝도 사도 바울에 대한 논의를 전개 -> 마침,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번역 출간.

 

대략 지난 2주정도의 경로인 셈인데, 관심을 가지면 곳곳에서 흔적들이 나온다는 사실.

 

참, 김규항이 예수전을 쓰고 있다는 데, 언제쯤이나 나올려나...(대략 초고는 끝났다던데...)

 

까먹지 않기 위하여 메모로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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