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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한겨레  
 
 
»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Q 왜 연애 유통기한은 3년일까요? 아무리 사랑에 빠져 죽을 것같이 좋다가도 3년이 되면 사랑이 식는 걸까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왜 3년이 되면 고비를 맞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3년이라는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A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하는 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로다

내가 미치거나 총 맞지 않고서야, 왜 이런 코너를 맡겠다고 홀라당 넘어갔는지 지금도 거 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주변에 총 갖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분명 전자가 확실할 텐데, 그런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남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지…. 새삼 온 정신으로 돌아와 걱정만 하고 있는데, 세 살짜리 아들놈이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총을 쏘고 도망갔다. 아아, 그래서 걱정은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건 그냥 총 맞은 거였구나, 총 맞은 거였어! 그렇게 두 팔 벌려 환호작약한 다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총 맞고 난 뒤, 쓰는 원고라는 점, 유념해주길 바란다. 거 뭐, 무서운 건 하나도 없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하나. 연애의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요, 묻는 당신은, 안타깝지만 이 땅의 중등교육의 또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3년이 지나면 왠지 졸업해야 할 거 같고, 그다음엔 다른 애인으로 진학해야 할 거 같고, 학용품도 새로 장만해야 할 거 같고, 뭐 그렇고 그런 모범생들 있지 않은가. 알게 모르게 주위엔 그런 모범생이 제법 많다. 50분 전화하고 10분 침묵하고, 50분 이야기하고 10분 섹스하고, 50분 술 마시고 10분 꺼이꺼이 울고. 연애를 학교 시스템에 맞춰, 똑같이 운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다. 3년에 맞춰 교과서를 다 떼고 나니, 이런, 이제 더 이상 배울 것도, 궁금한 것도 없구나, 그러면 남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애인을 ‘수학의 정석’화시킨 전형적인 사례. 그런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일화 하나. 예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네에 노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이 형님은 학교를 무슨 유엔안보리 이사회 참석하듯 띄엄띄엄 다니셨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1년 더 ‘꿇게’ 되신, 학교 시스템의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한데, 이 형님의 마지막 학교생활 1년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아주 열심이었다. 체육대회에도 열심, 보충수업이나 ‘야자’에도 열심(안타깝게도 성적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반 미팅에도 열심. 해서, 어느 토요일 하굣길이던가, 내가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 요새 왜 이렇게 학교생활에 열심이세요? 그러자, 동네 노는 형님은, 위로는 천문이요, 아래로는 지리를 꿰뚫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정들어서.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이 형님이 정말 병원에 입원해야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젠 어렴풋이나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정든다는 것의 참말로 큰 의미 말이다.

둘째. 동네 노는 형님이 해준 말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빠져 죽을 거같이 좋은 시기가 3년 이상 지속되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단 정말 죽고 만다. 심장마비고혈압 같은 것이 올 확률이 높다. 내 경운 분명 그랬다.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좀 식을 필요가 있다.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좀 있겠지만, 우리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 전부일 것이다. 그다음은 그저 리얼리즘의 시대일 뿐이다.(내가 알고 있는 한 선생님은, 이 리얼리즘의 시대가 수십년 이어지고 나면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방귀도 트고, 트림도 트고, 쩝쩝 음식 먹는 소리도 갑자기 요란해지는 리얼리즘의 시대 말이다.(그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살아보겠다고, 이러단 만성 속쓰림에 암까지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 때문에 튀어나온 본능들일 것이다.) 그 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는 쫑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꼭 ‘좋아 죽을 것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 그걸 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랑에는 당연히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그걸 빤히 알면서도 가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무슨 이마트나 홈플러스냐, 새삼 유통기한 따위에 놀라게.


 
» 이기호의 독고다이
 
정리 차원에서 한마디만 더 하자. 그 옛날 프랑스에서 7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가장 처음 공격한 곳은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당시 시민들은 시간에 대해, 그러니까 근대에 들어서부터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시간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우리가 3년이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서 말할 때,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사랑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예전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적마다 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 양반하고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지, 뭐. 따져 보니 그 세월이 40년이었다. 너무 날짜 따지고, 그러면서 다시 날짜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는 말자. 때론 한 달 만난 사랑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우리 사랑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와는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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