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접속>을 봤다. 97년 영화다. 17년 전이구나.

97년이면 내가 3학년 때, 한창 심란하던 가을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꽤 흥행했던 영화인데 안 봤다.

내가 좋아할 내용도 아니고, 흥행영화 보는 걸 즐기지도 않았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오히려 이제 와서 앤딩크레딧까지 보고 있는 내가 이상하다면 이상하지)

 

다시 봐도 내용이 특별히 좋거나 그런 건 아니고, 90년대 중반의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컸다.

주인공들의 집은 지금 봐도 과하다 싶게 팬시하고

(그래서 의외로 재밌었다. 얼마나 저 공간에 공을 들였을까 싶은데 그게 뭐라고 참...

  세련되고 특별하게 보이기 위해 애쓴 얄팍하지만 절절한 욕망이 보여 되려 흥미로웠다)

극장의 풍경은 한 50년 전 같이 낯설 정도다(디지털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변화시켰구나).

 

한석규는 당시의 연기가 참 좋았다 싶다. 그 사람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있었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그런 결을 잃은 듯해서 안타깝다.

전도연은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 노력해서 지금을 이룬 배우구나 싶다.

 

나에게 97년은 많이 다르다.

당시 세대를 대표하는 PC통신도 안 했었고, 학생운동 끝물에 이도 저도 아닌 참 애매했던 상황.

졸업과 취업은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무언가를 더 하고 싶은 것도 아닌 일단은 시간을 유예시키고 싶었던 때로 기억한다.

선배들은 군대가고 함께 활동하던 친구와 후배는 임용고사 준비로 도서관을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붙잡거나 다른 관계를 찾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발 붙일 관계, 마음 붙일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97년 15대 대선, 국민승리 21 권영길 후보 지지 활동까지가 내 대학시절의 공식적인 학생운동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98년에도 무언가 했으려나... 헷갈린다)

학교 밖으로 나간 것도 그 때였다. 97년 겨울 쯤 씨네마떼끄를 찾아갔고, 인권영화제 집행팀을 하게 됐다.

학교에서 풀지 못했던 헛헛함을 영화제 일 하면서 많이 풀었던 듯. 열심히 신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후 몇 년은 꽤 열심히 떼끄 일을 했었다. 떼끄도 그 때가 끝물이었는데 내가 이렇게 좀 늦된 게 있다.

 

매체로 재현되는 시간은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다. 매체라는 게 그렇기도 하고, 내가 겉돌며 살아서이기도 하겠지.

재현은 시간 보다 공간에 더 충실한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옛날 영화를 보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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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5 04:42 2014/11/25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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