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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님

 

촘촘하게 스며드는 연애 극락 칼럼니스트 임경선 524호

촘촘하게
스며드는


연애 극락

칼럼니스트 임경선 

 

Q 착한 남자 만나고 있음요. 괜찮지만 심심해서 문제. 요즘 나쁜 남자가 자꾸 눈에 들어와서 확 사겨볼까 싶은데, 어째요?
A 만나. 괜찮아. 어릴 때 백신 맞아야 뒤탈이 안나. 나쁜 남자 젊어서 한번은 거쳐야 해.
 


Q 우린 만나면 밥 먹고 섹스만 해요. 이 남자 날 사랑하긴 하는 걸까요?
A 그럴 나이야. 너도 좋아서 하는 거잖아. 왜 자꾸 남이랑 비교해서 모범적인 답에 맞추려 그래? 걔랑 그걸 하는 게 더 좋으면 하면 되는 거야.

 

Q 연애, 밀고 당기기 잘해야 오래 사귄다는데 도저히 못하겠어요.
A 그거 안 해도 오래갈 애들은 오래가.

 

Q 여자친구만 보면 성욕이 제어가 안 됩니다. 결국 하고... 후회합니다.
A 피임이나 열심히 해.

 

Q 모태 솔로입니다. 노력하지만 안 생겨요.
A 이성을 특별한 존재로 보지 말고 친구에서 시작해. 인간적으로 친해진 후 천천히 시도해봐. 

 

 


접수된 대학생 질문에, ‘캣우먼’ 임경선은 역시 거침이 없다. 국내 최초 연애칼럼니스트로 현재 메트로‘임경선의 캣우먼’, 한겨레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을 연재하고 있는 그녀는 냉철한 분석과 명쾌한 글로 연애에 좌절하고 애태우는 청춘에 바이블이 됐다. 그녀는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으며 대책 없이 비해피 빅스마일을 주문하지도 않는다. 그 안에서 발화되는 것들은 언제나 미화되지 않는 현실이다. 점점 뚱뚱해지는 여자친구가 싫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살을 빼라고 말하든지, 헤어져라. 연애는 동정이 아니야”라 단호히 말하고 고졸 남자를 만나는 명문대 출신 여자에게 “날 속물이라 욕해도 좋아, 그거 분명히 문제돼”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이건 센세이셔널하다. 급기야 남자가 데이트에서 돈을 많이 내길 바라는 소위 ‘된장녀’에게 “그런 욕망은 스스로 혹은 네 부모에게 엉겨 붙어 해결하도록”이라 했던 통쾌하고 걸쭉한 표현이 인터넷에서 크게 지지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그래서, 툭 까놓(는 척하면서 욕먹을까 긴장하면서)고 물었다.
이 뜨거운 여름에 미지근한 우리는 어쩌나요?

 

 


이 뜨거운 날에 연애 좀 하여라

 

Q  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롭다. 도대체 연애는 왜 해야 하는 건가?
A  연애의 효용은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거지. 정말 즐거워. 괴로움이든 아쉬움이든 아득함이든 씁쓸함이든, 그런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야. 연애는 데이트처럼 단순히 어떤 취미를 함께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밀도 있게 맺는 거거든.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 딱딱 맞아서 상대에게 스며들면 그 자체로 희열이 되는 거야.

 

Q  하고 싶어도 못한단 대학생이 많다. 어흑. 
A  취업 때문에, 뭐 때문에 연애 못한단 말은 핑계야. 연애는 프로젝트가 아니야.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거지. 좋아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좀 터줘. 흐름을 좀 막지 마. 그리고 사람 없다 징징대지 말고 주변에서 좀 찾아봐!

 

Q  상담 하다 보면 보통 어떤 질문이 가장 많이 들어오나?
A  ‘연애 한 번도 못해봤어요. 어떻게 하면 사귈 수 있나요’ 이런 거. 블랙홀 같은 대답, 이젠 그만하고 싶어 진짜. 영원한 질문이야. 젊을 때 남자 여자 만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애들이 왜 이렇게 자발적인 본능이 없어? 감도가 떨어져! 그리고 이건 몇 번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왜 자꾸 실적주의로 가는 거야? 요즘 대학생 보면 인간관계 전반에 취약한 것 같아.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걸 싫어해서 피하려 하고 힘겨워해.   

 

Q  확실히 관계에서의 수동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하나.
A  이건 그냥 거치는 수밖에 없어. 두려운 상황들은 머리로 시뮬레이션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예전에 내가 공황장애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그걸 고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교로 확 가서 걷는 거래. 가서 두려움과 직접 마주쳐 보는 거지.

 

Q  상담해주는 사연의 조건은 뭔가?
A  긴 질문은 안 읽어. 그건 그냥 자기 한탄이야.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애들한테는 어떤 말도 의미 없어. 자기 생각을 한번 밖으로 걸러내 본 애들은 문장이 정리돼 있어. 그건 글 실력이 아니고 성의와 자기 검열의 문젠데, 그게 되어 있는 애들 걸 보는 거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해서만 대답하고. 대학생한텐 잘 안 해줘. 그땐 어차피 뭘 해도 상처가 금방 잘 아무니까. 

 

Q  질문에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을까?
A  남자는 시작 전과 끝난 직후에 질문해. 어떻게 사귈지, 어떻게 다시 만날지 같은 거. 그 과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그런데 여자는 연애 내내 그 중간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 디테일하게 질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Q  가장 짜증 나는 질문은 뭔가?
A  남자를 긁는 여자들. 걔네는 항상 불만이야.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자꾸 남자를 거기에 맞추려 그래. “날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러는 거지. 그건 횡포야. 그럴 거면 사귀지 마. 기본적으로 사람은 변화되기 힘든 존재야. 더 웃긴 건 그렇게 남자한테 요구하는 것들이 스스로 만든 기준도 아니야. 남들 시선 의식해서 그러는 거야. 아까 밥 먹고 섹스만 해서 불만이란 고민도 그래. 자기도 좋긴 한데 괜히 남들 보니까 커피숍 가고 미술관 가고 그래야 할 것 같은 거야. 고상한 척 하지말라 그래. 왜 건전하고 바람직한 상을 그려서 맞춰 들어가려고 해?

 

Q  남과 비교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 동의한다. 그런데 남과 다르다 싶으면 불안하니까.
A  그게 왜 불안해? 난 이해가 안 가. 왜 그렇게 평균치를 만들려고 그래? 우리가 남의 관계를, 상황을, 뭘 얼마나 알 수 있겠어. 그런데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어. 너무 유치해.

 

 

여자의
퀄리티를
위하여

 

Q  칼럼 연재와 라디오 진행하면서 ‘연애 상담가’로 유명해졌다.
A  어우, 난 연애 상담가라는 타이틀 싫어. 나는 기본적으로 남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연애라는 소재는 트렌디하고 연속성이 있어서 관심 있는 주제고, 상담이라는 형식은 소재가 안 떨어지고 내 문체와 잘 맞아서 많이 쓸 뿐이야. 

 

Q  연애 상담은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일인 것 같다. 남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 아닌가.
A  전혀 안 부담스러워. 나는 매체를 통해서, 상담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내 관점을 말할 뿐이야. 1:1의 관계로는 절대 안 해. 메일로 개인적인 상담 많이 오는데, 그런 건 절대 답장 안 해.

 

Q  당신은 매체에 나오는 다른 카운슬러는 해주지 않는 말을 한다. “여자는 귀여워야 해” “밀고 당기기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하더라” “살부터 빼” 이런 말들. 정말 솔직하다.
A  나한테 도발, 도도, 당당, 솔직 이러는데 그런 평가 너무 싫어. 그건 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거야. 솔직한 게 어떻게 사람을 설명하는 형용사가 될 수 있어? 너무 당연한 게 캐릭터가 된다는 게 웃겨.

 

Q  남성팬이 많다는 것이 재밌다. 돈 안 쓸 것 같은 소개팅 남 때문에 고민하는 여대생에게 ‘연인은 의식(衣食)해결용 아냐’라는 조언했던 글 같은 경우,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A  나는 기본적으로 공평한 걸 좋아해. 여자들이 여자임을 이용해서 어리광부리고 그러는 거 너무 재수 없어.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못 벗어나는 여자도 많아. 나는 여자라는 성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이 여자들이 더 강해지고 퀄리티가 높아졌으면 좋겠어. 내 글 쓰는 모티브는 지금 여기 매력적인 여자들이 많아지는데 일조하는 거야.

 

Q  당신이 말하는 매력적인 여자의 정의를 내려달라.
A  항상 내 키워드는 자발성이야. 내 생각이 얼마나 오리지널한 것인가가 중요해. 그게 이미 스스로 채워져 있고 실행할 용기도 있는 여자. 남의 상황을 부러워하거나 비교하지 않고 하루하루 더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을 통제할 뿐 남을 통제하려 하는 않는 여자. 멋있지.

 

 

 

요리사는 집에서 라면 먹고, 개그맨은 집에서 과묵하다는데, 연애칼럼니스트의 연애는? 오오, 일치된다. 스스로 표현에 따르면 ‘연애 체질’이다. 첫 연애는 열다섯. 중간 휴지기 없이 대학 때는 여자 친구들 눈치 보일 정도로 계속 캠퍼스 커플이었고 직장 다니면서는 꾸준히 사내커플이었다. 외국 남자와 결혼할 것 같다던 친구들의 예상과 달리, 만난 지 3개월 만에 청혼을 해온 한국 토종 남자와 9년 전 결혼해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다. “아쉬워요. 그럼 앞으로의 연애는 어찌 되는 건가요?”


“남편은 바다같은 사람이야. 좋은 남자 보더라도 어른들의 성숙한 관계로, 건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놀만큼 놀았고 연애 할 만큼 했어. (웃음)”


연애는 끝나도 연애 관련 글은 진행형이라서 올해 안에 30대 여자들의 독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 출간될 예정이다. ‘연애’라는 키워드로 유명해지긴 했으나 방점은 ‘칼럼니스트’에 찍힌다. 그녀는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글을 써낼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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