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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12
    유물론에서의 정신(1)
    순수

유물론에서의 정신

* 이 글은 미류님의 [감기와 정신분열증]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다양한 형식의 물질작용을 통해 우리의 기억과 사고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하지요.

"차이", 곧 "증상"을 하나의 모델로 잡아가시는데, 그게 바로 제가 현대 의학의 맹점이자 위험한 지점이라고 보는 부분입니다. 둘의 발명의 시기가 다르다고 했죠? 임상의학이라는 커다란 틀로 보면 유사하게 발전하겠지만, 실제로 접근하는 방법에서는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기존에는 분명히 정신과에 속하는 것도 물리적 원인에서 찾으려고 했었죠. 매우 비상식적인 정신병 치료법들이 그래서 등장한 거죠. 그렇지만, 이런 걸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으니, 이제는 정신과에서 그 부분을 아주 합리적으로 포섭했습니다.
"병의 발명"이라는 부분은 이미 서로 동의를 하고, 논의가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이전으로 넘어가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의 발명이란 사실 하나로 모든 차이를 지워버리면서, 또한 병의 치료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그 차이를 모두 지웠으면 새로운 차이 지점을 이야기를 하거나 해야 할텐데 말이죠.
언명 이전의 확연한 차이라면, 극단적으로 감기로는 죽는데 정신질환으로는 안 죽습니다. 왜냐면 정신질환이란 것 자체가 언명 이전의 신체의 사건이 아닌,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이기 때문이죠. 감기는 유물론적으로 작동하지만, 정신질환은 구조에 의해 작동합니다. 이 차이를 지울 때 고전 의학으로 돌아가고, 이 차이를 강화해서 포섭하면 현대 의학이 되는 거죠. 저는 그 지점을 넘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신체질환에 있어서의 비정상성은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되나 정신질환에서의 '비정상성'은 눈에 두드러지는 배제 작용을 해왔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비판이 주로 정신질환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듯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건 바로 정신/정신질환이라는 것 자체가 "관계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의학 이전에는 감기라는 사건조차도 "관계"로 해석을 했죠. 대표적으로 "달거리" 같은 게 있는데요, 성경(레위기)에서는 이를 아예 부정한 것으로 분류를 하죠. 근대 의학은 확연히 차이를 드러내면서 이를 포섭하지요. 여기에서 분류의 기준들이 확연히 바뀌는 겁니다. 병의 발명의 지점 또한 바뀌는 거구요. 처음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병의 발명 지점이 어디이며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보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 지점들을 사정없이 지워버리면 아무 것도 되지 않죠. 광인에 대한 처리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살피는 게 바로 "광기의 역사"죠? 거기에 보면 배제의 주요한 지점이 처음에 바뀌는 걸 다루죠? 바로 "나병환자"로부터 "광인"으로의 이행이죠. 왜 갑자기 이렇게 돌변할까요? 이걸 푸코는 근대 이성이라는 걸 테마로 잡아서 분석합니다. 이런 섬세함을 확장해서 "임상의학의 탄생"이란 것도 다루는 거지, 거기서도 "전과 마찬가지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각각 어떤 지점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작동했고 하는 것들을 정확히 실증적으로 다루고 있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관계"라는 것은 소위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구조"에 해당합니다. 저는 "정신"을 이 "관계"의 산물로 봅니다. 애초에 상징계로 편입되는 순간부터 게임은 끝나는 겁니다. 즉, 이쪽은 병의 발명 훨씬 이전의 문제입니다. 언명 이전의 감기는 이런 주체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주체로 편입되지 않아도 아프고 죽어버립니다. 정신질환의 경우엔 다릅니다. 정신질환이라는 언명 이전에 주체로 편입되면서 이미 "광인" 체제가 작동하게 됩니다. 근대 이성이 이걸 어떤 식으로 전유하느냐에 대해서 다룬 게 바로 "광기의 역사"인 것입니다.
차이에 대해서 두가지를 이야기하면, 첫째로 차이는 목적을 위한 분류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구요(바로 "병의 발명" 지점이 이 부분에 해당합니다), 둘째로 각 차이들은 그 자체로 분명히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두번째를 무시하고 하나로 지워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결코 목적론적 분류가 아닌 차이의 인식에 해당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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