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토 쎈티도 Sexto Sentido> + <노베라, 노베라 Novela Novela>

                  버지니아 라카요와 애미 뱅크        리즈 밀러

                  Virginia Lacayo and Amy Bank    Liz Miller

                  Video, 44min, 2001, 니카라과       Video, 30min, 2001, 니카라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섹스토 쎈티도>는 니카라과의 TV연속극이다. 니카라과의 평범한 청소년 여자 셋과 남자 셋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는 고향도 다르고 계급과 사회적 배경도 다른 이들이 마나과(니카라과의 수도)의 노동자 동네에 있는 한 집에서 어른 없이 살게 되면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는 니카라과 청소년들의 삶을 에워싼 복잡한 문제, 빈곤과 갈취, 임신과 낙태, 성폭력과 가정 폭력, 성정체성과 연애에 솔직하고 대담하게 접근하며 집단적 행동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한다. 일상적인 시청자와 똑같이 살고, 일하고, 고생하고, 사랑하는 살과 뼈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이 드라마는 니카라과에서 70%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이루었다. 

 

  작년 퀴어베리떼 상영작인 <섹스토 쎈티도 + 노베라, 노베라>는 바로 이 연속극의 에피소드 한 편과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한 편은 TV연속극인 <섹스토 쎈티도>이고 다음 것은 앞의 그 제작 다큐멘터리인 <노베라, 노베라>이다.

 

  페미니스트이며 또한 여성 및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단체 푼토스의 공동 대표이기도 한 두 명의 젊은 여성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드라마를 "사회적 연속극(social soap opera)"이라 부른다. 독특한 남미의 연속극의 구성에 비판적 사실주의를 결합시키며 보통사람들의 삶의 세계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노베라, 노베라>는 <섹스토 센티도>의 제작과 방영이 불러일으킨 반향을 보여준다. 완고한 카톨릭국가인 니카라과에서(니카라과에는 동성과 섹스하거나 동성애를 조장하면 처벌한다는 반소도미법이 아직 남아있다) 게이, 레즈비언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가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드라마에 참여한 이들에게 무엇이었으며, 관객들은 또한 이 드라마를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살피는 것이다.

 

  니카라과는 79년 혁명의 성공으로 소모사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산디니스타에 의한 좌파혁명정부를 세웠다. 하지만 96년 대통령선거에서 우파자유연합 알레만이 당선, 보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이전의 개혁적 흐름이 다시 폐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이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제작주체인 푼토스 드 엔 쿠엔트라는 단체이다. 80년대 니카라과의 혁명운동 참가, 정치운동과 공적참여의 조직경험 속에서 푼토스의 공동대표이자 <섹스토 쎈티도>의 제작자인 버지니아 라카요와 애미 뱅크는 체제 안에서의 충분한 질문이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만남의 장소라는 뜻의 푼토스 드 엔 쿠엔트는 급진적인 사회 정치적인 사고와 고민의 공간을 일상 속에서 창출하고 보다 통합된 전망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푼토스는 인권, 민주주의, 차이의 존중, 폭력과 차별 없이 살 권리를 끌어내는 것 등 대안적이지만 주변적이지 않은 생각들을 주류로 끌어내기 위해 정권과 매체가 조장하고 강화시키는 보수적인 가치에 대한 대응을 고민, 푼토스의 독자적인 미디어전략을 세우게 된다.

  공적 의제를 주류로 이끌어내기 위한, 대중매체만큼이나 대중적인 대안미디어제작이 바로 그것. 

 

  니카라과는 연속극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텔레비젼의 나라'라고 표현할 만큼 문화생활이나 정보의 통로가 TV로 집중되어 있으며 연속극 속의 주인공이나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몰입의 정도도 강하다는(TV 앞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함께 울고 웃는 우리나라의 70년대의 풍경을 연상하면 좋을 듯 ^^)... 하지만 연속극의 대부분은 수입되는 외국작품들이다. 애니 뱅크는 "이렇게 연속극의 인기가 좋은데, 우리 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들면 반응이 얼마나 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보수적 물결에 대항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단체의 생각을 TV로 알리고자 한 것이다. 대중적인 것과 대안적인 것 사이에 다름이란 대중적인 것과 대안적인 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 사이에 있다는 것. 또한 TV와 라디오는 대중매체이고 대중적이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생각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디어전략 하에 푼토스는 92년 <당신 생각과 체험이 중요해요 "이름 없는 청소년 프로그램">이라는 독자적인 라디오엑세스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진행, 출연하여 전화나 스튜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고민을 표현하고 이에 대해 서로 토론하는 라디오쇼인데, 청취자들의 반응이 좋자 독자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상업라디오로 확대되게 된다. 이를 통해 "이름 없는 청소년 프로그램"은 청취자과 접촉하고 이들의 반응을 더 많이 얻는 것 뿐만 아니라 다루는 주제 역시 꾸준히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푼토스는 TV 시리즈 제작을 구상, 96년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TV제작에 대한 경험이나 자원이 전무했던 이들은 방영되기까지 5년의 기간 동안 사람을 길러내는 것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섹스토 쎅티도>의 작가와 배우는 대부분 기존의 활동경험 없이 출발, 어린 나이부터 함께 활동해왔다. 작가이며 동시에 배우인 경우도 있고,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다가 단체의 이슈를 좀더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TV제작에 참가해 작가로 활동하는 15살 소녀도 있다. 빈민가에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배우, 배우 스스로가 가정폭력의 당사자인 경우, 심리학을 전공하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드라마 속 캐릭터의 경험을 토대로 학교 내에서 성상담을 직업으로 겸하게 된 배우도 있다. 대본을 쓰고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배우, 제작자가 캐릭터와 이야기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 역시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대중매체, 상업라디오, 독자적인 라디오엑세스채널, 신문 등을 통해 이슈를 제기하기 위해 TV를 사용하는게 푼토스의 드라마 전략의 일부이다. TV라는 강력한 대중매체를 통해 공적의제를 제기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푼토스는 드라마 제작 뿐만 아니라 책자 발간, 진보적인 법안제안(반가정폭력법 법률) 및 캠페인을 드라마 제작 및 방영과 병행하고 있다. 특히 니카라과의 여러 지역을 도는 <섹스토 쎈티노>제작 및 출연진의 투어 활동은 드라마 내용에 대해 배우, 작가, 제작자가 함께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드라마에 대한 부정적 혹은 긍정적 반응들을 토론으로 이끌어 사회 정치적인 사고를 끌어내는 활동 중의 하나이다. 이를 통해 드라마에서 드러내는 주제들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시청자들 역시 공감하게 되고, 같은 집단의 일원이 되도록 하며 연대와 집단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기존의 가치가 아닌 다른 식으로 인생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자기 인생을 간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섹스토 쎈티도>는 무척 인상적인 드라마이다. 물론 열악한 제작환경 때문에 셋트도 엉성하고 ... 사실 영상 자체가 주는 미학적인 즐거움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사실감이나 입체감 그리고 등장인물 간 관계의 역동성은 여느 유명 드라마나 극영화 못지 않다.

  무엇보다 드라마 제작 다큐멘터리인 <노베라, 노베라>는 정말 강한 느낌으로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언뜻 내용만 듣는다면 드라마제작 성공기록담 같을 수도 있겠지만, 대안미디어제작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되는 과정들과 드라마 제작 및 방영과 연동되는 다양한 내용과 매체의 활용전략은 미디어운동, 퍼블릭엑세스... 아직은 헛발질 같은 고민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미디어로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접하게 된 살가운 기회였다.

 

 

P.S. <섹스토 쎈티도>는 니카라과의 전국방송 26편의 드라마 가운데 6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일요일 오후 4시에는 니카라과의 70%의 시청자들이 <섹스토 쎈티도>를 본다. 이 중 니카라과에서 제작한 드라마는 <섹스토 쎈티도>가 유일하다. <섹스토 쎈티도>는 공적지원 없이 저예산으로 제작(촬영장비인 TRV900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되는데 미국 시트콤 <프렌즈> 한 편 제작비로  푼토스는 <섹스토 쎈티도>를 10년 동안 432회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섹스토 쎈티도> 공식 웹사이트 http://www.puntos.org.ni/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8/04 15:42 2005/08/04 15:42
http://blog.jinbo.net/productive_failure/trackback/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