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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해외에서 납치된 국민들의 몸값을 지불하지 않는 규정을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말이야 몸값이지만, 사실상 '자이툰 부대 철군'과 같은 정치적 요구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선일씨와 작년에 납치되었던 아프간 선교사들이 떠오른다.
전통적인 국가론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는 자유로운 인민간의 계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홉스 식으로 보자면, 그런 원초적 계약은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에 의한 것이다. 혼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니, 이를 법 등의 제도를 통해 질서를 부여하도록 했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조치는 그와 같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한다. 내가 해외를 나가서 인질로 잡히고 이 때문에 범죄 단체와 국가간 교섭이 발생했다면, 국가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세금 빼가고 신성한 의무랍시고 군대에 보내는 등의 가혹한 처사를 따를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이정도의 분노에서 멈출 수도 있었던 것을 좀더 확장하게 된 것은, 성공회대 교수로 있는 권혁태의 기사와 논문때문이다. 며칠전 권혁태 교수는 <프레시안>에 '이라크에서 살해된 일본인 청년'이란 글을 실었다. 앞 부분은 2004년도에 일본에서 화제가 된 시민활동가 납치사건을 다루다가 후반부에 가선 '히키모모리'와 '소토코모리'라는 일본의 정신병리 현상을 다루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앞의 부분이다. 이 기사보다는 권 교수가 2006년 <동향과 전망>에 발표한 '일본의 이라크 인질 사건과 '자기 책임론''이란 글이 국가의 책임과 자기 책임 간의 문제를 따지는데 좋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2004년도에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일본 사회운동가 3명이 이라크로 갔다가 반군에 의해 납치된다. 반군의 주장은 '자위군의 철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일본은 '자기책임론'으로 응수한다. 위험한 지역인줄 알면서도 갔으니, 책임을 스스로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부터 각종 언론, 지식인들까지 자기책임론을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국가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한 이들도 국민으로 보호해야 하는가'
'스스로의 행동에 결정권이 있는 성인의 행동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들의 요구를 받게 되면 전세계적으로 일본인이 표적이 될 수 있는데도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가'
권교수의 논문과 기사를 읽다보면, 납치된 가족들은 본토내에서 거의 매장되고 "차라리 죽어라"라는 네티즌들의 광기가 폭발하고 있다.(이 점에선 아프간에 납치되었던 선교사들을 둘러싼 자기 책임론이 떠오른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국가 이전엔 자유로운 개인이 있었다고 전제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국가는 인공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인간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가 국민들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이들을 '비국민화'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이는 논리적으로 국가 스스로가 국가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모순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기책임론'의 위험성은 다른데 있다.
비정규직을 보자. 성적 소수자들을 보자. 이주 노동자들을 보자. 자기책임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을까? 여기서 자기책임론은 소위 '신자유주의적 국가체계'와 겹친다.
자신이 아픈 것을 아프지 않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닌가?
자신의 능력껏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일률적인 공교육 체계로 묶어버리는 교육 정책은 무책임한 것 아닌가?
등등등.
두려운 것은, 이런 자기책임론을 -물론 책임회피와는 냉정하게 구분해야 겠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최근 총선과 관련한 '뉴타운 이슈'를 보자.
국민이 속은 것인가? 국민이 속고 싶었던 것인가?
우리의 정서는 후자에 가까운 듯 하다. 그들의 욕망을 들춰내면서, 복불복을 외치는 사람이나 언론이 많은 것은 보면 그렇다.
잠깐 멈춰서서 생각해보자. 이런 자기책임론, 그냥 둬도 괜잖은 걸까?
정부, `납치단체에 대가지불 불가' 명문화 | |
[연합뉴스 2008-04-15 14:41] | |
외교부는 재외국민에게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치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각종 사고시 영사업무 처리지침'(외교부 훈령)에 이 같은 사항을 반영하고 훈령 명칭도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처리지침'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납치.테러단체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되면 더 많은 사건을 유발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국민의 안전과 공공의 이익을 더욱 저해할 수 있어 이 같은 원칙을 명문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작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소말리아 한국인 선원 피랍사건 등에서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대신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지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외교부는 또 재외국민 보호 업무 수행과정에서 `소송비용, 항공ㆍ선박 운임, 병원비, 장례비, 시신운구 비용 등 사적 책임에 해당하는 비용은 정부가 부담하지 않는다'고 적시할 계획이다. 긴급 상황시 국가가 대신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에도 추후 구상권을 청구하도록 했다. 외교부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재외국민보호 업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적 책임에 해당하는 비용은 당사자나 가족 등이 부담하는 것이 세계 각국의 보편적 추세"라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아울러 `재외공관이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하는 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판단해 대응한다'는 원칙을 제시, 보다 능동적으로 재외국민 보호에 나서도록 했지만 지원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민원은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구직이나 취업 알선, 숙소나 골프장 예약, 번역, 관광가이드 알선 등 재외공관의 지원범위를 벗어난 민원사항은 영사가 거부할 수 있도록 지침상 명확히 규정해 영사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5월까지 여론 수렴을 거쳐 개정안을 확정, 각 재외공관에 하달할 계획이다. 외교 당국자는 "이번 지침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외국민보호법의 모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ransil@yna.co.kr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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