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302, April 1, 2011

 

리비아를 둘러싼 거대한 난맥상
("The Great Libyan Distraction")

 

 

 

 

지난 달 리비아에서 벌어진 모든 갈등, 그러니까 내전이라든가 미국의 주도 아래 이뤄진 반反가다피 군사 행동은 인도주의적 개입과도, 화급하다는 세계 석유 수급 상황과도 무관했다. 그건 사실 커다란 하나의 난맥상, 아랍 세계에서 주되게 진행중인 정치적 투쟁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고자 용의주도하게 이뤄진 난맥상이다. 가다피, 그리고 저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서방권 지도자들에게는 어느 누구 할것없이 일치하는 점이 하나 있다. 그네들은 제2차 아랍 봉기를 늦춰 무력화, 포섭하고 제한하고 싶어하며, 봉기로 인해 아랍 세계의 토대를 이루던 여러 정치적 현실과 이곳이 세계체제의 지정학 차원에서 지닌 위상이 바뀌지 않기를 원한다.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그간 무슨 일이 벌어져왔는지를 연대기적인 흐름 속에서 따라가야 한다. 아랍권의 여러 국가들에서 끓어오른 정치적 불만들과 이들 국가 내부의 이런저런 실천 영역을 지원하려는 다양한 외부세력의 시도가 오랜 시간 늘상 있어왔다곤 해도, 이제까지와 아주 다른 과정의 닻을 올린 건 작년 12월 17일에 일어난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젊은 친구의 (분신)자살이었다.

 

 

그 사건은 내 견해론 1968년 세계 혁명 정신을 계승한 것이었다. 지난 몇 달 간 아랍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1968년 제도화된 권위에 맞서 저항의 닻을 올릴 용기와 의지를 가진 집단은 젊은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많은 것들로부터 촉발됐는데, 예컨대 제도화된 권위의 운용자들이 보여준 전횡·잔혹함·부패, 그네들이 자초한 경제 상황의 악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치적·문화적 운명에 대한 자결권을 골자로 한 도덕적·정치적 권리의 중시 같은 것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 전반에 맞서, 그리고 그들을 대의한다는 각국 지도자들이 외세의 여러 압력에 이런저런 식으로 복속되는 데 맞서 저항해왔다.

 

적어도 처음엔, 이들 젊은 친구들은 조직화된 면모를 띠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언제나 철저히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한테는 이제껏 배짱이 있었다. 그리고 1968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취한 행동들은 높은 전염성을 가졌다. 얼마 가지 않아 사실상 모든 아랍권 국가에서, 대외정책상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기성 질서에 위협을 가했다. (지정학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아랍권 국가인 이집트에서 그들이 자신의 힘을 보여줬을 때, 모두가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같은 반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 반란에 동참하고 그럼으로써 반란의 향배를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반란을 으깨어버릴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다. 이제껏 이 두 방법이 모두 시도돼왔다.

 

사미르 아민이 이집트에 관해 했던 분석에서 강조했다시피, 아랍 민중반란에 관여하고 있는 부류는 셋인데, 전통적이면서 다시 활기를 띠게 된 좌파, 중간계급 성향의 전문가집단, 그리고 이슬람주의자들이다. 이들 부류가 지닌 힘과 특성은 국가별로 다양하다. 아민은 좌파와 (민족/국민주의 성향을 띠지만 탈민족적 신자유주의자는 아닌) 중간계급 전문가집단을 반란에 긍정적인 성분으로, 가장 늦게 반란의 흐름에 묻어간 이슬람주의자들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군부가 있는데, 늘상 기성 질서의 요새 역할을 하는 군부가 나중에 반란에 합류한 건 엄밀히 말해 반란 효과를 제약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야 리비아에서 봉기가 시작됐을 때, 그건 이웃한 두 나라 튀니지·이집트에서 일어난 반란의 성공과 맞닿은 결과였다. 리비아의 가다피는 남달리 무자비한 지도자로서, 조국을 배신한 자들한테 무엇을 할지에 관해 살벌한 연설을 하던 중이었다. 곧바로 프랑스와 영국, 미국에서 군사적 개입에 관한 목소리들이 강하게 나오긴 했지만 실제 개입은 녹록치 않았는데, 이들 국가 입장에선 가다피가 반反제국주의를 표방하는 가시 같은 존재였던 탓이다. 그는 구미권에 리비아산 석유를 기꺼이 팔았고, 이탈리아가 불법 이민의 물결을 막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떠벌려댔다. 구미권산 기업들한테 수지 맞을 만한 사업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개입 진영은 두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서방에서 이뤄지는 그 어떤, 그리고 모든 군사 개입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과, 이같은 군사 개입이 인도주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이들 진영은 미국에서 군부의 아주 강한 반대에 직면해 있는데, 군부에선 리비아 전쟁이 승산도 없고 미국에게 엄청난 군사적 긴장을 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랍 연맹의 결의가 갑작스레 이뤄지면서 (개입을 둘러싼) 세력관계의 균형이 바뀌었을 때, 인도주의적 개입의 필요를 주장하는 후자 쪽 사람들이 승기를 잡아가게 됐던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에서는 비행금지 구역의 설정을 지지하는 결의안이 아랍 연맹에서 통과되도록 아주 열성적이고 효율적으로 품을 들였다. 아랍 국가들한테서 만장일치의 지지를 끌어내고자, 사우디 정부는 두 가지를 양보했다. 결의안에 담긴 요구를 비행금지 구역에 관한 것으로만 한정하고, 그 어떤 구미권 국가의 지상군 침입도 반대한다는 두 번째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한 것이었다.

 

사우디는 왜 이렇게까지 상황을 밀어부쳤을까? 미국에서 누군가가 사우디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하라고 요구했던 걸까? 내가 생각하기로, 실상은 정반대였다. 이번 비행금지 구역 설정 건은 미국보다는 오히려 사우디가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하나의 사례였다. 이 시도는 잘 먹혔고, 이는 세력균형을 무너뜨렸다.

 

사우디 행정부가 원했고 또 얻은 건, 자기네한테 아주 긴급하게 다가왔던 상황으로부터 주의를 크게 분산시키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사우디에 영향을 끼치고 그 다음엔 걸프 지역 국가들, 그리고 나선 여타 아랍 세계로까지 확산될 아랍 민중 반란을 엄중단속하는 일 말이다.

 

1968년에도 그랬듯, 이와 같이 권위에 맞서 싸우고자 일어난 반란은 그 자장권에 들게 된 나라들에서 일찍이 겪어본 적 없는 균열들을 만들어내고, 예상치 못한 일련의 동맹을 만들어낸다. 인도주의적 개입 요구는 특히나 그렇다. 내가 인도주의적 개입을 문제삼는 건, 그런 개입이 인도주의적일 거란 그 어떤 확신도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같은 개입이 이뤄지지 않았던 사례들, 이를테면 르완다에 관해 언급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같은 개입이 이뤄졌던 사례들에 대해선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시간대에서 보자면, 개입은 개입하지 않았다면 벌어졌을 학살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시간대에서 봤을 때도 과연 그럴까? 단기적인 견지에서 사담 후세인이 저지르는 학살을 막고자,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10년에 걸쳐 전쟁이 치러진 결과 학살당한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줄었을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인도주의적 개입을 지지하는 이들은 정량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부가 반정부 인사 열 명을 죽이면, 말로는 욕먹을 만한 일이라 해도 이는 “정상적인” 게 된다. 만약 1만 명을 죽이면, 이는 범죄가 되고 인도주의적 개입을 부른다. 정상적이던 게 범죄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 할까? 1백 명, 아니면 1천 명?

 

 

오늘날, 구미권의 국가권력들은 그 결과가 불확정적인 가운데 리비아 전쟁에 발을 담갔다. 십중팔구 그건 늪이 될 게다. 이같은 (인도주의적) 개입이 현재진행형인 아랍 반란으로부터 세계의 주의를 흩뜨리는 데 성공했을까?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 아직까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가다피를 축출하는 데 성공할까? 아마도 그렇겠지만, 아직은 알 수 없다. 가다피가 쫒겨나면, 무엇이 그의 뒤를 이을까? 심지어 미국을 대변하는 이들조차 그가 떠난 자리를 과거 그와 한통속이던 인사들이나 알카에다, 아니면 그 둘 모두가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중이다.

 

리비아를 상대로 미국이 군사적 행동에 나선 건 실수다. 미국의 국익이란 협애한 관점에서 봐도 그렇고, 인도주의적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그같은 군사적 행동은 단시일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취한 조치에 대해 아주 복잡하고도 미묘하게 설명을 했다. 그가 결국 한 말은, 자신의 신중한 판단에 비춰 보건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개입이란 사안을 미국과 세계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개입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번민했으리라는 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건 전혀 좋은 결정이 아녔다. 그 계획은 끔찍하고, 불길하며, 궁극적으로 자기파괴적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 모두가 가장 바라는 건, 지금으로선 아마 어려운 일이겠지만, 제2차 아랍 반란이 원기를 되살려 그 무엇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뒤흔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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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3 01:25 2011/04/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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