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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실>2005.2월 - 칭찬받아 마땅한 하루 정복! 중남미 참고서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 중남미의 재발견


서평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http://www.ynlabor.co.kr)
            <연대와실천> 2005년 2월호


칭찬받아 마땅한 하루 정복! 중남미 참고서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을 알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하더라도 내용이 너무 어렵다면 그 욕구는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 노동과 활동에 지쳐 있는데,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일요일 오후에 ‘어려운’ 책을 인상 쓰면서 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필요하면 죽도록 고생하면서 봐야 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로는 ‘재미’를 찾기 위해서이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든지, 흥미 있는 사실들을 섭렵하기 위해서라든지 등등은 모두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취하기는 일상 속에서는 쉽지 않다. 일단 외국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경우에는 생소한 문체 때문에 글 읽기가 쉽지 않다. 설사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번역을 했다손 치더라도 너무 전문적인 내용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판타지 소설이나, 통속적인 수필집들은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남는 게 없다. 누구 말처럼 ‘노동운동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따라서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재미있고 쉬운’ 책이 필요하다. 왜 그런 책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필수적이고도 전문적인 내용을 쉽고도,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다.

얼마 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다시 세계사회포럼이 열렸다. 전세계 운동권이란 운동권들은 모두 모였단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단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은 브라질 대통령 ‘룰라’가 아니라, 베네주엘라의 대통령 ‘차베스’였다.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한국에 남미 바람이 불었다.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는 남미 바람은 단지 이국적인 정서의 한때 유행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광풍에 대한 저항의 구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남미의 ‘좌파 바람’ 때문이었다. 90년대 후반의 유럽 좌파 바람이 힘없이 지나가고 나자 공허한 가슴을 남미의 좌파세력이 채워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여러 번 개최되면서 한국 사회단체나 노동조합 기관지 등에서도 사람들의 다양한 참관기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국제연대와 사회포럼에 대한 분석글들과 비판들이 발표되기도 한다. 어떤 젊은 활동가들에게는 이러한 전세계적 연대의 흐름이 열광적인 대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저씨 활동가들에게는 ‘생뚱맞은’ 철없는 아이들의 유행처럼 보이기도 하는 듯 하다. 어쨌든 간에, 이런 새로운 흐름은 속도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일관된 추세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일년에 엄청난 숫자의 유학생이 가고, 그것의 몇 십 배의 배낭여행족들이 떠나고,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행객들이 해외로 떠나는 이 시점에, 우리 노동운동은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일반 여행객들보다야 훨씬 지적이고, 수준 있게 놀아야 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쌍심지를 키고 배타적인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그게 뭐 대순가?’, ‘우리 이야기나 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그 나라가 우리의 대안이냐?’하면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엄마가 아빠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아빠가 될 수 있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너무 당연한 말을 자기만 아는 거대한 진리인 양 얘기하면 정말 할 말 없다. 창원만 알면, 울산만 알면, 서울만 알면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창원 사람이 보는 서울, 서울 사람이 보는 울산, 울산 사람이 보는 창원이 더 정확할 수가 있다. 그리고 세상은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 0.01%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99.99%가 함께 사는 곳 아닌가?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알고, 얘기를 나누고, 어깨를 나누고, 우리의 길을 좀 더 (특수한 길이 아니라) 보편적인 길로 만들기 위해서 서로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이러실 지도 모르겠다.‘배우려면 앞서가는 놈들을 배워야지. 뒤쳐진 걸 배워서 뭐하게?’ 하지만, 남미는 뒤쳐진 곳이 아니다. 20세기 최초의 혁명은 남미 멕시코에서 일어났으며, 21세기 벽두 변화의 가장 큰 진원지 역시 남미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 이념정당, 민주화투쟁, 노동자대투쟁, 노동자 정치세력화, 게릴라 투쟁, 무장봉기, 혁명, 선거를 통한 혁명, 게다가 미국 영토를 침범한 역사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외국어는 스페인어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배우는 언어도 스페인어이다. 미국의 안마당이라 일컬어지는 곳에서 변화를 일구고 있는 남미를 어떻게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친구를 사귈 때는 편견을 버리는 게 좋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활 속에서 터득한 진리 아닌가.

또다른 분은 이러실 지도 모르겠다. ‘기껏 다른 거 대충 공부했더니 이번엔 남미야?’ 맞다. 아직도 진도가 한참 남았는데, 다른 걸 공부하자면 열 받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참고서 하나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는 거의 눈으로 보는 무협지, 또는 중남미 발‘시사주간지’수준이다. 우리가 스페인 말을 아나, 포르투갈 말을 아나, 당연히 모른다. 그런데 이 책만 있으면 라틴 아메리카 전 나라를 한번씩 훑게 된다. 게다가 동료들한테도 잘난 척 할 수 있는, 이빨 세울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 거리들이 넘쳐 난다. ‘너 △△가 뭔지 알아? 그게 말이지. 이래저래 된거야. 알아 짜샤!’ 아주 손쉽게 3시간 만에 업그레이드 된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간단한 것이냐? 아니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중남미 전문가인 송기도 교수의 글들은 아주 꼼꼼하게 체크한 고급 정보들로 짜여져 있다. 오죽하면 작년 11월 APEC 정상회담 참석과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순방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꼽아 읽었겠는가? 쉽고 간결하고, 그러나 고질의 책을 고를 시간도 능력도 그에게는 없었을 것이고, 비서진 중 하나가 추천을 했겠지만 말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또다른 중남미 전문가가 남미를 둘러본 후 기행문을 책으로 엮어 출간을 했었다. 워낙 학문적으로 좋은 글들을 많이 쓰는 사람이고, 제목도 아주 그럴 듯해서 잔뜩 기대를 품고 읽어 봤는데, 영 책이 읽히지를 않았다. 학문적인 글에 비해, 기행문은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송기도 선생의 책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는 정말 괜찮은 책이다. 아버지(또는 어머니)와 초중고등학생, 아들, 딸이 함께 읽어도 손색이 없다.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하고 싶지만, 책 읽는 재미를 서평자가 빼앗는 것은 월권이 될 것 같아 그만 두도록 하자. 다만 간단한 목차와 저자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1부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본 중남미의 역사이다. 이 역사에는 쿠바 등 중남미와 미국, 식민지배와 독립, 분열과 중남미 통일단결을 위한 노력들 등이 포함된다. 세세한 사건들보다, 현재의 남미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내용들을 역사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친구를 이해하기 위한 호구조사라고나 할까?

인물 비평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송기도 선생답게 2부는 인물을 통해서 본 현재의 중남미 정치사회사에 대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 출신 대통령 룰라, 룰라와 함께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를 주도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키르츠네르.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 이후 최초로 정권을 잡은 사회당 출신 라고스 칠레 대통령, 반미와 남미 통합을 추진하는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등 좌파적인 정권들의 지도자. 또한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우파 정권’이긴 하나, 남미 역사의 큰 획을 그은 두 나라의 대통령, 즉 500년만에, 국가 건설 이후 최초로 탄생한 페루의 인디오 출신 똘레도 대통령과 1910-1917년 멕시코 혁명 이후 71년만에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멕시코 비센떼 폭스 대통령 등을 통해 현재 한반도의 지구 반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미의 ‘거대한 전환’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우리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중남미에 대한 이미지의 근원과 오류들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어떤 공부라는 것이 기능적으로 특정 부문과 관련 있는 내용만 쏙 뽑아 본다는 것은 자칫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남미를 보는 재미있는 망원경과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아직까지도 중남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씌워준 안경을 쓰고 코끼리를 쳐다보고 이해하던 수준에서 이제 코끼리의 다리라도 직접 만질 수 있는 수준이 됐으니, 한 단계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미국이라는 ‘창’을 통해 그들을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해방과 민주화를 위한 중남미인들의 험난한 투쟁을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하고 이해할 때, 그들도 우리를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첫 시작이다.

이 책은 세계사회포럼에 가는 사람들, 또는 세계사회포럼에 ‘가고 싶은’ 사람들, 아니 세계사회포럼에 ‘못가는’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임에 틀림없다. 독자들은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318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의 분량을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책값은 단돈 만원밖에 안 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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