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The Power Back!

 
2000년이었나? < 체 게바라 평전 >이 서점가를 휩쓴 적이 있다. "좌파", "빨갱이" 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우리나라에서 좌파 혁명가 '체'를 다룬 책이 당시 실천문학사를 먹여 살렸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니... 이후에도 '체'의 기운이 어린이/청소년 교육용 만화나 평전 출간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실로 놀라운 일 아닌가?

 
출판 불황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뛰어 넘은 < 체 게바라 평전 > 대히트에 당시 출판사인 실천문학사도 놀란 나머지 독자층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봤다고 한다. 당시 사회변화의 흐름을 이끌었다는 386 세대나 '운동' 언저리라도 경험해 봤을 법한 20대 후반들이 제 돈 주고 사보는 거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대체 이제 갓 대학 입학한 20대 초반이나 심지어 10대들까지 '체'의 평전에 미치도록 열광하는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 말이다.

'체 게바라 평전'과 'Rage Against The Machine'?
 
막상 그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다름 아닌 미국의 랩 메틀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RATM)'이 그 배경이었다.('랩 메틀' 이야기는 이후에 다시 나온다.) 당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좌파 혁명가 '체'의 본질보다 RATM 밴드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식의 사회문화적 분석도 쏟아졌다. 대체 이들이 어떤 음악을 선보인, 어떤 뮤지션들이었기에 지구 반대편, 아니 전 세계 젊은 영혼들을 서슴없이 '체', 그리고 '좌파'적 본능에 충실하도록 이끌었을까?
 
 

RATM의 1집에 담긴 'Take The Power Back' (3번 트랙)
* 영상 출처 : 티스토리 블로거 'Exit_Music' 님 (http://letdown.tistory.com)
 
 
RATM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음악적 장르인 '랩 메틀(Rap Metal)', 이들이 만들어질 당시 시대적 배경과 멤버의 구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랩 메틀(Rap Metal)'은 간단히 정리하면, '힙합과 강력한 록의 접합'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하드코어', '랩 코어' 등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장르야 어찌되었던 간에 1980년대 중후반부터 흑인의 전유물로 여기지던 랩과 힙합, 백인의 음악으로만 치부되던 메틀을 하나로 버무려 더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보다 강력한 사운드에 담아보려는 시도들이 넘쳐났다.
 
1980년대 중후반... 냉전시대는 끝난지 오래이고,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앞세우며 지구 전체를 짚어삼킬 듯 달려들고 있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전 세계 젊은이들로 하여금 제국주의적 세계지배에 반기를 들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1991년 결성된 RATM은 이같은 음악적 실험의 종결자로서, 또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진보적, 심지어 좌파적 아티스트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밴드의 리더격이자 기타리스트인 톰 모렐로(Tom Morello)는 학벌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선 유독 하버드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유명해졌지만, 케냐 출신 흑인의 후손인데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관련이론들을 두루 섭렵하며 밴드 음악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랩퍼인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 또한 멕시코계 히스패닉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인종차별과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 온 몸으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경험한 터였다. 이들 둘이 밴드의 음악적 영감을 이끌어냈다면, 드러머인 브래드 윌크(Brad Wilk)와 베이시스트인 팀 커머포드(Tim Commerford) 또한 자신들의 음악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가 직접적 실천과 행동에 나서는데 주저함이 없는 RATM의 색깔에 딱 들어맞는 아티스트들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기를 든 전 세계 젊은 영혼들은 나름 제대로 된 좌파 아티스트 RATM이 선사한 강렬한 반체제적 메시지와 강력한 사운드에 이끌려 좌파적 가치를 마치 본능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체 게바라'를 추종하며 '좌파'라 당당히 공언하는 이들의 음악과 사상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마치 RATM이 철저히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음악적으로는 RATM은 메이저 데뷔 첫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앨범 자켓에 "No samples, keyboards or synthesizers used in the making of this records.(이 앨범 녹음 작업에는 그 어떤 샘플링, 키보드나 신디사이저가 쓰이지 않았다.)" 라고 적어 놓을 정도로 밴드 이름처럼 순수 연주실력만으로 명반을 완성해냈다. 나부터도 앨범에 담긴 특이한 효과음들 거의 대부분이 톰 모렐로의 기타 연주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음악과 공연 영상들을 접했을 때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말이다.

 

 


RATM이 메이저 데뷔 앨범이었음에도 1집부터 주목을 받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밴드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내는 앨범 자켓 때문이었다. 1992년 11월 발매된 1집 음반의 자켓은 1963년 6월 11일 월남의 수도 사이공에 있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대승려 틱꽝득(Thick Quang Duc)이 소신공양을 행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미국의 제국주의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과 월남 독재정권의 반불교 정책에 항거하는 대승려의 소신공양 장면을 담은 린지 브라이스(Lindsay Brice)는 그해 이 사진으로 퓰리쳐상을 받았다.) RATM은 데뷔 앨범에서부터 30년 전 온 몸을 불사르며 미국의 제국주의와 부패한 독재정권에 반기를 든 한 승려의 마지막 순간을 자켓으로 담아내면서 그 어떤 정치적 수사보다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완성도 높은 음악성은 기본, 정치적 발언과 직접 행동에 나서는 좌파 밴드

앨범에서 뿐 아니라, 이들은 공연장과 각종 인터뷰에서 자본과 권력을 향한 사회적 발언과 특히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또 반전, 기아와 인권 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에, 여성과 노동해방 투쟁에, 검열철폐 등 표현의 자유를 위한 활동 등에 공연 수익을 기꺼이 내놓고, 직접행동까지 나서고 있다. 이렇듯 음악적으로 높은 완성도와 실천적 활동이 뒷받침된 때문인지 RATM은 1집 앨범부터 전 세계적으로 약 400여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중적 성공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톰 모렐로와 잭 드 라 로차가 유명 기타 제조업체인 콜드/콜텍의 한국 노동자들이 복직을 위해 미국까지 가서 원정투쟁을 벌일 때 적극적인 지지를 밝히며 함께하는 등 직접적인 실천과 행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내가 RATM을 처음 접하게 된 건, 그들이 첫 앨범을 내놓은 지 6년 만인 1998년이었다. H.O.T의 3집 타이틀곡 '열맞춰'라는 곡이 RATM 1집의 'Killing In The Name' 후렴구를 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음악인지 궁금해서 찾아듣고 난 뒤부터 RATM 음악에 푹 빠졌다.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랩 가사들과 전혀 말랑하지 않은 사운드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가사를 찬찬히 곱씹으며 랩과 리듬에 온 몸을 맡기고 들어본다면 의외로 가슴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빠져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글에서 어떤 음악부터 소개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RATM 1집의 10곡들 가운데 'Take The Power Back'을 선택했다. 거칠게나마 가사의 해석이 담긴 동영상으로 준비했으니 음미해 보시길... 이 앨범의 다른 곡들, 특히 'Killing In The Name', 'Know Your Enemy', 'Freedom', 'Wake Up' 등도 나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RATM 1집은 분명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임에 틀림없다. 사람 목소리조차 너무나도 손쉽게 기계음들로 조합해버리는 오늘날 우리 대중음악들과 비교해 보니 18년이 훌쩍 넘은 지금 들어도 훨씬 신선하게 느껴진다.
 
* < Rage Against The Machine >의 공식 홈페이지 - http://www.ratm.com

  
 
Writer profile
'히든 트랙(Hidden Track)'은 아티스트들이 음반을 발표할 때 곡목 이름을 어디에도 드러내지 않고 숨겨 놓는, 일종의 보너스 트랙을 일컫습니다.

참여연대 평간사협의회 소식지 < 세참 >을 통해서는 잘 알려진 명반이나 명곡들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명반과 명곡, 또 추억 속 음악들 가운데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톺아볼 만한 숨은 명반과 명곡들을 골라 함께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합니다.

언젠가 즐겨듣던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그 음악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나를 이끌 듯 좋은 음악들을 통해 나, 우리, 세상, 그리고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다른 소리, 숨은 소리를 찾아서~ 고고씽!" ^^

Posted by 이음[異音]

2011/02/07 06:13 2011/02/0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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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돌 2011/02/07 09:38 # M/D Reply Permalink

    우와 저도 들어봐야겠어요. 쵝오!

  2. 개똥 2011/02/15 15:49 # M/D Reply Permalink

    아마 매트릭스 2 인가에도 사용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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