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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족 정부의 쿠르드족 민족문화 말살

** 이 글은 현재 쿠르디스탄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쉬티가 시민의신문에 게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과거 오스만 제국에서도 터키족에 의한 쿠르드족 탄압이 있었지만, 이는 간헐적이었고 민족 말살 정책의 성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제국에서 무하메드의 가르침에 벗어난 짓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터키족의 쿠르드족에 대한 말살정책이 본격화 된 것은 터키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터키 공화국이 설립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터키 공화국 설립 후 터키 정부의 쿠르드족 민족문화 말살 정책은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진행되어 왔다.
먼저 무스타파 케말은 쿠르드족의 고문서와 서적들을 소각시켜 버렸다. 특히 그는 쿠르드족의 역사를 말살함과 동시에 터키의 역사도 새로 집필하여, 터키 공화국의 역사를 오스만 제국과 단절시켜 버렸다. 그에 의해서 새로 쓰여진 역사책에 의하면 터키 민족은 인류 모든 문명의 시조가 된다. 수메리안, 에유비안, 바빌리안 등등 인류의 주요 고대 문명은 터키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문명이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알려져 있다.

하루는 케말이 ‘제키’라는 역사학자를 찾아가서 이런 내용으로 터키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을 요구한다. 제키 역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역사학자였지만, 케말의 요구사항이 너무나 황당하여 머뭇거리자 케말은 “에쉑크 제키(우리말로 옮기면 ‘개새끼 제키’ 정도의 의미)야, 너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너는 내가 시킨 일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서 터키의 역사는 새로 쓰여졌고, 지금 이 역사책을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또한 군인이었던 케말은 언어를 새로 만들기도 하였다. 문맹을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그간 아랍어로 표기해오던 터키어를 유럽의 로마자를 빌려와서 유럽어에 없는 발언 몇가지를 새로 추가한 터키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하지만, 아직도 터키인의 상당수는 문맹이다. 특히 농촌지역의 문맹률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한글처럼 완전히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무스타파 케말의 이 두가지 야심찬 작업의 결과 터키의 역사는 오스만제국의 역사와 완전히 단절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그리고 또한 이 두가지 작업은 쿠르드족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스만제국의 역사 속에서는 쿠르드족이 터키족 이주 전에 이 지역에서 거주하던 분명히 다른 민족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이 새로운 역사책에서는 쿠르드족의 존재가 완전히 부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터키족은 쿠르드족을 독립된 민족이 아닌 ‘산악 터키인’이라고 부르며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또한 터키족 학자들을 동원하여 쿠르드족의 어원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산악지역에서 살고있는 가난하고 비천한 터키인들이 눈내린 겨울 산을 걸어갈 때 나는 소리에서 “쿠르드”란 단어가 유래했다는 것이 터키의 한 학자가 공식 학술논문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이렇듯 철저하게 역사를 왜곡한 터키족 정부는 이제는 쿠르드족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나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쿠르드족의 언어를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또한 쿠르드어로 된 모든 지명은 터키어로 바뀌고 심지어 게릴라의 이름과 같다는 몇몇 이름은 사용 금지되어,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바꾸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터키족의 많은 학자들은 쿠르드어가 아주 조잡한 원시 언어라고 가르친다.(대단히 발달한 고등언어 터키어 단어의 60%남짓이 외래어이고, 쿠르드어가 그중 상당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터키에도 양심적인 지식인은 아직 남아있어서, 유명한 한 터키인 작가가 그의 글에서 ‘터키인의 60%는 멍청하다’고 비난을 했다가 군 참모총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일이 있었다.(무슨 죄목인지는 알수 없었다. 아마도 국가기밀 누설죄?, 어쨌든 이로서 터키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게 확실해 졌다.) 그는 판사 앞에서 그의 실수를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는다. “60%가 아니라 80%라고...”(일천 여 년 전에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터키족이 이 지역에서 8~9천년 전에 발생한 문명의 주인이라고 가르치는 역사를 주입받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번은 쿠르드족의 중심도시인 디야르바크르(쿠르드이름은 아메드)에서 코미디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 선거로 선출된 시장이 시청 주차장 벽을 장식하기 위해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불러 벽에 평화를 염원하는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그러자 중앙정부에서 임명된 시장(터키의 지자체는 선거로 선출된 시장과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총독 이렇게 두명의 시장이 존재하는 독특한 시스템이란 것은 이미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이 이 아이들을 상대로 고소를 한 것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법적 미성년자인지라 처벌을 면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그린 평화를 염원하는 글과 그림마저도 정치적인 행위로 해석하여 처벌을 하고자했던 터키족의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 코미디와도 같은 사건이었다.

이로써 중앙정부에서 임명된 시장은 비록 아이들을 처벌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디야르바크르 주민들에게 평화를 위한 모든 행위는 정치행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켜주는 정치적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디야르바크르에는 약 오래된 성채가 존재한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이 성채는 25개의 정복자들의 흔적과 6개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석성 축성양식의 열린 박물관이라고 불리면서 역사학계에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성벽이다. 내성은 약 6~8천년이 된 것으로 추정되면 외성은 2~3천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케말이 문서를 모두 소각하는 바람에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얼마 전 이곳의 쿠르드족 지방 정부가 이 성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코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일이 있었다. 유네스코에서 실사를 나왔고, 이 성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터키 정부가 이를 방해하는 바람에 무산된 일이 있었다. 자국의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것 마저도 단지 그것이 쿠르드족의 문화재란 이유로 터키 정부는 이를 방해한 것이다. 또한 8천 여년 된 내성에는 터키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쿠르드족의 문화재 중 많은 수가 산 위에 존재하다보니 수천 년 된 많은 수의 산성들에 터키군이 주둔을 하고 있다. 이로인한 문화재 파괴는 터키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은 쿠르드족의 것이므로.)

최근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하면서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이 일부 완화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쿠르드어 교육이 허용되었고, 문화행사 개최도 허용되었다. 또한 지방 자치제가 도입되면서 68개 도시에서 쿠르드족이 시장으로 당선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터키 정부의 엄청난 물량공세와 선거 부정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성과이기에 분명 값진 성과이긴 하지만, 외압에 의해 일부 법과 제도가 완화된 것일 뿐 터키 정부의 의식의 변화는 아니기에,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은 완화되었다기 보다는 더욱 지능화되고 교묘해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일례로, 언어 교육은 허용되었지만, 공교육 기관이나 인가 받지 않은 시설이나 개인은 쿠르드어를 가르칠 수 없도록 법은 만들어 어쩔 수 없이 쿠르드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설 학원으로 등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들 학원들은 일정액 이상을 받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고, 이 금액은 가난한 쿠르드족이 감당하기엔 벅찬 금액이다.

또한 이렇게 개설된 사설 쿠르드어 학원마저도 온갖 시비에 휘말려 있다. 간판 색깔에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깃발에 들어간 노랑, 빨강, 초록 색깔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소송에 소송에 계류되어 있다.(물론 이 간판에는 이 세가지 색깔 이외에도 다른 색깔이 두어가지 더 사용되었다.) 또한 이 학원에서 만든 교재에 쿠르드 이름으로 일부 지명과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쇄가 끝난 교재의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세상에 쿠르드어 교재에서 쿠르드어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니!)

이렇듯 유럽연합의 압력으로 쿠르드어 교육을 허용했지만,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괴롭히고 있으며 이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쿠르드어를 공부하고있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노골적으로 감시와 미행을 붙여서 심리적 압박을 주기도 한다.(쿠르드어를 공부하는 친구는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분류되는 것이다.)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터키를 방문한 했을 때, 터키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한국과 터키의 관계 증진을 필요성을 강조 하면서 ‘한국을 형제 국가라고 불러주는 나라가 터키 말고 또 있는가?’라며 했던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지금 쿠르드족이 처한 상황은 100여 년 전의 일제 식민지 시대의 한반도와 너무나 비슷하다. 또한 현재 터키의 정치 상황은 남한의 독재시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유사하다. 물론 터키족도 여기서는 예외가 아니다.

터키는 한국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 독재 시대를 혼합해 놓은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마치 한국의 상황들에 대해서 자세한 연구 조사를 통해 이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한국에 가까운 나라, 과연 터키는 한국의 형제국가였다.

다음에는 쿠르드족의 문화에 관해 간단하게 소개할 계획이다.


터키의 쿠르디스탄에서 아쉬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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