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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일기쓰기 강제로 시키지마라

자녀 일기쓰기 강제로 시키지마라


“하연아 일기 다 썼어?” “이거 보고 나서 쓸게.”
주부 한희경(35)씨는 저녁마다 딸 하연(9)이가 일기를 썼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과다. 한씨는 하연이를 텔레비전 앞에서 끌어내느라 매일 1시간씩 씨름한다. 하연이는 책상에 앉은 후에도 다른 책을 뒤적거리다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등 일기 쓰는 데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연이가 일기를 네댓 줄만, 그것도 무성의하게 쓰는 것으로 모녀 간의 신경전은 끝나기 일쑤다. 한씨는 하연이가 언젠가는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도 계속 이런 상태가 될까 봐 걱정이다.

한씨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많이 하면 논리력이나 문장력이 좋아질 것 같아 일기를 쓰게 하고 있다”면서도 “아이가 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씨는 또 “어릴 때 쓰기 싫은 일기를 억지로 쓰던 기억이 생생한데 딸아이도 비슷할 것”이라면서 “지금 와서 일기 쓰는 습관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기 쓰기 싫어하는 어린이와 억지로라도 쓰게 해야 한다는 부모의 신경전은 아무런 소득이 없다. 남영이 한우리독서와사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기를 통해 무언가를 교육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의욕이 너무 앞서고 있다”며 일기 쓰기가 글쓰기 지도의 일환으로 변질된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기를 통해 맞춤법을 가르치거나 논리적 글쓰기 훈련을 시키는 것은 일기 교육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기 지도는 일기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하라고 조언한다.

우선 일기 쓰기에서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어린이의 생각을 막는, 일기 지도에서 흔히 저지르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또 글감(소재)을 고를 때는 커다란 사건보다는 작은 것으로 하라고 한다. 어린이들의 일상생활은 사실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늘 생활하면서 겪는 일상 중에서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보고 들은 것, 만난 사람, 읽은 책, 급식에서 싫은 반찬이 나온 일 등 사소한 일이라도 일기의 글감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어 일기는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쓰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어른들은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이들은 저녁식사 후 자기 전에 일기를 쓰면 피곤하고 졸려서 정성껏 쓰기 어렵기 때문에 저녁 먹기 전에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시간은 30분 정도로 정해 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일기를 숙제라고 여겨 무조건 빨리 끝내려고 해서 정성을 기울이지 않기 쉽다. 따라서 30분 정도 시간을 주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쓰도록 한다. 그러나 길게 쓰게 할 필요는 없다.

이 밖에 일기를 매일 써야 한다는 생각이나 반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남 선임연구원은 “일기는 자신의 삶의 기록이므로 기쁘거나 슬프거나 솔직하게 기록하되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일기는 하루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굳이 잘잘못을 반성하지 않더라도 다음과 같은 교육적 효과가 있다.

우선 일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진다. 이는 아이가 1년 정도 쓴 일기를 한꺼번에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이가 주변을 돌아보며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비록 어른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의 의미들을 기록한다.

또 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 일기의 글감을 찾기 위해 하루를 되새기며 의미를 찾는 과정, 찾은 글감으로 쓸거리를 미리 계획하여 구성하는 과정, 효과적인 전달(일기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먼 미래에 자신이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일기도 효과적인 전달이 필요하다)을 위해 논리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조직하려는 작업 과정을 통해 사고력을 발달시킨다.

이와 함께 일기는 아이의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계획적 삶을 이끌어 준다. 일기는 인생의 소중한 기록이고 이를 통해 자기 삶의 흔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삶에 대한 비전도 세우게 된다.
안두원 기자 flyhigh@segye.com


''글쓰기 교육'' 선입관 벗어나야


“재미있게 쓰도록 해야 합니다. 일기 자체에 목적을 둬야 할 뿐 길이나 내용 구성에 대해 그냥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재미만 붙여주면 나머지는 아이들이 커가며 잘 알아서 하니까요.”
대구 금포초등학교 윤태규 교감은 일기 교육 관련서를 내고 일기쓰기 교육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는 일기의 본질에서 벗어난 현재의 일기 교육이 일기를 쓰기 싫게 만드는 주원인이라고 비판한다.

“일기는 일기일 뿐입니다. 일기는 바르게 살기 위한 자기 역사의 기록이거든요. 일기를 대학 가기 위한 준비로 접근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효행일기를 쓰면 효자가 되고 환경일기를 쓰면 환경보호론자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면 일기에 대한 올바른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가. 일기를 쓰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기의 내용과 아이의 생활을 연결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윤 교감은 말한다.

그는 일기쓰기 교육 내용으로
▲일기의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지도하기보다는 내용에 관심을 보이고
▲일기 내용을 두고 나무라지 말 것
▲일기에 나온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고 일기와 상관없는 상황에서 나무랄 것
▲‘잘썼다’ ‘착하다’ 등 기준 없는 칭찬은 삼갈 것
▲걱정을 함께하는 이야기를 할 것
▲비밀일기에 대해서는 보더라도 안 본 척할 것 등을 제시했다.

일기는 습관이다. 윤 교감은 일기를 꾸준히 쓰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글쓰기 교육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한다.
“저학년에게 글자가 틀렸다고 야단치면 일기가 곧 부담이 됩니다. 글감도 아이가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그대로 일기로 옮겨 적게 하면 쉽게 일기를 쓸 수 있습니다.”
안두원 기자 flyhigh@segye.com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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