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0/07

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7/31
    이럻게 살쥐 않을래(2)
    씨앗(산길)
  2. 2010/07/31
    참회
    씨앗(산길)
  3. 2010/07/29
    버려야 할 것
    씨앗(산길)
  4. 2010/07/26
    그녀들이 돌아왔다
    씨앗(산길)
  5. 2010/07/21
    링 주위 맴돌지 말고 일단 링 위에 올라가시오
    씨앗(산길)
  6. 2010/07/12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씨앗(산길)
  7. 2010/07/12
    생각을 없애자
    씨앗(산길)
  8. 2010/07/01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1)
    씨앗(산길)

이럻게 살쥐 않을래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연애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따로 데이트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당장 결혼한다고 설치지 않을 거고 결혼할 마음도 없으니

좋은 마음으로 만나고 있구나

그냥 그렇게만 이해해주세요 

 

넌지시 언질을 했었고

결정적 증거로 걸렸다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게 잘못한 일도 아니다

아니 허락안해줘도 좋으니 나의 일을 그것 때문에 조금 빨리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난 그냥 거짓말로 모면했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게 살쥐 않을래

 

또 다시 편지를 써야 할까

과연 그 편지가 먹힐 것인가?

불순하다

먹히든 먹히지 않든

이젠 정면돌파 인생을 살아야지

 

언제까지 눈치볼래?

 

나를 지지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태클을 걸지 않으시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 더 고마울 거다

그 뿐이다

나는 내 인생을 담보로 거래하지 않을 거다 이제 더 이상...

 

하아...

당장 모든 걸 놓아도...상관없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이렇게 사랑하지 않으면 - 뭐,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

그런데 하나 걸린다

전력이 한 번 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말에응했다

무서워서였고 나도 도망치고 싶었던 거다. 어리석었다

 

-------------------

지금 당장 이렇게 솔직해지고 싶은데

그게 너에 대한 예의이고 내 마음인데

그렇게 하면 당장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할 수도 있어

그건 원치 않아 물론 집으로 가진 않아

-------------------

연말이 지나 솔직해지면 적어도 일에선 자유로울 수 있으니 온전히 너, 나, 부모에 집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그런 여러 이유로 내 시한은 연말이 되려고 하네.

시간이빨리 가길 바라니 당연히 일이 즐겁지 않겠지.

게다가 나는 농사일을 더 하고 싶고 말이지

자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고 수를 두게 돼.

난 정말 방어적이다..

 

---------

게다가 함께 일하는, 즐겁게 일하는 방법도 몰라

일로도 못풀어

관계도 서툴어

 

총체적 난관 속에서 비루한 내가 더 잘 보여. 전화위복으로 잘 만들어볼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참회

하지만 알고보니, 나는 스스로 지쳐서 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깊이 하지 않았더라. 근데 그건 내가 만들어낸 거더라. 평화의 조건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주변을 탓하고 나를 탓했어. 혼자 고생했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소외시켰어. 나만 부지런하다고 합리화하고, 대화하지도 않으려 했고 믿지도 않고...그걸 알고 나니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안 좋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런 이야기 잘 풀지 못하고, 힘들게 했어. 네 말처럼 인간의 말로 풀고 싶은데 말로는 표현이 안 되더라.

 

나는 내가 갈 길을 잘 몰라, 항상 그래왔는데
세상은 나 혼자 헤쳐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참 바보였다. 도움청할 줄도 도와줄 줄도 몰랐던 거다

나를 보면서 너도 함께 보았어야 하는데 나에 갇혔다
내가 갈 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 잠깐 든다
어제 도법 스님 책을 읽고, 주변사람들이랑 이야기끝에 든 생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버려야 할 것

상대가 나한테 실망하는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

그것에 괴로워하고 원망하지 말 것

나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야

물론 개선하는 노력은 내 마음으로 그 문제를 인식하면 자동으로 하게 되어있어

알면서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

 

아니면 내가 그냥 어디론가 가 버리면 되는 것

그것으로 인해 내가 괴로움을 만들어 상대를 괴롭게 한다면

내가 가 버리는 게 답이겠지

 

나는

너 고생하고 있어 너 노력하고 있어

라는 말을 그렇게 갈구하는 것인가?

인정받자고 사는 것도 아니고, 갈구하는 것도 아닌데...

 

너는 잘 하고 있어

오히려 이상해 그런 말 들으면

거짓말하는 것 같아

믿을 수 없어

 

가끔 남한테 욕먹어도 그 탓을 나로 돌리면 괜찮다고 생각하자

어설프게 화해하려는 마음은 갖지 말고

그냥 지켜보자

내 마음을 돌아보았으니

 

미안하다는 말에 그런 말 들으려고 한 것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길어지면 또 실수하고, 관념적인 말이 나오게 될거니까

 

말, 잘 하기도 어렵고

말하지 않음 - 답답함을 초래하고...

난 너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말로는 내 마음 편하자고 널 탓했구나

요구한것만큼이나 옳지 못한 행동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녀들이 돌아왔다

인도간 신비얌은 머리를 확 자르고 나타났다

그녀는 지금 나의 일터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파키스탄 갔다온 단미도

돌아왔다

 

그녀들!

내가 남자라면, 가만두지 않을 매력적인 그녀들...

 

(매력적인 그녀들은 많은데 매력적인 그놈들이 없어. 흠.. ㅠ.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링 주위 맴돌지 말고 일단 링 위에 올라가시오

링 주위 맴돌지 말고 일단 링 위에 올라가시오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한겨레  
 
 
» 링 주위 맴돌지 말고 일단 링 위에 올라가시오
 
Q 아직도 부모님께 생활비를 의지하는 프리랜서의 삶, 그만두고 직장을 잡아야 할까요?

저는 25살. 허울만 좋은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사실 프리랜서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제가 했던 일들은 매우 적습니다. 부모님 도움 없이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요. 사실 3년 전만 해도 제가 그림을 직업으로 삼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기에 디자인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겠거니 했죠.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일러스트공모전에서 조금은 과분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의 그림은 좋아.” 항상 고만고만하게 보일 듯 말 듯 살아왔던 저의 삶에서 처음 받게 된 칭찬이었어요. 저는 “그림을 잘해야지. 더 인정받고 싶어”라는 생각에, 전공을 접어두고, 일러스트에 집중했죠. 그러면서 아는 선배나 교수님을 통해 작은 일러스트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계속 그림을 일로 삼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에도 저의 삶은 대학생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부모님께 생활비를 의지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예전에 제 그림을 좋다고 했던 사람들의 칭찬도 이젠 빈말 혹은 위로같이 들리며 제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집니다. 취업하는 동기들을 보면 나도 그림은 접고 직장을 구할까 싶고요. 저는 계속 이렇게 보이지 않는 꿈을 좇아도 되는 걸까요? 계속 꿈을 향해 꼼지락거리다 보면, 원하는 것을 잡을 수 있을까요?

 

A 길을 가다가 벽 앞에서 딱 막혀버린 그 기분. 자신이 갈망했던 스스로의 이미지와 현재의 모습이 갭이 클수록 좌절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꿈을 이루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공모전 수상 하나로 잘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위치까지 스트레이트로 길이 이어지는 운 좋은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고로 ‘내가 가졌던 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감이 아니었을까’ 혹은 ‘이 정도 상황을 봤으면 답은 나왔다.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라며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은 해보지만 포기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고민하는 거잖아요.

‘벽’의 대부분은 인간의 불안과 고민이 제멋대로 크게 쌓아 올린 것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두렵고 고민하는 만큼 그 상상 속의 벽은 커져만 가지요. 그 벽이 허물어지려면 내가 생각과 고민을 멈추고 요리조리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꿈틀꿈틀 움직여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의 길이 막혔다고 해서 좌절하기엔 매우 아까운 상황인 것 같아요. 왜냐, 아직 당신은 지금 제대로 링 위에 올라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것이니까. 엄밀히 말해 교수님이나 선배가 준 일은 일이 아닙니다. 연고가 없는 사람이 줄 때부터 프리랜서의 일은 시작되는 거지요. 남들이 해주는 그림칭찬이 빈말인지 위로인지 가늠해본들 마찬가지로 별 의미 없어요. 프리랜서의 세계에선 ‘팔리는’ 그림만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과거의 영광과 굴욕은 이제 겨우 밑그림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상상했던 이미지와의 갭에 매이지 않고 새롭게 행동을 일으키면 움직인 만큼 그 벽의 ‘틈’이 보이기 시작하겠지요.

한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쪽팔리는’ 일입니다. 양반이나 선비가 아닌 장사꾼이나 머슴마냥 이리저리 분주히 벽 주변을 훑어보면서 어디 허물 데가 없을까 왔다 갔다 해야 하니 폼이 날 수가 없지요. 내 꼴이 우스울 수도, 무시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폼이나 쪽팔림 역시도 기웃거리는 아웃사이더의 위치에선 아무 의미 없는 자의식일 뿐입니다. 프리랜서의 세계에선 일단 지금 일을 가진 현역의 ‘인사이더’가 압도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서 있으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이미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하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적어도 기존의 그들보다 30%는 더 확연한 가치를 주지 못하면 기존 포지션은 꿈쩍도 안 할 겁니다. 후발주자가 일을 쟁취해내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에요. 진열장 너머로 침 흘리며 투덜댈 여유조차 없습니다. 지난 월드컵 경기 때 단 한번도 출전 못한 축구선수들을 보세요. 똑같이 훈련하고 똑같이 따라다녀도 1군 선수들 중에 누가 다치기라도 안 하면 기회조차 없지요. 하지만 거기서 낙담할 순 없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나 여기 있소’라며 치고 들어갈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기회를 잡으니까. 당신은 틈나는 대로 대체 불가능한 실력을 키우고, 나를 어필하고, 롤모델을 만들고, 잠재적 클라이언트의 가려운 부분을 알아내고, 당장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정말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나가며 조금이라도 ‘인사이더’가 돼야만 합니다.


 
»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어쩌면 프리랜서 일의 본질이라 하는 것은 ‘내게 적합한 것이 뭘까’ ‘난 정말 뭘 하고 싶은 걸까’라며 적성이나 재능을 묻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를 떠나 내가 부탁을 받았으니 어쨌든 최선을 다한다,가 스타트라인이 아닐까요? 잡일이든 험한 일이든 어떻게든 내가 일할 수 있는 장소를 많이 만들어서 부탁받은 일은 기분 좋게 성실히 하는 것, 그러다가 ‘아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잘할 수 있구나’를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 더 나아가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의 개념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확장되는 즐거움을 얻기도 하지요. 그렇게 사람들의 일 의뢰가 점점 늘게 되면 그때 가서 그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나가는 것,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의 프리랜서가 가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자퇴보단 그 문제의식 오래 품길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학교의 부조리에 입 다물고 공부만 해야 하는 현실 답답해요
 
 
한겨레  
 
 
» 학교의 부조리에 입 다물고 공부만 해야 하는 현실 답답해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Q 저는 고3입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싫어서, 등급이 안 올라서, 수능이 점점 다가옴에 대한 답답함보다 눈에 들어오는 현실에 입 닥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답답합니다. 얼마 전, 한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개그랍시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다른 선생님은 이른바 지잡대(지방 잡대학이라는 뜻)에 다니는 학생들을 개그 소재로 씁니다. 그러고는 교원평가 시즌이 되니 나쁜 말 쓰지 말라고들 합니다. 제가 이 답답함 속에서 하는 일은 신문을 보면서 혼자 울화통 터트리고, 교원평가에 소심하게나마 말을 써내고, 학교 측 비리에 반대하는 단체 홈피에 가서 교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따금 알리는 것뿐입니다.

학교에선 성적도 괜찮고, 선생님들하고도 친하고 그냥 평범한 애여서 그런지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다들 놀랍니다. 그렇지만 다들 “뭐 어쩌겠냐”는 말뿐입니다. 열아홉밖에 안 된 애들이 이 모든 것에 체념하고 있어야 되는, 또 이런 현실에 순응하고 앉아 있는 저 자신도 짜증납니다.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생각해오던 자퇴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도 무척 큽니다. 누군가는 고3이어서 세상에 불만이 많을 때라 하더군요. 잘못된 것에 대해 불만인 게 문제인가요? 일단 입 닥치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전 정말 답답하고 모르겠습니다.

 

A 근 삼십년 전의 일입니다. 외국에서 살다 귀국한 저는 당시로는 ‘국민학교’ 3학년에 전학해왔죠. 담임은 무슨 이유에선지 반장 남자아이를 내 짝꿍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다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어요. 반장은 교묘한 방법으로 한국말이 서툴던 나를 ‘이지메’하기 시작했고 권력이 두려운 다른 아이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지요. 담임은 알았지만 못 본 척을 했습니다. 하루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수업 중 책상을 뒤집어엎고(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극적인 항거)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이건 좀 아니었지만). 담임은 그제야 짝꿍을 바꿔주는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담임은 반장을 따로 혼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나를 따로 불러 넌지시 부탁했지요. 내가 그 반장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그 반장의 엄마 역시 뻔질나게 학교를 드나들었지만 그녀는 나의 존재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남자아이보다 그 선생과 엄마가 더 미웠습니다. 아니, 지금도 밉습니다.

뜬금없이 옛날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뭘까요?

1. 불가항력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어느 시절, 어느 조직에나 있다.

2. 그 상처를 준 가해자를 묵인하며 보호해주는 시스템도 있다.

3. 항거해도 효과는 내 행동만큼 극적인 효과를 못 가져온다.

 





4. 그러니 걍 못 본 척하고 실속 있게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음, 마지막 4번은 아니고요. 잘못된 일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건 건강한 거죠. 다만 부조리한 상황에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이겠죠.

제 경우엔 내 코 석자가 달린 문제였으니 꽥 하며 극적인 쇼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허나 당신은 공부도 선생님과 교우관계도 문제가 없는 평범한 학생. 그런 학생이 신문 읽으며 혼자 울화통 터트리고 홈피 들어가 고발하고 교원평가 솔직히 써내고 친구들과 문제의식 공유하며 ‘나름의’ 항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그 이상 할 수 있는 게 실질적으로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자퇴를 안 한 건, 자퇴까지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서 안 했던 것뿐이고요. 그러면서 솔직하지 못하게 ‘자퇴’가 최선의 정의증명이라 믿으며 그것을 못해낸 자신의 나약함을 탓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건 부당한 세금부과.

무엇보다 체제순응에 대한 죄책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고교 자퇴면 참 곤란하지요. 어느 경우에도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이 스스로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것을 이데올로기 삼아선 안 됩니다. 왜? 일단은 고교생 하나 열받고 자퇴할 때마다 선생 하나 안 잘리니까. 그리고 내 공부와 불의를 못 참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대학 거부? 어른들이 제시한 ‘이래서 공부하고 대학 가야 한다’는 이유를 묵묵히 따르거나 반발하는 대신 열아홉, 어리지 않은 나이면 나 자신의 이유가 있어야 하겠지요. 없다고요? 그럼 대학 가서 더 공부하고 생각해보길.

또한 극단적 선택은 열정을 쉽게 소진시킵니다. 시스템의 부조리를 향한 개인적 레벨의 항거는 비효율적이기 십상입니다. 그 비효율의 결핍을 만회하기 위해 ‘나 스스로에게 정직했다’는 합리화로 자위하는데, 한 번의 고양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난 뒤의 뒷감당적 소모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외롭습니다. 게다가 에너지 한번 고갈되면 그다음엔 포기하고 잊고 타협하는 것에 스스로 얼마나 관대해지는지요. 인간은 심리적 밸런스를 찾으려는 동물이니깐요. 그런데 그러기엔 그간 품었던 그 문제의식들이 아깝지 않나요?

 
»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양보할 수 없는 문제의식이 있다면 그것을 소중히 오래도록 품고 어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데 적절한 타이밍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생각을 토대로 최적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선 최적의 타이밍이 있고 거기에는 기다림이라는 더더욱 답답해 뵈는 숙제가 있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너무 실리주의적이라고요? 예, 전 너무 실리적이라 초딩 때 그 트라우마로 빈정상해 급기야는 한국말로 먹고사는 직업을 끝끝내 성취했답니다. 열아홉에 느꼈던 감촉에 비해 인생은 생각보다 길더라고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생각을 없애자

일터를 그만두어야 겠다고 생각되는 날, 아니 그만둘 수 밖에 없게 될 때가 오게 될 날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그러고 싶지만 그것은 도전이 아니라 도망일 것이기에

그러지 않기로 하다

이 고통은 배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예 하고 합니다"라는 명심문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 라는 말이

마음에 꽂힌다.

 

100일 출가를 하든하지 않든

내 마음과 물질, 이러한 것들을 내려 놓고

 

농사를 짓고 싶다

가족들이 반대해도

그 길을 향해 나아가거나

혹은 이해할 때까지 그냥 살며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지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흙과 함께 작물을 가꿀 수 있다면

 

업을 소멸시키고 빚을 갚아가는 나의 삶을 살고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한겨레  
 
 
»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Q 왜 연애 유통기한은 3년일까요? 아무리 사랑에 빠져 죽을 것같이 좋다가도 3년이 되면 사랑이 식는 걸까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왜 3년이 되면 고비를 맞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3년이라는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A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하는 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로다

내가 미치거나 총 맞지 않고서야, 왜 이런 코너를 맡겠다고 홀라당 넘어갔는지 지금도 거 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주변에 총 갖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분명 전자가 확실할 텐데, 그런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남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지…. 새삼 온 정신으로 돌아와 걱정만 하고 있는데, 세 살짜리 아들놈이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총을 쏘고 도망갔다. 아아, 그래서 걱정은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건 그냥 총 맞은 거였구나, 총 맞은 거였어! 그렇게 두 팔 벌려 환호작약한 다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총 맞고 난 뒤, 쓰는 원고라는 점, 유념해주길 바란다. 거 뭐, 무서운 건 하나도 없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하나. 연애의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요, 묻는 당신은, 안타깝지만 이 땅의 중등교육의 또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3년이 지나면 왠지 졸업해야 할 거 같고, 그다음엔 다른 애인으로 진학해야 할 거 같고, 학용품도 새로 장만해야 할 거 같고, 뭐 그렇고 그런 모범생들 있지 않은가. 알게 모르게 주위엔 그런 모범생이 제법 많다. 50분 전화하고 10분 침묵하고, 50분 이야기하고 10분 섹스하고, 50분 술 마시고 10분 꺼이꺼이 울고. 연애를 학교 시스템에 맞춰, 똑같이 운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다. 3년에 맞춰 교과서를 다 떼고 나니, 이런, 이제 더 이상 배울 것도, 궁금한 것도 없구나, 그러면 남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애인을 ‘수학의 정석’화시킨 전형적인 사례. 그런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일화 하나. 예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네에 노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이 형님은 학교를 무슨 유엔안보리 이사회 참석하듯 띄엄띄엄 다니셨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1년 더 ‘꿇게’ 되신, 학교 시스템의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한데, 이 형님의 마지막 학교생활 1년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아주 열심이었다. 체육대회에도 열심, 보충수업이나 ‘야자’에도 열심(안타깝게도 성적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반 미팅에도 열심. 해서, 어느 토요일 하굣길이던가, 내가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 요새 왜 이렇게 학교생활에 열심이세요? 그러자, 동네 노는 형님은, 위로는 천문이요, 아래로는 지리를 꿰뚫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정들어서.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이 형님이 정말 병원에 입원해야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젠 어렴풋이나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정든다는 것의 참말로 큰 의미 말이다.

둘째. 동네 노는 형님이 해준 말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빠져 죽을 거같이 좋은 시기가 3년 이상 지속되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단 정말 죽고 만다. 심장마비고혈압 같은 것이 올 확률이 높다. 내 경운 분명 그랬다.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좀 식을 필요가 있다.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좀 있겠지만, 우리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 전부일 것이다. 그다음은 그저 리얼리즘의 시대일 뿐이다.(내가 알고 있는 한 선생님은, 이 리얼리즘의 시대가 수십년 이어지고 나면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방귀도 트고, 트림도 트고, 쩝쩝 음식 먹는 소리도 갑자기 요란해지는 리얼리즘의 시대 말이다.(그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살아보겠다고, 이러단 만성 속쓰림에 암까지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 때문에 튀어나온 본능들일 것이다.) 그 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는 쫑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꼭 ‘좋아 죽을 것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 그걸 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랑에는 당연히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그걸 빤히 알면서도 가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무슨 이마트나 홈플러스냐, 새삼 유통기한 따위에 놀라게.


 
» 이기호의 독고다이
 
정리 차원에서 한마디만 더 하자. 그 옛날 프랑스에서 7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가장 처음 공격한 곳은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당시 시민들은 시간에 대해, 그러니까 근대에 들어서부터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시간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우리가 3년이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서 말할 때,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사랑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예전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적마다 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 양반하고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지, 뭐. 따져 보니 그 세월이 40년이었다. 너무 날짜 따지고, 그러면서 다시 날짜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는 말자. 때론 한 달 만난 사랑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우리 사랑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와는 다른 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