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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사무실엔 나 혼자
동료가 휴가에서 돌아오면 이젠 일 분배를 효율적으로 해야겠다
전화만 오면 마음이 편치 않다
역할을 주고 부탁하는 전화
이것도 크나큰 역할이고 보시이고 배움임을 알지만...쩝.
물리적으로 힘들다고 내 본래 업무하기에도 ㅠ.ㅠ.
일을 하다 컴퓨터 앞에 있기 힘들어서
배양토에 당근과 무 씨앗을 심고 배양토로 화분을 두 개 만들어뒀다 허브를 한 개 심을 거다
요녀석들 얼마나 클런지^^
좋아하는 친구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친구는 잠시 어디론가 떠나 있어서 어머니의 안부를 며칠간만 대신 물어봐달라 부탁하였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좀 뻘쭘하다
나도 어머니 목소리 듣고 싶은데 왠지 쑥스럽다
어제 처음 전화드렸는데 둘다 쑥스럼타는 성격인듯 하핫 (-.-;;)
일이란 것이
농사일은 그래도 손을 대면 댄 흔적이 남아 뿌듯한데
사무일은 아니야...ㅠ.ㅠ
무형의 것이야... 유형이 아니라...
하지만, 등불님들을 위한 살림의 일, 나를 내어놓는 일이란 의미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래도록 옆에 있을 수 있는 좋은 이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그 순간은 아름다운 것 같아. 어떤 관계든.
그대도 이야기했다 오래도록 갈 수 있는 관계를
물론 내가 가는 속도,방향과 같은 길을 간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대는 순간을 믿는다고 했다 순간은 적어도 항상 진심이었다고
마음의 대화와
몸의 대화의
그 따뜻함과 충만함에 가까운 느낌
몰랐어요..
꽤나 고마운 거!
뭔가 한 껍질씩 깨어지고 , 아프도록 나를 바라보고, 다시 또 충만함을 느끼고, 다시 또 서운해하고...
뭔가 하나씩 다가가고 따뜻해서 어쩔 때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순간들.
오래도록 가려면 나를 찬찬히 살피고, 너도 살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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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주고 보듬어 안아 준 따뜻한 사람
본질적으로 최대한으로 솔직한 사람
그동안 지내오면서 이런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한 나는 참 내공없는 사람..
(포엠콘서트) 활동가 김선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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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주부들과의 모임 소소한 기쁨의 인터뷰를 먼저 경험한 광주전남 녹색연합의 홍상미 간사가 카페에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김 : 좋은 시인들, 깊이 있는 시인들을 숨겨져 있는 보물찾기처럼 시인들 찾아내는게 아니라 선정위원회를 통해 시인들을 찾다 보니까 명망있는 사람들, 이름난 시인들, 유명한 사람들이 선정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초기에 포엠콘서트를 만들던 사람들과 포엠콘서트를 아끼던 팬들의 마음과 정신에 맞지 않는거야. 때로는 유명한 시인이 주인공으로 참여하면 포엠콘서트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붙기도 하고... 포엠의 특징은 항상 짜여있는 사람으로만 작업을 하는게 아니라 늘 열려있었고, 누구든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은 사람이면 음악, 미술, 춤, 연극 등 자신이 역할을 가지고 다양하게 참여했어요.. 좋아하면 자기가 작품을 골라서 이건 이렇게 하겠다 해서 준비해서 공연에 올라오고 유기적인 관계로 포엠콘서트를 만들어 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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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눅눅한 느낌 이제 놔주세요 | |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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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사랑도 못 받고 결혼도 실패하고 외롭고 자책감만 듭니다
Q 저를 괴롭히는 문제를 하나씩 꺼내볼게요. 저는 4년 전 결혼해 지난 연말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이혼하게 된 이유는 남편의 자격지심과 그것을 못 견뎌낸 저의 답답함 때문입니다. 그는 성실하고 우직하지만 공부도 많이 못 했고 내성적이라 펜대 굴리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두려워하며 집안 대소사나, 경제적인 부분들을 다 저에게 맡겼죠. 어느덧 남편은 의지가 안 되고, 상의도 안 되고, 점점 대화도 없어지게 되었죠. 그리고 혼자 된 지 반년. 다시 시작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문득 외로워지면 전남편이 저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납니다. 이렇게 실패한 것이 내 탓이라는 생각도 커지고요. 저의 성장배경도 순탄치는 않았어요.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님과 저에게 당연하다는 듯 많은 걸 요구하는 형제들. 하지만 전 어떤 문제든 나 말고는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며 늘 착한 척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정작 제게 도움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주변 친구들도 시집가서 애 낳고 사니 만날 상대도 변변치 않고 동호회는 나가지만 그때뿐이고 마음속 평화를 느낄 만한 대화 상대가 없다는 게 정말 외로운 것 같아요. 속으로 곪아 있는 것들(나의 결혼 실패, 어릴 적 사랑받지 못한 나, 그리고 착한 척, 괜찮은 척하는 나)을 정말 탈탈 털어내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자꾸 이런 안 좋은 상황들이 내 탓인 것만 같은 자책감에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요?
A 증상이 참 다양하시군요. 일단 자책감에 대해. 이런 안 좋은 상황들이 내 탓인 것만 같은 자책감이 괴롭다고요? 무슨 소리예요. 불가항력인 부분 빼고 그거 대충 내 탓 맞아요! 나 자신을 너무 자학하는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자학하면서도 아무 깨달음이 없는 것을 고민해야지요. 제스처로서의 자책이 아닌, 우울한 감상에 그저 빠져 있는 상태가 아닌, 제대로 후회할 건 후회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서, 나는 진짜로 어떤 인간인지를 파악해 이걸로 향후 인생에 분명한 차이를 줘야 합니다. 큰일을 겪고 나서도 자신의 행동들을 되짚어보지 않고 훌훌 털고 잊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이상하고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착한 사람으로서 늘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다 보면 겉으로는 자학 모드일진 몰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 말고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다’ 싶어 자신에게 냉정하게 못 굴며 방어적이 되기 십상이죠. 상처 받은 마음속을 들쑤시면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빠질 것 같다고요? 아니죠. 염증처럼 부풀어오른 감정들이 가라앉고 생각의 ‘맥’이 조금씩 잡히리라 믿습니다.
분노와 무기력감에 대해. 자기성찰이 끝나도 분노와 무기력감이 남아 있을 땐, 실천이 쉽진 않겠지만 나를 괴롭힌 것들로부터 의식적으로 벗어나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아주 사사로운 것이라도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을 리스트업해서 가능한 한 여러 방법을 시도해야 합니다. 저는 고통에서 사람을 살려주는 것은 어쩌면 속된 욕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뭐든지 좋으니까 사사로운 욕심, 욕망, 욕구, 가령 뭘 먹고 싶다, 사고 싶다, 가고 싶다, 가지고 싶다를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사람은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기를 가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런 행동들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경박한 대리만족일 뿐이라고 무시했는데 지금은 내 ‘리노베이션’ 작업의 강약을 조절해주며 에너지와 자극을 주는 인체의 자연스러운 지혜이자 보존본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히 나를 위해 무엇을 하거나 가지고 싶다는 욕망 - 쉬울 것 같죠? 의외로 안 쉽답니다. 내가 뭘 즐거워하는지 아는 자기파악 능력, 그리고 스스로를 정말로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실천 능력이 있어야 하죠. 내가 나 스스로를 ‘접대’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먼저 대접해주지 못하니까.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 잠 안 오는 밤에는 이 외로움이 영원히 이어지는 게 아닐까 불안해집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남자도 없고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고 보람을 느낄 일도 없고. 하지만 잘 따져보면 외롭다는 기분이 참 씁쓸해지고 비통해지는 건 남과의 비교에서 외로움이 더 격해질 때 그렇게 됩니다. 저 사람은 멋진 애인이나 남편, 말이 잘 통하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한데 난 왜 이 모양이냐 싶으면 외로움은 이내 자기연민과 자학으로 빠져버리지요. 알고 보면 남자친구나 남편,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들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외로움이 있을 텐데요. 그렇다고 이럴 때 누가 와서 손을 뻗으며 구제해주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특히나 희망을 포기하고 피해의식을 느끼며 ‘난 혼자야’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사기꾼 외엔 다가오는 사람 없습니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내 눈으로 찾아내서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밖엔 없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에겐 내가 필요가 없습니까!
누구에게나 ‘안 좋은 시절’이라는 건 있지요. 그 눅눅한 느낌, 저도 잘 압니다. 자책감, 분노, 무기력감, 외로움. 한데 어쩌나요. 정말로 착한 인간들은 자책을 하면서 깊은 성찰을 하고, 화를 바르게 냄으로써 강해지고, 슬픔을 절제하면서 깊어지고, 외로움은 오롯이 나의 것임을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아갑니다. 부디 그 뒤엔 끝난 사랑, 끝난 결혼, 그리고 서글펐던 어린 시절조차도 이젠 놔주시지 않으렵니까?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
고맙다. 좋은 벗이 되어주는 그대여.
알면서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혼자서 혼자 길을 가고 있었을 뿐
시작할 때 너의 말처럼 나에게 처음부터 욕심은 개입되어선 안 되는 것이었어
물론 나도 감당할 수 없는 너라는 존재를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자신이 없었어
지금까지의 연애처럼 상대를 힘들게 안 하고 온전히 좋은 에너지만 주고 싶은데 말이지...
감당할 수 없는 관계는 서로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평행선일 뿐이다.
지나간 시간은 어쩌면 쓸모없는 시간이고 지나간 말도 쓸모없는 말이다.
내가 믿고싶은만큼 믿고 내 식으로 해석해서 만들어온 거짓의 시간일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이 소통하는 시간이었음은 분명한데 왜 나는 답답할까 생각해보면 나의 욕심인 거다.
그래도 마음과 몸이 따로 놀지 않고 그에 충실했을 뿐인것을 누구를 미워하랴.
몸은 마음과 달리,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마음이 제어하지 못할만큼 먼저 가는 녀석이다. 마음처럼 다잡기 힘들지
내가 생각한 틀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깨지 못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못하는 내가 미울 뿐이다.
배우고 성장하게 하면 충분하다. 물론 그래.
힘들어하는 너를 보는 것도 힘들고, 서로가 향해있는 곳과 힘들어하는 이유가 다른 즉, 평행선이라 힘들고.
알면 다친다, 그래 알아가는 건 다치는 일이다. 하지만 알지 않는 것보다 나을지도
삶이란 게, 왜 그럴까?모두다 다들 죽지 못해 살아갈까?
자기의 한계란 게 그렇게 벗어나기 어려운 것인가?
너가 가진 문제들과 비슷한 문제와 경험들이 나에게도 있었어
그래서 내가 많이 무섭고 미웠었어
너처럼 나도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답답한 지금 이순간.
너 스스로도 풀리지 않는 문제라면 말이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거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일지라도.
그래도 내가 너의 힘든 한 순간에 위안을 줄 수 있으면 그거라도 있었으면...
서로 성장하는 관계이자고 했었는데 아프더라도 직시하게 되는 거는 성장하는 거겠지,,,
그거 알려주러 나한테 온 거니?
난 너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겠지 바보처럼! 언젠가 아무렇지도 않을... 잊혀지길 기다리는 시간만큼 아파하며 배우면서.
---- 이렇게 써 놓고 그녀석에게 쓴 편지에는 좋은 말과 위로하는 말만 쓰게 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ㅠ,ㅠ, 헉--
죽을 수도 없는
치욕
피할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견디기 힘들다
자유롭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했고
실제로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함께 한 기억 자체가 괴로움으로 변질되어버릴지 모른다
아니 볼 수도 없는 지금
빨리 이 곳을 떠나는 수밖에 없는 것만 같다
여전히 나는 지적에 수긍하며 항상 잘못한 자로...
종잡을 수 없는 질투와 원망
알면서도
인디밴드, 사무실을 습격하다 |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좋아서 하는 밴드’, 직장인 신청받아 열한차례 사무실 무료 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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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성인남녀에게 놀이문화는 취직 전과 취직 후, 이렇게 둘로 나뉜다. 취직 전에는 뭘 해도 재미있고, 어디를 가도 신이 난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모아 친구들과 엠티도 가고, 금요일 밤이 하얗게 새도록 클럽에서 춤도 추고, 주말이 되면 ‘뭐하고 놀까’ 고민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취직을 하고 나면 신나는 엠티는 지루한 워크숍으로, 클럽에서 지새우던 하얀 밤은 계속되는 야근으로 변한다. 주말이 되면 ‘쉬는 게 최고’라며 집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신입사원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고 나면 놀이란 곧 1차 삼겹살에 소주, 2차 맥주에 노래방으로 결론난다. 그렇게 5년, 10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놀 줄 아는 법을 잊어버린 ‘뼛속까지 직장인’이 된다.
그런데 지금의 김 대리는 5년 전 김 대리가 아니다. 1990년대 말 홍대 인디신 초창기에 대학을 다녔고, 기타 줄도 좀 튕겨봤고, 블러와 오아시스의 첫 내한공연에 제 돈을 주고 갔던 김 대리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고 에어기타를 친다. 김 대리가 이러한데 1986년생인 신입사원은 말해 무엇하랴. 사무실 놀이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사무실 안팎에서 감지된다. 굳이 넥타이를 풀지 않고 클럽에 가서 록밴드의 기타 연주에 환호하고, 삼겹살 회식 대신 사무실에서 공연을 즐기며 간단한 파티를 연다. 회사원들은 더이상 지루하기만 한 넥타이부대가 아니다. esc가 그 현장을 다녀왔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를 계곡 물소리라고 생각하고 연주할게요.” 4인조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 조준호(26)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의 평범한 사무실 빌딩 옥상정원이 계곡물이 흐르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서울 근교의 근사한 계곡으로 변했다.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멈췄고, 어둑어둑하던 하늘은 맑게 갰다. 서울의 빌딩숲 사이로 천천히 노을이 지는 광경까지 눈에 들어왔다. 퇴근을 준비하거나 야근을 시작하려던 이들은 잠시나마 천천히 몸을 흔들며 리듬을 즐겼다. 서울의 사무실을 시원한 계곡으로 바꿔놓은 마법은, 길거리 공연으로 유명한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이하 ‘좋아밴’)가 매달 진행하는 ‘사무실 구석 콘서트’다. 사무실 구석 콘서트는 말 그대로 사무실 구석에서 작은 콘서트를 여는 이벤트로, 신청을 받아 한 달에 두 번씩 ‘좋아밴’이 직접 신청자의 사무실로 찾아가 무료로 공연을 펼친다. 3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열한차례의 콘서트를 진행했다.
텅빈 사구실 구석서 야근으로 지친 직장인에게 위로 사무실에 찾아가 작은 콘서트를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미국의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시작했다. “미국 엔피아르(NPR)라는 방송국에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구요. 밴드를 방송국 사무실로 초대해 콘서트를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작은 사무실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록밴드도 어쿠스틱 편성으로 공연을 해요. 그걸 보고 악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공연을 하는 ‘좋아밴’에게 딱 맞는 형식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 아이디어를 살려서 저희가 직접 찾아가는 사무실 구석 콘서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거리공연을 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무실 같은 실내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밴드의 바람도 이 콘서트의 탄생에 한몫했다. 사무실 구석 콘서트 신청 페이지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야근으로 지쳐가고 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직장인들,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사무실 한켠에 약간의 공간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저희들은 그곳에 짐을 풀고 공연을 해볼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좋아밴’의 팬들이 주로 신청을 했지만, 몇 달이 지난 요즘은 ‘좋아밴’을 모르는 이들도 사무실 구석 콘서트에 대한 설명을 보고 신청을 한다. “열 차례 정도 공연을 진행하고 나니 직종별로, 또 사무실별로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도 느껴요. 분명 큰 회사인데 대부분 퇴근하고 많지 않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소규모 회사인데 공연 소식에 주변 회사 직원들까지 함께해 50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한 경우도 있어요. 또 프로그래밍 회사의 경우에는 공대 출신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표현에 익숙지 않고요. 반면 동화책 등을 만드는 출판사는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였죠. 사무실마다 다 다르고 저마다 특징이 있지만 좋은 공연을 만드는 건 전적으로 저희의 실력에 달렸다는 것도 알아가고 있어요.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이제는 제법 안정됐어요. 아직까지는 서울에서만 진행하는데 안정되면 서울이 아닌 지방에도 가서 사무실 구석 콘서트를 해보고 싶어요.”
회사 옥상정원에서 펼쳐진 한여름밤의 콘서트 열한번째 사무실 구석 콘서트가 열린 곳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출판사. 콘서트가 열린 지난달 28일 오후 6시. 삼성출판사 옥상정원은 공연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의 손길로 부산스러웠다. 콘서트를 위해 작은 플래카드를 만들어 걸고, 의자와 식탁을 배치했다. 엘리베이터에 콘서트를 알리는 작은 포스터도 붙였다. 이번 사무실 구석 콘서트를 신청한 사람은 삼성출판사 뉴미디어팀의 정지우씨. “이런 콘서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팀 사람들이 모두 함께 보고 싶어해서 신청하게 됐어요. 일하다 보면 바빠서 콘서트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시간도 없잖아요. 한여름 밤에 회사 옥상정원에서 콘서트를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신청서를 보냈죠.” 6시30분이 되자 30여명의 삼성출판사 직원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시작해 볼까요?”라는 조준호씨의 외침과 함께 콘서트가 시작됐다. 거리공연을 주로 하는 밴드답게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첫 곡 ‘신문배달’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옆에 두고 아직은 낯선 시선으로 ‘좋아밴’의 악기를 살펴보고, 공연하는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렇게 몇 곡이 지나가자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리듬에 맞춰 박수도 치고 발로 박자를 맞추며 웃었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도 들려왔다. 어느새 ‘치이’ 하고 맥주 캔 따는 소리와 종이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팀장 허락 받고 왔어?’라며 속삭이는 소리가 ‘좋아밴’의 퍼커션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또다른 리듬을 만들어냈다.
맥주와 치킨이 배달되면 공연은 절정을 향하고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좋아밴’ 멤버들의 수다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관객들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도중에 자리를 뜨는 이들도 있었고, 중간에 합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누구의 발걸음도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딱 하나 신경 쓰인 이들이 있다면, 콘서트 도중 멋쩍게 들어온 치킨과 피자 배달원들. “마지막 곡입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40여분간의 콘서트는 막이 내릴 뻔했지만, 역시나 이어진 ‘앙코르’ 요청에 ‘여행의 시작’이라는 곡을 연주했고, ‘좋아밴’의 노래에 화음을 맞추며 짧은 콘서트는 진짜 막을 내렸다. 물론 그다음 일정은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자와 치킨. 관객에서 회사원으로 돌아온 이들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음식을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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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승부는 통했다
터질 때가 되니 터져나오는 것이 삶이었어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그렇게 털어놓았어
이제 시작이야
이젠 너와 할 차례야
너와, 그런데
가족처럼... 조건도 기대도 사심도 없는 마음이라면 어떤 고민도 없을 텐데 말이야...
그 어떤 두려움과, 잼과 이성... 등.... 뭔가 걸리는 것들
내 스스로 입이 잘 열리지 않아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여정을 가고 있어
밑바닥까지 살펴야지
그래, 그래
그리고, 네가 행복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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