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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처한 쿠르드 전통문화유산

**이 글은 현재 쿠르디스탄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쉬티가 시민의신문에 게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메소포타미아(두 강의 사이라는 뜻)는 터키 쿠르드족의 중심지인 디야르바크르에서 시작해 이라크의 바스라에서 끝난다. 티그리스 강은 쿠르드족 거주 지역을 둘로 나누면서 이라크로 흘러들고, 유프라테스 강은 마치 감싸안듯이 쿠르드족 거주 지역을 에워싸며 흘러서 이라크로 들어가 바스라에서 다시 만난다.

이 ‘두 강 사이’ 지역의 약 절반은 현재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해당한다. 그리고 쿠르드족은 8천여 년에서 약 일만여년에 이르는 시간을 이 지역에서 부족 공동체를 이룬체 농업과 상업 목축업등에 종사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흔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이라크의 남부 메소포타미아 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지역도 메소포타미아의 일부로 남부 메소포타미아보다 앞서서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했다. 또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이란, 시리아, 아나톨리아,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어서 남부 메소포타미아가 화려한 문명을 꽃피우는데 결정적인 배후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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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 쿠르드족의 주요 거주지가 지도의 밝은색으로 표시되어있다.

이 곳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몇천년된 유적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필자는 디야르바크르주의 한 시골지역에서 약 7천년전 유물이 발견됐다는 한 밀밭을 찾은 적이 있다. 이 지역은 여전히 밀밭으로 남아 있었고 어떤 보호조처도 없었다. 심지어 동네 꼬마들이 쐐기문자가 적힌 기와조각을 주워 필자에게 줄 정도로 문화재 유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얼마 전에는 디야르바크르 주의 한 소도시인 에르가니에서 약 9천500여년 전 마을 유적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마을은 추가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하겠지만 문명인이 살았던 인류 최초의 마을로 여겨지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많은 생활 용품들이 함께 발굴되어 그 당시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25개의 서로 다른 주거 형태의 집들이 발견되어 그들의 개성과 필요에 따라 다른 형태의 집을 짓고 고도의 문화 생활을 해 왔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쿠르드족이 살았음이 분명한 유적지에서 수메르 문명의 문화로 알려진 쐐기 문자가 발견되어 쿠르드족과 수메르 문명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수메르 문명의 결정체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쿠르드족을 언급한 구절이 있다.

그리고 과거 이 지역의 쿠르드족은 놀랄만한 포용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타 민족이나 부족이 이 지역에 진출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기에 쿠르드족거주 지역에서는 한때 앗시리안, 아랍인, 에르메니안, 유대인 그외 여러 민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왔다. 심지어는 지금은 쿠르드족을 극심하게 탄압하고 있는 터키족이 일천년 전에 이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도 쿠르드족은 친절하게 그들이 살 땅을 내 줬었다.

인류 고대 종교의 살아있는 박물관

타 민족에 대한 포용성처럼 타 종교에 대한 포용성 역시 놀라워서, 기독교 초기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서 이 지역으로 피신한 기독교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는가 하면, 스스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쿠르드족이 많았고(성경에서는 이들을 메대인이라고 표시하여 사비안교의 다른 이름인 만데안과의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의 신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들도 종종 발견된다.

이슬람이 발생했을 때 아랍족 이외의 부족으로는 최초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부족 역시 쿠르드족이다. 그 결과 쿠르드족이 중심도시 디야르바크르에서는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가 존재하고 있으며, 1700여년 전에 세워진 교회(기독교의 초대 교회가 세워진 것과 동시대)에서 아직도 신자들이 예배를 보고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라크와 터키의 쿠르드족 마을에는 아직도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조로아스터교 율법에 따라 4천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많은 쿠르드족은 조로아스터교가 쿠르드족의 전통 종교라고 믿는다.

또한 이란과 이라크 일부지역에는 사비안교(만데안이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사비안이 정확한 호칭이다)를 믿는 신자들이 사는 공동체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사비안교는 아담을 신의 사자로 믿는 인류 최초의 유일신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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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인 거주지역

생활 속에 녹아든 문화재들

아직도 깊은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쿠르드족은 수천년간 이어온 전통적 생활 양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문화재를 대하는는 쿠르드족의 태도는 독특하다. 문화재를 삶과 유리시켜 보호하고 관리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을 이어온 삶이 일부로 보고 이용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게는 수백년 많게는 수천년 된 주택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2천년이 넘은 동굴 주거지는 현재 가축 우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들 동굴 주거지에 아직도 살고있는 사람들도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그들의 수천년된 주택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이를 보수하고 수리한다. 한국이나 서구의 관점에서 본다면 심각한 문화재 파괴 행위가 될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현재 살고있는 집을 수리하는 행위일 뿐이다. (물론 이런 끊임없는 보수가 있었기에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 집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수천년에 이르는 석성도 문화재 전문가의 고증 없이 복원한다.

이들에게는 이지역에서 나오는 돌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있는 이지역의 석공이 최고의 전문가인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보수된 부분에는 “00 시의 00대 시장 000가 0000년도에 이 성을 보수하다”라는 명판이 나붙을 지도 모른다. 지난 수천년간 성의 보수나 증 개축이 이뤄질 때마다 그래왔던 것처럼… 이들의 문화는 현대와 단절된 박제화된 문화가 아니라 아직도 삶과 함께하는 문화이고 앞으로도 수천년간 이어져나갈 문화인 것이다.

위기 처한 쿠르드 문화

민족국가를 건설한 경험이 없는 쿠르드족은 지금도 강력한 부족 공동체를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쿠르드족은 전통문화의 맥을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 그러나 터키의 쿠르드족 전통문화 말살 정책의 영향으로 지금은 단절될 위기에 처해있다.

터키 정부의 지속적인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쿠르드족의 전통적 생활양식에 많은 변화가 오고있고, 터키군의 지속적인 산악지역 시골마을 파괴는(약 3~5천개에 이르는 시골 마을들이 파괴됐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활하던 마을 주민들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이들 난민들의 대부분은 인근 도시로 흘러들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채 살아간다. 이들이 시골에 살아가면서 이어져오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그 문화는 도시에서는 유지해 나갈 수 없기에 지금은 맥이 끊어져가고 있으며, 이들의 도시지역 유입은 급속한 인구증가로 인해 도시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재의 파괴를 재촉하고 있다.

이런 것 말고 터키 정부에 의한 고의적 쿠르드족 문화 파괴도 있다. 이미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터키 공화국 창설의 아버지로 존경받으며 터키의 모든 지폐를 도배하고 있는 무스타파 케말은 수천년된 쿠르드족의 고문서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쿠르드족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는 거의 어김없이 수백년에서 수천년된 산성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들 산성에는 거의 어김없이 터키 군이 주둔하고 있다. 산꼭대기는 군사적 요충지라는 이유에서지만, 만약 이곳이 터키족의 유적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또한 쿠르드족 언어말살 정책도 대표적인 문화파괴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터키족의 문화 파괴에 대한 집요함은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었던 마르딘이라는 쿠르드족 도시는 터키 정부의 집요한 요구에 의해서 그 등록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디야르바크르의 도시를 감싸고 있는 5Km에 달하는 성벽도 지방정부의 노력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기 직전에 터키 정부의 방해로 무산됐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문화유산 들이 터키에서는 국제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터키 정부가 원할때는 언제든지 파괴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고, 파괴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자국의 문화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는 것을 거부하는 터키 정부의 행태는 바미안 석불을 파괴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외에도 터키족의 쿠르드 문화 파괴 사례는 여기서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오래된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이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쿠르디스탄= 아쉬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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