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맑스 할배가 (아마 이 할배 스스로도 선선히 인정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아니 될 모종의 미진함이랄까 모호함, 역사적 제약에 따른 공백과는 별개로)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데다 마실 때마다 맛이 깊고 풍부한 물건임을 전제로, 저는 토를 좀 달게요.

 

한국 같은 데서 (1980년대 중반 이후 '때늦게' 유통된 소련/동구권산 '국정 맑스주의' 도덕교과서 류가 마치 좌파 사상의 종결자인 양 오인 내지 부풀려졌던 만큼이나) 이런 저런 경로로 소개돼온 '최신' 좌파-맑스주의 사상들이 마치 맑스 할배를 넘어선 양, 심한 경우 이 할배를 청산할 수 있다는 양 취급되는 경향이 있긴 하죠. 정치철학 쪽이라곤 않지만, 가령 칼 폴라니의 작업 같은 경우가 그렇고요. 실제론 당대 맥락에 맞게 맑스가 했던 여러 중요한 질문/명제들을 살리고자 이뤄진 작업였는데도 이게 엄하게 맑스를 '디스'하는 데 쓰이거나, 또는 이렇게 오남용된 폴라니를 근거 삼아 다시 맑스가 얼마나 옳고 또 대단한지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들거나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런 식의 오남용이 눈에 거슬리고 허망해 보인다 해서 맑스 이후 좌파 사상 지형을 왜 굳이 '머리에 쥐 나감서' 알아야 하냔 쪽으로 결론짓는 건, 섣부른 맑스 넘어서기/청산 시도만큼이나 섣부르잖나 해요. 이런 결론은 달리 보면, 말로는 좌파네 역사적 유물론자입네 하지만 맑스(텍스트)를 전혀 역사유물론적이지 않게 경화시킬 때도 많아 보이고요. 아무리 맑스가 일당백였다 한들, 특히나 20세기 중후반기 정치경제를 맑스(나 레닌) 하나로 커버 가능하다는 주장을 접하면 솔직히 놀라워요 저는.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그럴 수 있단들 그게 바람직은 한 건지 모르겠어서요.

 

실제로 이들 좌파 정치철학은 대체로, 맑스 사상의 싹수들을 자르거나 시들게 만든 자유(민주)주의나 '경화된 맑스주의' 사조에 대항해 맑스 할배와의 결별은커녕 되려 이 할배의 문제설정을 1945~60년대 이후 국면/정세에 걸맞게 풍부화하고 사상적, 실천적 해방을 꾀하련 노력의 산물였죠.

 

이런 노력이 단지 그 노력만으로 하는 족족 칭찬받을 수야 없겠지만, 그렇기 때메라도 맑스가 다 했거나 하는 얘길 왜 일케 어렵게 하냐고 힐난해선 곤란하잖으까요? 더구나 맑스야 편협함과 도식성과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영혼였다지만, 그의 적통을 잇는다며 되려 경화된 맑스주의가 소위 과학의 이름으로 맑스의 절친 내지 친구들을 사상적, 정치적으로 족치거나 예방했던 역사적 경험들은 그럼 어쩔 거냐. 이걸 '진정으로 맑스를 알았다면 그럴 리 없는' 해프닝쯤으로만 치부해도 좋으냐.. 그럴 순 없어 보인단 말이져.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맑스 할배도 그리 쉽게 읽히고 이해하기 만만한 물건 아니자나요. 하지만 그 할배가 남긴 읽을거리들에 대해, 일테면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먹물 출신의 난해한 얘기니 멀리 해도 괜찮다거나 심지어 행동하는 데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진 않죠.

 

맑스 할배의 이야기 자체가 내적으로 풍부한 좌파적 실천과 지성에 정말 그렇게 영감을 주는 거면, 지금 필요한 게 그럼 그런 맑스를 누차, 새삼 확인하는 거냐. 별로 그렇잖은 거 같어요 제가 볼 땐. 훈고학 삘만 풍기기도 쉬워 보이고요. 그보다는, 그렇게 잠재력 충만한 맑스가 그간 왜 친구 같은 또다른 맑스들로 자유롭게 '분열증식'하지 못해왔는지, '속류화 사전예방' 때문였다곤 하지만 그 와중에 실제로 사전예방됐던 건 뭐였는지 새삼 되묻는 일 아니냔 거죠.

 

물론, 이런 분열증식 과정에서 쭉정이들이 왜 안 생기겠어요. 그건 그것대로 솎아내야겠죠(거꾸로, 맑스한테조차 본의였든 아니든 간에 이런 구석들이 없달 순 없겠고요). 다만 전 그런 정도 모험은 감수하고서라도, 심지어 저게 무슨 맑스냔 얘기까지 설사 나오더라도 분열증식을 부추기는 게 필요하잖겠냐.. 더군다나 이게 '맑스를 제대로 알아 가는 일', 철수동 표현대로면 맑스가 얼마나 자유로운 인간였는질 알아가는 일하고 따로 노는 걸 리도 없어 보이고요. 맑스를 제대로 아는 일과 맑스의 사상적, 실천적 분열증식 이 둘은 나란히 갈 수밖에 없고 맑스를 제대로 안다는 건 바로 그런 과정이겠달까..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되는 낯설음 내지 '난독'에 대해 곧잘 가해지는 비난이, 가령 맑스가 <자본>을 쓴 데 대해 그 당시 사회주의자들한테서 들었다는 욕하고 다르긴 다른지, 다르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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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31 13:39 2012/08/3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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