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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논평, 중요한 사례

구르는돌님의 [조봉암과 박헌영, 다른 길을 간 두 혁명가의 초상] 에 관련된 글.

 

소름이 돋는다. 그래, 조봉암과 박헌영이다라는 생각을 들도록 만드는 잘쓴 글을 보니 몸이 반응한다.


조봉암과 박헌영,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정치의 비전을 그려냈던 활동가였지만 지금의 정치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우리 정치의 불모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뿌리없음이 우리의 정치를 의미없는 이합집산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위의 글에서 보이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존경+중'도 이해한다. 


그런데, 요즘은 왠지 박헌영의 계절이 돌아온 것 같아 마뜩찮다. (뭐 여러가지 이유로..)


에휴. 암튼 재미있고 유익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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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의 유렵연합 조사

  

- 한겨레에서 운영하는 '훅'에 실린 울리히 벡의 '앙겔라 부시, 유렵을 불태우는가'에 대한 글

 

우선, 주요한 논점들과 생각.

 

(1) 이제 막 시작된 급진적인 긴축정책에 힘입어 쉽사리 사회소요로 번질 수 있는 강렬한 분노의 물결이 유럽 도처에서 쌓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금융투기 세력들은 계속해서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은 채 “국가 망가뜨리기 놀이”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사센의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 서비스의 영역이 생산 서비스의 영역으로 이전됨에 따라 모두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내재화하게 된다. 결국 금융투기 세력이라고 불리는 그 수많은 군단이란, 결국 우리가 말하는 대중 자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본-노동이라는 전통적인 계급갈등은 자본대중과 노동대중 간의 내/외부적 계급갈등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닐까? 

 

(2) 오히려 금융위기는 이제 유럽 자체의 존재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 이유는 유럽 각국 정부가 – 물론 그 가운데 안젤라 메르켈 총리가 맨 앞에 서 있는데 – ‘위기를 활용하지 않은 채 그냥 흘려보내지 말라’는 유럽 정치의 근본원칙을 간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야말로 정치적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고 유럽을 더욱 튼튼하 존재로 만드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에도 말이다.


유럽의 진보는 하나의 유럽을 위한 노력으로 점철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유럽을 넘어서 정치적 유럽을 위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벡의 주장에 대해, 한반도에 사는 나로서는 어떤 판단도 하기가 어렵다는...

 

(3)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상을 긴장시켰을 때, 정작 각국 정부를 칭송하는 목소리는 드높았다. 이들 정부는 아주 놀랍게도 세계경제를 앞장서 구해내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실질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파산한 은행을 도와주는 일은 결국 국가의 파산이라는 또 다른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도처에 그리스가 널려있는 셈이다. 미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선진국가들은, 이제는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비치면서도 동시에 대체 쓴 약을 삼킬 의지가 남아있기나 한 지에 대해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산더미 같은 부채를 쌓아갔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대체 누가 국가파산 앞에서 각 나라들을 구해낼 것인가? 또 다시 육체 노동자가? 사무직 직원이? 아니면 실업자와 연금생활자가? 그것이야말로 사회적 의식은 물론이려니와 현실감각마저 깡그리 상실해버린 ‘시장주도 유럽’이 찾고자 하는 해답이다.


은행도와 주기, 경제위기에 따른 손실을 외부화하기. 세금으로 금융투기자의 손실을 보전하기. 모두다 가해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순수하게 이익을 보는 한 줌의 세력에 눈을 돌릴 여유가 있을까. 어느 책에서 프랑스의 전력공사를 민영화하는 방편으로 국민주 방식을 도입했다고 한다. 결국, 스스로 전기료를 높이면서까지 주가를 높일 수 밖에 없는 이 역설이란...

 

 

(4) 하지만 어느새 느닷없이, 협력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인가, 칸트인가 아니면 파국인가라는 생존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칸트의 영구평화에 대한 이상은, 정치적 유럽의 오래된 미래인셈인데... 미제국에 대항하는 군사력으로서 유럽연합의 군사력을 옹호하는 데리다의 격문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착한 제국을 기대하는 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 관점에서 타당할까?

 

(5) 그럼에도 문제의 핵심은 메르켈 정부가, 황색신문의 그리스 사냥이, 그리고 사법당국과 지식계층 엘리트들마저 마치 독일을 유럽으로부터 보호하고, 시샘 많은 유럽의 이웃나라들 – 자신들의 재정적자를 독일인의 돈주머니를 털어 해결하려는 – 의 부당한 침탈으로부터 독일의 성공모델을 지켜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 양 독일의 일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곡해하고 강조하고 나선다는 데 있다. 


독일의 일국주의. 유럽없는 독일경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아닐테고.. 결국은 정치적 효과를 노린 공세라는 것인데, 그것은 정치적 유럽으로 가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경제적 유럽에서도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인 셈인지. - 좀더 자료 조사가 필요하겠다.

 

(6) ‘독일 유로화(DE)’를 향한 메르켈 총리의 행보는 보다 큰 맥락과 잇닿아 있다. 경제이건 대외정책이건 혹은 독일군대의 해외주둔 문제이건간에 독일 총리가 대내적으로 하나의 민족국가를 강조하고 나설 경우, 이 말은 곧 프랑스인들이 말하듯이 ‘스스로 퇴보하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 유럽이라는 ‘유럽인’의 야망으로 구현되는 게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유럽에 대한 자신의 의무와 결속감을 갉아먹는 독일을 보여주고 있다.

 

 

 

벡이 앙겔라 '부시'라고 지칭한 것은 부시 전대통령의 정치적 비전이 독일 현 총리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비꼬기 위한 것인셈인데.넓게 보자면, 신자유주의자로서 메르켈총리를 정치적인 포지셔닝을 하는 셈. 하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우리에게 일본이 그러한 것처럼- 일국주의가 그야말로 방어적인 국수주의로 읽히지 않는 데. 어쩌면 독일의 극우화 전 단계가 아닐까하는 섣부른 예단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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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고민들

 1. 민주주의라는 문제

 

지난 정부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면, 그들은 웃었다. 민주화 20년, 그렇게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완성되었다고 떠들어대던 그 입으로 지금은,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말한다.

 

[쟁점] 그 때의 민주주의와 지금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차이가 날까.

           민주주의 속성 자체가 투쟁의 영역 그 자체에 있는 것일까(최근 번역된 책의 랑시에르 주장이 그렇다)

 

2. 정치/운동의 반동성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적 중립성 VS 정치적 옳바름의 문제. 어떻게 이들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정치적 중립을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정당운동은 정당체제를 변화시키면서 진화할 수 있을까. 정치체제와 정당체제의 외부와 내부가 어떻게 구별될까.

 

비판적 지지는 왜 지속되는가. 약한 헤게모니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3. 진보?

 

진보에 대해 진보를 언급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내놓는 대안은 상대방의 실현가능성에 주목해야 하나 나의 가치적실성을 주목해야 하나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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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순결하신 당신에게...두번째

marishin님의 [진보신당 말고 진보신당 당원들께] 에 관련된 글.

 

음... 역시 그렇다. 반응이 난데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예상보다 약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있다가 위의 글을 보고 어떻게든 지금의 느낌(고로 논리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을 기록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지난 블로그 글에 대해서 간단하게 반응을 정리하면,


1. 정말 진보신당 답고, 그래서 싫다


2. 노심이라는 인물빼놓고 당원이나 있나


3. 결국 진보신당 지지지하라는 말인데 손발 쪼그란든다.


맞다. 나도 노빠나 유빠가 써놓은 글을 보면 손발이 쪼그라든다.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그렇다.


일단 트랙백 글에 대한 느낌에 들어가기 앞서 앞의 1, 2, 3의 입장에 대한 촌편을 하면,


1. 그냥 진보신당다워서 싫다는 데 할말없다. 어떤 대상에 ~답다라는 식으로 관용화를 시키는 것이 꽤나 폭력적인 방식이지만, 그도 그런 인생이니 놔두겠다. 다만 어떤 특징들이 다른 정치세력하고 구분되는 진보신당 다운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듣고 싶은데 뭐 관두자.


2. 노심 인물론이라. 난 좌파라고 인물론을 무작정 거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레닌을 떠들어도 누가 레닌과 함께 망명을 함께하며 생사고락을 했던 동지들의 이름을 기억하나? 김일성도 마찬가지다. 쉽게 보면 브라질엔 룰라가 있고 베네수엘라에는 차베스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노심이 그런 인물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일테다. 동의한다. 나조차도 용인이 안되서 '그러면 안됩니다'라고 하고, 때론 대놓고 싫은 티를 박박낸다. 하지만 난 2가지 점에서 노심에게 기대하기보다는 그들을 인정한다. 그래서 단순히 인물론만으로 노심을 비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1.  노심의 지난 역사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우스워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들이 걸어왔던 길을 존중하며, 내가 스스로 그 궤적에 내 삶을 투영해 보았을 때 '난 그러지 못한다'에 올인할 수 있다.


-2.  노심의 진심이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약점도 있고, 나름 살아온 과정상 고집도 있고, 그것때문에 갈등하고 욕도 먹고 칭찬도 듣지만 진심은 진짜다. 김제동의 촌철살인은 개념의 증거가 되지만, 노회찬의 촌철살인은 가벼움의 증가가 되는 왜곡된 시선에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진보신당에 노심만 있냐고 힐난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당신과 같이 노심만 보는 풍토가 이쪽이고 저쪽이고 많기 때문에 문제다라는 것이다. 스스로도 노심만 보면서 노심밖에 없다고 하면 이거 우스운 일 아닌가. 당장 진보신당 홈페이지를 가보면, 선거기간임에도 1인 주거권과 관련된 토론회가 열리고, 여성정책을 평가하는 토론회 등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청년노동권 사각지대 문제로 프로게이머의 노동권 문제로 기획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못 알리는 쪽이 잘못이라고?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을 노심의 입을 통해 알리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 


3. 결국 진보신당 지지하라는 거냐? 맞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것인데, 무지 잘난척하면서 세상의 고민은 다짊어진 놈이 투표날 등산을 가더라. 투표거부도 개인적 권리라나. 맞다. 그런데 자신은 그렇게 편하게 살면서 왜 남들에게는 A부터 Z까지 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살라고 하는데? 


그래서 진보신당을 지지않아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보신당과 반엠비의 사이에서 갈등하는(글의 맥락에서 드러냈다고 보는데, 앞으로 명시적으로 표현해야 겠다) 사람을 염두에 둔 것이다.(글의 지평은 내가 만난 혹은 접한 이들이 경계를 이룬다) 그 밖에? 찍던지 말던지. 애초부터 내가 그들에게 뭔 할을 할 깜냥도 없을 뿐더러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욕먹어가며 화살표를 제시하기도 싫다. 다만 치사한 변명이나 하지 말라는 거다. 말뿐인 사회주의? 좋다. 말뿐인 혁명? 좋다. 당장 당장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작은 것들이 가시처럼 있는데, 그보다는 가시의 원흉을 찾아 없애야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가시를 없애야 몸체를 볼 수 있다. 가시 너머에 몸통이 있다는 선험적인 판단은 지지하나, 그것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는 변하는 것이 없다는 말인데.... 뭐, 지난 10년간 반복되는 말을 내가 왜 하나 싶다. 걍~ 서로 하고 싶은대로 하자.


이제 트랙백을 해온 글에 대한 느낌을 밝혀야겠다.


진보신당이 아니라 진보신당 당원에게...라. 괴롭다. 도덕적인 개인과 비도덕적인 사회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니부어의 결론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사회엔 개인 차원의 논리와는 다른 논리가 존재한다고, 즉 사회적 이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진보신당과 당원이 분리된다면, 그리고 훌륭한 당원과 훌륭하지 않은 당이 그렇게 선연하게 구분된다면 당의 논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테다. 그런 점에서 글쓴이의 구분이 아프지만 동의한다. 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색하지만 난 그래서 분당이후 지속되어온 진보의 재구성이니 하는 것들이, 외부를 중심으로 사고되는 것에 반대해왔다. 진보신당의 외부는 그 자체로 구태인데, 이합집산을 제외한 어떤 재구성이 가능할까라는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외연의 확대가 아니라 정치의 논리, 운동의 이성을 재평가하고 재구축해야 한다는, 즉 잊혀진 혹은 새로운 '대의'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지난 2년동안 좌충우돌해온 것이 썩 나쁘진 않았다고 본다. 노심과 진보신당은 무주공산이 아니다. 그와 함께 어깨걸이를 하고 있는 적지 않은 당원들이 함께 걸어주기 때문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노대표의 조선일보 방문에 대해선 즉각적인 반발을 낳았고 내부적으론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대한 논란까지 확산되었다. 부산 등의 대연합에 대해선 이미 논란이 지속되고있고, 선거국면에서의 복잡한 정치지형과 어려운 판단의 지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난 갈등이 있는 조직을 사랑한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갈등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진 않는다. 그동안 운동 자체 정치 자체, 즉 수단이 목적화된 경향성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운동을 만들것이다. 서울의 일년 예산도 모르고, 심지어 자치구 개수도 모르면서 서울선거에 대하여 훈수를 두는 소위 진보주의자들을 봤다. 그들의 로두스는 어디쯤에 있는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와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의 로두스는 바로 여기다. 


내가 참여를 말하는 것은 훈수 뒤에 숨어있는 정치적 계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순진함이 너무 음흉하다. 이상한가. 뭐라 딱 집어 설명할 순없지만 나의 촉이 그렇게 말한다.^^ 내가 민노당 분당했을때 삼일밤낮을 울었던 것처럼 이거아니면 안돼라고 하지 말고 적어도 '애정'이 있다고 자처한다면 뭐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난, 진보신당이 싫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그래서 '뭐' 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본적이 없다. 적어도 자기편하자고 싫다는 말만 할 줄 아는 사람은 도덕적까진 몰라도 윤리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참, 부처님 잘오셨어요~~ 이 사바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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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순결하신 당신에게...

양비론이라면, 이것과 저것 사이에 단차가 없어야 한다. 

이것이 저것보다 높은 혹은 우월한,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힘이 세다면,

양비론은 그야말로 양비론을 가장한 약자 죽이기가 된다. 


이상하게 소위 '진보운동'판이라는 곳에는 순결한 영혼이 많은바, 이번 민노당이 보인 이해할 수 없는 행태와 사퇴한 후보에게 살아있는 영혼을 부여하신 민주노총의 입장에 대한 시각에서도 그렇다.


내가 봤을때 모호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문제다.


쉽게 97년 이야길 해보자. 국민승리21이라는 듣보잡 단체를 만들어 진보진영의 후보로 권영길 대표를 내세웠다. 그때가 어떤 땐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가 되나 마나하던 때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국민승리21의 회원이자 권영길 후보의 선거운동을 했던 나는 욕을 꽤나 먹었다.


아마 그때 김대중이 떨어졌으면, 나나 국민승리21은 역사의 죄인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2010년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지 않은가? 불과 2년전만 해도 역사상 가장 실패한 정권에 불과했던 노무현 정권과 그 잔당들이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리고 수많은 진보연 하는 이들이 그들의 꽁무니를 쫒고 있다. 국민승리21의 유산인 민주노동당은 아예 투항했다. 


당연한 것이 당시 국민승리21의 못된 놈들은 이미 진보신당이라는 새사림을 차렸고, 당시 김대중을 찍었던 인간들이 민주노동당을 접수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민주노총의 뛰어난 능력? 민주노총은 자격도 안되는 진보정당 통합을 말하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노동자정치세력화가 뭔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들인데, 다들 민도당에 거품물고, 민주노총에 비판한다. 그리곤 한마디를 붙이는데 '그렇다고 진보신당이 잘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대략적으로 이유를 꼽아본면,


- 진보신당도 야권연대하려고 하지 않았느냐

- 부산이나 다른 지역은 민주당하고 단일화했는데 뭘


정도인데, 거참 속상하다. 이게 서두에 전제한 양비론의 전형적인 방식인데, 진보신당에게 아주 불리한 구도라는 거다. 문제가 많은, 그래서 동의할 수 없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등가에 놓으면, 선택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당선가능성이 높은 데로 간다. 


즉, 내가 의심하는 것은 그토록 어렵게 한명숙을 찍을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는 점이다. 물론 혹자는 이쪽 저쪽 다 싫어서 아무도 안찍으련다고 한다. 뭐, 그도 방법이지만 투표장엔 꼭 가서 무효표로 만드시라. 집에서 탱자탱자 놀거나, 친구들이랑 등산이나 가면서, '난 이러저래서 적극적으로 투표를 거부한 거야'라고 마스터베이션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판이, 민노당하고 진보신당하고 같은 놈 만들어서 뭉게도 되는 판인가라는 점을 고려해보자. 말로만 사회주의하자는 쪽 빼놓고, 현실정치에서 가장 변방의 외연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가능성을 이번 선거한번으로 접을 것이 아니라면 그 한표를 통해 어떤 '의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다.


현재의 국면에서 한명숙을 찍으면, 그 시절 거리에서 섰던 스스로를 정당화할수 있는가? 게다가 그런 민노당과의 진보정치 재구성이라니... 손발이 쪼그라든다.


그래서 말인데, 정말 고민이라면 진보신당을 찍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진보신당을 접수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선거이후의 판짜기에 고민이 많은 진보신당 내부자 중 한명인데, 같이 해보면 어떨까하는 거다. 


뭐, 이 블로그의 글을 몇이나 보겠냐만은 되도 안는 순결한 분들이 창궐하는 걸 보니 역시 운동판엔 변한 것이 없구나는 생각이 들어 기록차원에서라도 남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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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응모용 포스트... 세상이 그렇지 뭐

책 이벤트를 한다.

노빠이신 탁현민씨가 새책을 내놨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공식적으로 서평을 강요하는 이벤트라니 뭐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책 공짜니까.

 

http://blog.naver.com/thenanbiz/150085817606

 

 

<애플 웨이>, <애플 쇼크> 리뷰어 당첨자 공지사항 발표 이후로
다시 한번 이벤트로 인사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여러분께 알려드릴 이벤트는 탁현민 저자의 <상상력에 권력을>로
지난 이벤트와 마찬가지로 리뷰어를 신청 받으려고 합니다.
<상상력에 권력을> 리뷰어 이벤트 역시 10권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대중문화는 대중과 문화는 소외되고 연예산업과 미디어스타만 존재하는 것으로 읽힌다. 
문화는 여전히 보편적 삶의 양식이 아니라 천박하거나 혹은 고결한 판타지만을 그리고 있으며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미디어와 자본에 구속되어 있다. 
과연 우리는 미디어로부터 자유롭게 우리들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고 있는 것일까? 
각각의 대중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가치가 부여된 문화를 생산해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현대의 대중이 단 한번이라도 그렇게 대중으로 서고 문화로 살았던 적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대한민국 대중문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탁현민이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 이벤트 기간 : 2010년 5월 7일(금요일) ~ 2010년 5월 13일(목요일) 7일간                            

 

▶ 당첨자 발표 : 2010년 5월 14일(금요일) '더난 EVENT' 게시판에 추첨을 통해 총 10분 게재      

 

                 ▶ 참여 방법 : 1. '[더난 EVENT] 상상력에 권력을 - 리뷰어 신청 이벤트'포스트를 내 블로그에 스크랩한다.       
                            2. '[더난 EVENT] 상상력에 권력을 - 리뷰어 신청 이벤트'포스트에 댓글을 등록한다.(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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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와 프레시안...

한 때 딴지일보가 트렌드를 형성하던 시설이 있었다. 그리곤 김어준 총수의 외도. 그 다음부턴 그 똥코누르기 페이지가 나오는 딴지일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오히려 목을 맸던 것은 프레시안. 익명에게 다중지성이라는 금관을 씌어주지 않고 기자의 이름이 또박또박 박힌 언론으로서 프레시안이 주로 방문하는 언론이 되었다. 해서 경향-프레시안 라인.

 

거기다 구독중인 '시사인'. 그런데 지난 주였던 고종석 선생이 칼럼에서 '딴지일보'에 대한 호감을 표명한 관계로 가끔 눈팅하다가, 당게시판에 심상정 인터뷰가 실렸다는 말을 듣고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보았다.

 

이 정도면 포스팅을 하지 않겠는데... 오늘 유시민이 선거연합과 관련된 입장을 발표했고, 그것이 평소 RSS했던 것에 떴다. 그리곤 얼른 가서 읽어보았다. 

 

질감의 차이는 바로 '댓글'.

 

딴지일보의 댓글은 그야말로 노무현 살인 0적 중 1인으로 심상정이고,

 

프레시안의 댓글은 널 어떻게 믿냐로서 유시민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인터넷 언론사마다 이를테면 '구독자'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평소엔 드러나지 않다가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휘발성 높게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딴지일보 댓글보다 프레시안 댓글에 공감이 갔던 것은 나의 정치적인 입장에 기인한 바도 있겠지만, 댓글의 수준문제였다. 뭐 맞춤법 맞추고 정중하며...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오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한다는, 온-오프 일체형 댓글을 의미한다. 

 

온라인은 실질적인 인간관계의 다른 형식이지, 그것을 대체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원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나의 이데올로기다)

 

그런면에서 심상정의 인터뷰에 대해, 노무현을 갖다데는 사람한테는 최소한 자신에 대한 반성을 했던 '진보의 미래'를 읽어보지 않았냐고, 당신같은 사람이 인간 노무현을 두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고 진보의 확신에 대해 비웃는 사람에게는, 수십년간 한우물을 파왔던 바보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냐고 힐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노무현과 그 일당들은 어찌되었던 4년 동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세금을 받아왔던 사람이며, 국민의 종복인 공무원 위에서 군림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훈장처럼, 유일한 경험처럼 내세우는 것을 보면 당연히 그 떳떳함의 이유를 물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오늘 만난, 서울 모 구에서 구청장만들기를 하고 있는 노빠 선생은 진보신당의 입장이 '혹독하다'고 평했다. 이유는 민주당보러 먼저 버려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았는데, 그들이 해왔던 정치는 언제나 +의 정치였지 -와 +가 발랜스를 맞춘 균형의 정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해서 손안에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 설사 진보진영과 나누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나라당에 빼앗기는 것과 동일한 감정경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정치의 진정성을 말한다면, 적어도 지역정치의 진정성을 말한다면 나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 당파가 그 지역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발언을 해왔는가라는 점이다. 평소의 관심은 전혀 없었던 이가 1년 동안을 학습용으로 허송세월 할 만큼 지방정치가 만만한 게 아니다. 평소 오세훈 시장에 대해서는 논평 한줄도 내놓지 못했던 민주당이 서울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지지율이라.

 

이에 대해선, 어제 노회찬이 내놓은 '진보의 재탄생'이라는 책표지를 보면서 아내와 다투었던 내용과 연관됨으로 다음 포스팅에서 메모해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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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아무리 엠비라도, 특정기사를 빼라 넣어라 하진 못한다. 취임초기 국민일보에 대한 기사개입으로 얼마나 욕을 쳐드셨나? 그대신 경영진이라 불리는, 밸도 없는 세력들을 순치시키는 간접적인 방식을 동원한다. 이 때의 부상은 대개 이력서의 한줄이다.

 

그런데 이런 엠비조차도 삼성이 해내는 공력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댈게 없다. <경향신문>이 삼성에 대해 작성한 '삼성을 생각한다'는 원고가 망명을 보냈다. 프레시안으로...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217155315&Section=02

 

글을 쓴이는 김상봉 교수로, 충격이 매우 크셨던 것으로 보인다. 해서 언론사를 끼고 토론회를 하자고 하지만, 선뜻 나서는 데가 있을리 없다.

 

경향신문의 사례는 나름 건전하고 원칙적인 신문이라 하더라도, 삼성이라는 이름앞에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 고약한게, 삼성은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언론사가 알아서 기는 거다. 이럴 경우 삼성을 욕하는 게 매우 어색해 진다.

 

아니나 다를까, 김상봉 교수의 칼럼엔 예의 '국가대표기업'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최고는 흠집나지 않아야 한다는 영웅무오류주의는 사실 김일성의 사례에서나 박정희의 사례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한반도 정치의 특징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절망스럽다는 것

 

이었다. 스티브 잡스 정도의 간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버핏처럼 파격을 요구하는 것도, 게이츠처럼 혁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양아치 수준은 벗어난 대한민국 최고기업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가 싶다.

 

그런 주제에 국민에겐, 정직하라고? 국민의 부정직보다는 이건희의 특권이 우리 사회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역시, 삼성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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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자연사할 뻔한 블로그라..

 1. 마지막 포스팅이 2009년 5월이라... 그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더라...


 2. 북마크가 되어 있는 진보블로그를 슬쩍 눈팅하면서도, '널 버리고 다른 블로그는 하지 않아'라며 안심시키는 것에 만족해왔다. 그런데 이제 슬며시 가슴에 손을 얹고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블로그를 쉰 이유가 없듯이 갑자기 시작하는데도 이유가 있을리 없다.


 3. 2010년. 이제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시기다. 떠날 사람들은 모두 떠난 벌판에 서 있지만, 이젠 추워서 계속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4. 아무래도... 사적으로 침윤해가는 내가 꼴뵈기 싫어서 블로그를 쉬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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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이라...무엇을 바꿀마음이 있었을까?

트랙팩님의 [촛불 1년] 에 관련된 글.

작년 이맘때 즈음이겠다.

진보블로그 트랙팩에서 '촛불이 어떤 의미인가'라는 주제를 내건 적이 있다. 그로부터 1년... 이젠 과거의 그 일에 대해 이야기 해보잔다.

난 이렇게 생각했었다.

결국 우리의 촛불은 정권의 후퇴를 가져오지도 않을 뿐더러, 민주주의의 심화를 가져오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 자발적 참여의 힘, 규정되지 않는 그 힘의 발견이 현재 2~30대가 겪는 정치적 무기력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적 신세대의 등장으로 유의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난 지나치게 냉소적이었다고 보지만, 판단을 유보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촛불 정국의 승자와 패자를 꼽는데 분주하지만, 사실상 복수의 사건들로서 촛불은 각자의 입장에서 취사선택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현재의 모습에서 비추어 볼 수 밖에 없을 텐데, 결국 주체의 능동성은 남고 주체들의 결이 바뀌진 못한 사건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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