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대방의 순진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버거워하던 '은수' 같았던 그와,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외치던 '상우' 같았던 20대 중반의 내가 있었다.
대부분의 일상과 적잖은 기준들이 그에게 맞춰져 있었으며, 그의 미래가 나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라는 사람을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나'를 구성하고 있던 조각들을 하나씩 버리고 나니 이별이 찾아왔다. 그리고 떠난 그와 함께 '나'는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았었다.
당시 그가 아닌 '나'를 조금 더 사랑했다면 그 사랑의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었을까? 허망하게 텅빈 나를 다시 채우기 위한 힘겨웠던 방황과 좌절의 시간들이 조금쯤은 쉬웠을까? 그래서 불에 댄 듯 '사랑'을 만지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 매번 멈칫하고 그만둬 버리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반복 하지 않았을까? 가끔 되묻곤 한다.
김진아 감독의 2007년 작 <두번째 사랑>은 상대방에게 맞추느라 조바심치고 급급한 첫번째 사랑이 아닌, 자신과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기에 더 성숙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유색인으로서 그 사회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하고 겉도는 자신의 삶에 절망하는 남편 앤드류(데이비드 맥기니스)와 그가 삶의 애착을 갖도록 하기 위해 아이가 필요한 소피(베라 파미가), 그리고 한국에 있는 애인을 데려와 미국에서 살기 위해 밤낮 없이 세탁소와 육류창고에서 일하고, 보따리 장사에 정자까지 팔고자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불법체류자 지하(하정우)가 등장한다.
끝내 자살시도까지 하는 앤드류를 살리기 위해서 아이가 다급하게 필요해진 소피는 불임클리닉을 찾았다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정자를 팔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지하를 만난다. 그를 미행한 소피는 앤드류와 같은 외모의(한국인) 지하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한번에 300불씩, 아이를 갖게 되면 3만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소피가 임신을 할 때까지 함께 잠자리를 해주는 것.
그러나 몸으로 시작된 둘의 관계는 거래로만 끝나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이어지고, 소피는 앤드류와 결별하고 누구를 위해서거나 어떤 이유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자신들을 다 버려도 좋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들을 버리고 두번째 사랑에 빠져드는 이 과정은 단순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아닌, 타인의 욕망에 맞추던 첫번째 삶을 버리고 자신의 욕망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두번째 삶으로의 전환으로 보인다.
앤드류는 '아이'라는 매개체가 없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세상이나 소피에게 미련이 없고, 소피는 이미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하는 섹스를 반복하면서 그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살을 시도한 앤드류가 집으로 돌아와 밤에 피아노를 치는 신은 거울에 비친 앤드류와 그를 바라보는 소피가 서로 등을 돌리고 있도록 설정되어 있어 그들의 관계가 이미 끝났음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를 끝까지 붙들고자 지하와 거래를 시작한 소피가 앤드류를 위해 아이를 가지려던 과정은 지하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아이를 갖는 과정으로 치환된다. 영화는 만삭의 소피가 해변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소피의 미소를 클로즈업하면서 끝나는데, 그 알듯 말듯 한 미소는 어떤 메시지라고 딱히 규정하긴 어려우나 영화 속의 그 어떤 대사들보다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사실 이 영화를 세 번 이상 봤는데, 볼 때마다 우습게도 '너 다음 사랑에는 저렇게 웃을 수 있겠어?' 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라 좋아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이 영화의 장점은 많다. 영화는 불법체류자이며 이주노동자인 지하의 현실을 그저 일상처럼 거리감 있게 묘사한다. 그러나 길가에 버려진 의자를 아무렇지 않게 주워가는 장면이나, 무거운 맥주박스를 혼자 나르는 그를 바라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바라보는 백인 노동자들의 모습, 쉬는 날이면 밀수품 시계를 팔기 위해 무표정한 얼굴로 긴 터널을 바삐 걸어가는 모습 등은 오히려 타국에서의 힘겨운 삶과 외로움이 일상이 되어버렸을 우리 안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떠오르게 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또한 카리스마 있는 외모와는 정반대로 약한 이민2세의 모습을 잘 연기한 <컷 런스 딥>(The Cut Runs Deep/이재한/1998)의 데이빗 리 멕기니스의 반가운 모습이나, 쉬이 깨질 것 같은 하얀피부와 파란눈동자 만큼이나 예민하게 사랑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떨림과 흥분을 잘 표현한 베라파미가의 연기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영화 <밀양> 만큼이나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도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고 소피에게 기도를 강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다수의 동포들이 맺고 있는 기독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동포사회의 약간은 비정상적이고 외부인에게 폭력적이기까지 한 속성을 보여준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나봅니다. 결국 입춘이 왔고 지푸라기 처럼 변해버렸던 길가 풀밭에도 연하지만 푸르스름한 기운이 돋고 있습니다. 곧 따뜻한 바람이 불고 꽃이 피는 봄이 오겠지요.
"베란다가 언다고 세탁기를 돌리지 말래서 일주일째 빨래를 못하고 있어"
"어제 화분에 물을 줬는데 물이 빠지면서 그대로 얼어 버렸어요"
올 겨울 사무실에 출근하면 간사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엠본부의 무한도전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하더군요.
"올 겨울은 추워서 싱글들이 집에 있기에 참 좋았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추웠습니다. 싱글인 제가 집에 있기에도 추웠으니까요.
예사롭지 않은 강추위에 5톤 트럭을 운행하시는 아버지께 안부 전화라도 한통 드려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가장 추웠던 날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많이 춥지 않으시냐는 제 물음에 괜찮다고 하시면서도 차 기름이 얼어버려 차가멈췄고, 기름을 녹이느라 길에서 몇 시간을 떨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올 겨울, 저는 추위에 꽁꽁 얼기도 했지만 그 추위에 길에서 꽁꽁 얼었을 아버지에게, 그 많았던 추운날들 중에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가장 추운날 달랑 전화 한통 넣는 딸내미의 냉랭함에 그만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봄이 오기 전, 올 겨울 우리 간사들을 꽁꽁얼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이 답해주셨습니다. 바쁜 업무중에도 성의껏 답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올 겨울, 당신을 꽁꽁 얼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장동엽 : 기록적인 추위로 낫지 않는 감기.
군생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에서 지내서 추위에는 무딘 편인데 올 겨울 서울의 추위는 장난 아니었다고 기억될 듯하네요.
안진걸 : 2월 8일 엄청난 민생예산 삭감을 동반한 미친 날치기 였네요. 겨울 내내 그게 제일 시렵고, 서럽고 그랬죠. 그 와중에 미친 등록금의 나라 까지 나와서.. 미친 날치기, 미친 소말리아 작전(사람 마구 죽인것을 찬양...) 미친 등록금 고지서(2월달부터 집집마다 도착) 미친 시리즈들이 제 마음을 꽁꽁..
이선희 : 추운 날씨와 그로 인한 감기, 조직 개편에 따라 야근이 증가하는 분위기,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친구의 말(사생활이라 내용을 밝히기는 어려움 ㅋㅋ)
송은희 : 늘어가는 주름? ㅋㅋ
차은하 : 날씨 땜에 꽁꽁꽁!
사무실보다 추워 들어가기 싫었던 집, 추우면 현관 자동문이 고장나버려 긴장했던 퇴근길.
그래도 따뜻한 사람과 살아서 행복해요. ㅎㅎㅎ
천웅소 :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가 얼어서 빨래하기가 힘들었어요. 참고로 제가 빨래 담당임.지난 주에는 드디어 급수 밸브의 플라스틱 부분이 얼어서 깨진바람에 대학가 근처의 셀프빨래방에 가서 세탁하고 왔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새참은 '일을 하다가 잠깐 먹는 음식' 입니다. 물론, 참여연대 평간사협의회 소식지 '세참' 과는 표기가 다르지만, 그 음은 같습니다.
두 번째 창간준비호로 발행되는 평협 소식지가 참여연대 간사들이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뭔가 허하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새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는 창간호로 준비되었어야 했으나 급하게 창간호를 내기 보다는 조금 더 다듬어 완성도를 높인 창간호를 발행하고자 두번째 창간준비호로 내놓습니다. 창간호는 새로운 형식, 새로운 편집으로 다음호부터 찾아뵙겠습니다.
이번 준비호부터 새로 구성된 편집진들의 기고가 시작됩니다.
머리를 움직이는 만큼 몸을 움직이는 활동가의 사진이야기 김민수 간사의 '시민운동가의 꿍푸', 참여연대의 발자취가 담긴 참여사회를 친절하게 다시 읽어 줄 황영민 간사의 '참여사회 뒤집어보기', 잘 알려지지 않은 명반과 명곡, 사회적으로 톺아볼 만한 음악을 소개해 줄 장동엽 간사의 '히든 트랙', 생태주의, 권위주의, 여성주의, 비장애인 중심주의 등을 통해 참여연대의 조직문화를 점검하는 이선희 간사의 '함께 걷는 한 걸음', 속닥속닥 영화나 TV 프로그램에 관한 수다, 신미지 간사의 '저랑, 같이 보실래요?'
참여연대 내 모임, 동아리, 신입 간사등의 소식을 전할 천웅소 간사의 '소개합니다',
그리고 창간호 부터 발행 될 지속적으로 발전할 평협을 위한 글, 인터뷰, 기고 등을 전할 천웅소 간사의 '지속가능한 평협'
뻔한 말이지만, 많은 관심과 피드백만이 평협 소식지 '세참'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 줍니다. 하여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가 즐거운 소식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위는 건강권 위협에 대한 불안감 시작되었으나, 이후에는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핵심적인 화두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 하는 시민들의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나 광우병 촛불시위가 보여준 민주주의는 불완전 하다. 민주주의에 대해 이중(혹은 다중) 잣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독재적 국정운영은 반대하면서도 교육, 주거, 일자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한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옹호하면서도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운동진영 일각에서도 표리부동한 모습은 나타났다. 당시 모 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우들의 의견수렴을 위한 총투표 절차도 무시한 채 동맹휴학을 결정했다. 타인의 비민주성은 보아도, 자신의 비민주성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이 '내 안의 이명박'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참여연대는 설립 이후 다양한 권력감시 운동을 펼치면서 한국사회 민주주의 발전을 견인해 왔다. 그러나 참여연대 내부의 민주주의의는 얼마나 성숙하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가령, 참여연대에는 평간사협의회는 있으나 노동조합은 없다. 시민단체는 특정한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전통적 노사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활동가는 엄연히 임금을 받고 고용된 노동자다. 명확한 의미의 사측은 없어도, 명확한 의미의 노동자는 존재한다.
전통적 노-사 관계에서 사측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임금 및 복지에 관해 요구할 권리도 불필요 한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제때 월급을 챙겨주기도 열악한 재정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로 인해 임금을 '협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참여연대는 재정적, 인적, 사회적 측면에서 상당히 성숙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부 의사결정 시스템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노동조합이 없다고 해서 참여연대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해왔던 것은 아니다. 그간 열악한 임금 및 복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들이 있었고, 활동가들에 대한 처우는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평간사협의회만으로는 '평간사'라는 위상에도 한계가 있으며, 동등한 의사결정 주체로 존중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에 노사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한 노동조합을 포함해 내부적 민주주의를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하 자료실 한 켠에서 참여사회 창간호를 찾아 보았습니다. 마치 최근에 발간된 것처럼 보존상태가 좋더군요. 살며시 들춰보니, 몇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눈에 띱니다. 표지 뒷면에 바로 붙어있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전면 광고.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광고이지요. 필자 중엔 '연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신진욱'이라는 익숙한 이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편집은 지금 안식년에 들어간 '이샛별' 선배가 했네요^^
참여사회 창간호는, 창립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민단체의 소식지인만큼 시민운동에 관련된 글들과 참여연대에 바라는 글들이 상당수입니다. '한국의 민주화, 시민사회, 시민운동 (최장집 고려대 교수)' , '시민운동은 민주화투쟁의 연장이어야 한다(장호순한국사회교육원 연구부장)', ' 시민운동과 참여연대 (기획좌담회)',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접착제가 되길 (권영길 민주노총 준비위 공동대표)' 등의 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방자치'와 '국민생활최저선운동'에 대한 글들도 눈에 띱니다. 이 모든 글들이 참여연대에 애정을 가진 모든 이들이 '한 자 한 자' 땀흘려 적으신 글이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2개의 글만 짧게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블로그에서 창간호 분류에 묶인 글들에서 2개를 뽑았는데, 막상 창간호 원문에는 해당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사건 경위에 대한 추적은 이후로 미루고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인 만큼 아래 글들을 소개합니다.)
글 하나. "간사들이여 반란하라" (조재범 부산경실련 기획부장)
이 글은 지역의 한 활동가가 쓴 글입니다. (이 분이 현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찾아봐도, 포털에서는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는..) 실무간사(저연차)의 빈번한 교체가 초래하는 단체의 부실화를 극복하기 위해, 단체 내부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지요. 이를 위해 단체내 간사들 간의 정보공유, 나아가 타 단체간의 간사 협의체 구성을 통한 정보공유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가 최선입니까? 라고 물으면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선동적인 제목만큼이나 앞뒤 자르고 몇 몇 구절은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간사들의 빈번한 교체는 단순히 불안정한 수입 때문만은 아니다. 이게 중도 포기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 소모적 운동에 대한 회의 등과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이다. 간사들의 활동비 현실화를 중장기적인 과제로 접어둔다 하더라도, 이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시민단체 관계자 모두의 일일 것이다."
"의사소통의 핵심은 ‘정보의 공유’이다. 사무처장이 사무국에서 비중이 높은 것은 축적된 경험과 정보의 독점때문임을 들 수 있다. 많은 연대회의와 비공식적 접촉 등으로 다수 정보를 가짐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정보독점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간사들의 어려움을 다독거려 주고, 같이 고민하는 맏형격인 중견실무자들이 풍족하게 될 그날, 그 시민단체 사무국을 꿈꾸며, 다시 한번 힘차게 뛰어 보자."
요즘 5층에 함께 살고 계시는, 참여연대 최장신 김형완 전 처장님의 글입니다. 극단적으로 보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돈 만원의 가치를 우습게 아는 필부의 짧은 생각이라 느끼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고민꺼리가 아닌가 합니다. 당시에도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여기저기 나왔나 봅니다. 이 글은 "'전문가 중심 운동' 비판에 대한 변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현실적 한계이면서도 아쉬운 점을 굳이 꼽으라면 전문가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만큼, 시민 참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 어쩌면 제가 오독한 것일지도^^
" “시민운동이 지나치게 특정 전문가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니냐”고. 우려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론 질타나 비판일 수도 있는 이런 지적은 어쨌거나 들을 때마다 매번 아프고 시리다...과연 시민운동이 전문가 중심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일 터이고, 반대로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양적인 비교만으로는 볼 수 없겠으나, 우리사회 인구 대비 참여연대 회원 수의 비중이 바로 참여연대가 갖고 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정상적인’ 영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참여연대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그 이상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좋게 말해서 시너지 효과랄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해서 과잉활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시너지, 또는 과잉활동의 현상은 회원들의 유달리 높은 의욕과 참여의식, 그리고 활동가들의 명석함이나 기민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이를 지휘하고 통솔하는 리더십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 못지 않게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는 역시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전문가’집단의 결합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지만 회원-활동가-전문가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이다. 특히 늘 회원 늘리기에 골머리를 싸안고 씨름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노력을 조금이라도 감안한다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는 결국 어떤 특정집단의 한정된 노력으로 풀어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시민참여의 항상적인 결핍상황을 탓한다고, 또는 이런 결핍을 마치 주술사가 주문이나 외는 것처럼 이상적이고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언제나 시민운동은 당시 시민들의 참여와 의식수준 만큼만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준에 전적으로 규정되기 마련이다. 특히 오늘 우리의 시민사회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시민적 참여나 그에 기반한 시민주체의 운동’과 대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민운동이 ‘전문가 중심운동’이라고 그리 자조하거나 비판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호에는 이렇게 짧게 정리합니다. 재미가 없는 코너가 될 것이라는 편집장의 우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일종의 파일럿 코너'라고 생각했기에 한 번 클릭수를 살펴보겠습니다^^ 애초에 구상했던 코너에 대한 말을 변명으로 남기며..다음호에 보아요~.
<잠깐! 본문보다 더 구구절절한 코너 변경의 변!>
사실 새롭지도 않지만,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내맘대로 하기 질병’을 진단하며 간간히 신문지상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자꾸 그러면 레임덕은 도둑처럼 찾아온다’. 문득 이 말을 보다보니 뜬금없이 '왜 2011년은 이렇게 도둑처럼 와 버렸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도 간간히 문서를 저장할 때면 ‘201012’를 쳤다가 서둘러 지워버립니다. 벌써 2월인데 말이지요. 진정 저만 그런 것인가요? 잠시 넋두리부터 해봤습니다^^
애초에 쓰고 싶었던 코너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필똑서’였습니다. 누구 말씀처럼 공부는 평생이고 주위에 읽을 책들은 차고 넘치는데, 게다가 다들 배울만큼 배우고 머리 굵어서 자기 삶의 하나로 참여연대와 시민운동을 선택한 것은 분명할 진데, 그럼에도 일하다 보면 ‘내가 뭘 하고 있지?’라고 생각이 들 때면 뭔가 자기근거를 찾게 되잖아요? ‘시민운동? 시민단체? 한국에서? 더욱이 2012년에?’ 여기에다 ‘민주주의? 진보?’ 이런 고급(?) 용어들까지 연쇄작용으로 떠오르게 되면 뒤적뒤적 또 책을 뒤져보게 되지요. 물론 자기 고민이야 활동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 백번 천번 옳은 얘기입니다만, 일단 근거에 대한 갈증은 책에서 찾고보는 것이 또 우리 습관이기도 하지요. 앞서 얘기했듯 책들은 차고 넘치고, 아카데미에서 좋은 강좌도 많이 열리지만, 또 여러 선배들로부터 알음알음 구전을 전해들을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참여연대에 고민의 실마리를 이어갈 수 있는 ‘활동가의 기본서 목록’은 없더라는 거지요. 어느 영화 제목처럼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초보활동가를 위한 안내서’같은 거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것이 역부족이더이다. 웬만큼 내공이 쌓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체 그림을 그리고 안내서를 써야 하는데 글쓴이의 준비상태가 너무 부실하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활동가의 필똑서’ 코너는 중기 과제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요즘 트렌드는 중기계획 아니겠어요^^ 누구라도 필똑서 코너의 필요성에 열광하며, 넘치는 지식을 나눠주신다면 함께 추진해보겠습니다. 그럼 변명은 끝!
2000년이었나? < 체 게바라 평전 >이 서점가를 휩쓴 적이 있다. "좌파", "빨갱이" 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우리나라에서 좌파 혁명가 '체'를 다룬 책이 당시 실천문학사를 먹여 살렸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니... 이후에도 '체'의 기운이 어린이/청소년 교육용 만화나 평전 출간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실로 놀라운 일 아닌가?
출판 불황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뛰어 넘은 < 체 게바라 평전 > 대히트에 당시 출판사인 실천문학사도 놀란 나머지 독자층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봤다고 한다. 당시 사회변화의 흐름을 이끌었다는 386 세대나 '운동' 언저리라도 경험해 봤을 법한 20대 후반들이 제 돈 주고 사보는 거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대체 이제 갓 대학 입학한 20대 초반이나 심지어 10대들까지 '체'의 평전에 미치도록 열광하는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 말이다.
'체 게바라 평전'과 'Rage Against The Machine'?
막상 그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다름 아닌 미국의 랩 메틀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RATM)'이 그 배경이었다.('랩 메틀' 이야기는 이후에 다시 나온다.) 당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좌파 혁명가 '체'의 본질보다 RATM 밴드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식의 사회문화적 분석도 쏟아졌다. 대체 이들이 어떤 음악을 선보인, 어떤 뮤지션들이었기에 지구 반대편, 아니 전 세계 젊은 영혼들을 서슴없이 '체', 그리고 '좌파'적 본능에 충실하도록 이끌었을까?
RATM의 1집에 담긴 'Take The Power Back' (3번 트랙) * 영상 출처 : 티스토리 블로거 'Exit_Music' 님 (http://letdown.tistory.com)
RATM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음악적 장르인 '랩 메틀(Rap Metal)', 이들이 만들어질 당시 시대적 배경과 멤버의 구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랩 메틀(Rap Metal)'은 간단히 정리하면, '힙합과 강력한 록의 접합'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하드코어', '랩 코어' 등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장르야 어찌되었던 간에 1980년대 중후반부터 흑인의 전유물로 여기지던 랩과 힙합, 백인의 음악으로만 치부되던 메틀을 하나로 버무려 더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보다 강력한 사운드에 담아보려는 시도들이 넘쳐났다.
1980년대 중후반... 냉전시대는 끝난지 오래이고,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앞세우며 지구 전체를 짚어삼킬 듯 달려들고 있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전 세계 젊은이들로 하여금 제국주의적 세계지배에 반기를 들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1991년 결성된 RATM은 이같은 음악적 실험의 종결자로서, 또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진보적, 심지어 좌파적 아티스트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밴드의 리더격이자 기타리스트인 톰 모렐로(Tom Morello)는 학벌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선 유독 하버드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유명해졌지만, 케냐 출신 흑인의 후손인데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관련이론들을 두루 섭렵하며 밴드 음악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랩퍼인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 또한 멕시코계 히스패닉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인종차별과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 온 몸으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경험한 터였다. 이들 둘이 밴드의 음악적 영감을 이끌어냈다면, 드러머인 브래드 윌크(Brad Wilk)와 베이시스트인 팀 커머포드(Tim Commerford) 또한 자신들의 음악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가 직접적 실천과 행동에 나서는데 주저함이 없는 RATM의 색깔에 딱 들어맞는 아티스트들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기를 든 전 세계 젊은 영혼들은 나름 제대로 된 좌파 아티스트 RATM이 선사한 강렬한 반체제적 메시지와 강력한 사운드에 이끌려 좌파적 가치를 마치 본능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체 게바라'를 추종하며 '좌파'라 당당히 공언하는 이들의 음악과 사상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마치 RATM이 철저히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음악적으로는 RATM은 메이저 데뷔 첫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앨범 자켓에 "No samples, keyboards or synthesizers used in the making of this records.(이 앨범 녹음 작업에는 그 어떤 샘플링, 키보드나 신디사이저가 쓰이지 않았다.)" 라고 적어 놓을 정도로 밴드 이름처럼 순수 연주실력만으로 명반을 완성해냈다. 나부터도 앨범에 담긴 특이한 효과음들 거의 대부분이 톰 모렐로의 기타 연주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음악과 공연 영상들을 접했을 때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말이다.
RATM이 메이저 데뷔 앨범이었음에도 1집부터 주목을 받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밴드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내는 앨범 자켓 때문이었다. 1992년 11월 발매된 1집 음반의 자켓은 1963년 6월 11일 월남의 수도 사이공에 있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대승려 틱꽝득(Thick Quang Duc)이 소신공양을 행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미국의 제국주의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과 월남 독재정권의 반불교 정책에 항거하는 대승려의 소신공양 장면을 담은 린지 브라이스(Lindsay Brice)는 그해 이 사진으로 퓰리쳐상을 받았다.) RATM은 데뷔 앨범에서부터 30년 전 온 몸을 불사르며 미국의 제국주의와 부패한 독재정권에 반기를 든 한 승려의 마지막 순간을 자켓으로 담아내면서 그 어떤 정치적 수사보다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완성도 높은 음악성은 기본, 정치적 발언과 직접 행동에 나서는 좌파 밴드
앨범에서 뿐 아니라, 이들은 공연장과 각종 인터뷰에서 자본과 권력을 향한 사회적 발언과 특히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또 반전, 기아와 인권 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에, 여성과 노동해방 투쟁에, 검열철폐 등 표현의 자유를 위한 활동 등에 공연 수익을 기꺼이 내놓고, 직접행동까지 나서고 있다. 이렇듯 음악적으로 높은 완성도와 실천적 활동이 뒷받침된 때문인지 RATM은 1집 앨범부터 전 세계적으로 약 400여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중적 성공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톰 모렐로와 잭 드 라 로차가 유명 기타 제조업체인 콜드/콜텍의 한국 노동자들이 복직을 위해 미국까지 가서 원정투쟁을 벌일 때 적극적인 지지를 밝히며 함께하는 등 직접적인 실천과 행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내가 RATM을 처음 접하게 된 건, 그들이 첫 앨범을 내놓은 지 6년 만인 1998년이었다. H.O.T의 3집 타이틀곡 '열맞춰'라는 곡이 RATM 1집의 'Killing In The Name' 후렴구를 표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음악인지 궁금해서 찾아듣고 난 뒤부터 RATM 음악에 푹 빠졌다.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랩 가사들과 전혀 말랑하지 않은 사운드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가사를 찬찬히 곱씹으며 랩과 리듬에 온 몸을 맡기고 들어본다면 의외로 가슴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빠져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글에서 어떤 음악부터 소개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RATM 1집의 10곡들 가운데 'Take The Power Back'을 선택했다. 거칠게나마 가사의 해석이 담긴 동영상으로 준비했으니 음미해 보시길... 이 앨범의 다른 곡들, 특히 'Killing In The Name', 'Know Your Enemy', 'Freedom', 'Wake Up' 등도 나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RATM 1집은 분명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임에 틀림없다. 사람 목소리조차 너무나도 손쉽게 기계음들로 조합해버리는 오늘날 우리 대중음악들과 비교해 보니 18년이 훌쩍 넘은 지금 들어도 훨씬 신선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