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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1
    인디밴드, 사무실을 습격하다
    씨앗(산길)

인디밴드, 사무실을 습격하다

인디밴드, 사무실을 습격하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좋아서 하는 밴드’, 직장인 신청받아 열한차례 사무실 무료 콘서트
 
 
한겨레  
 
 
» 지난 7월28일 서울시 서초구 삼성출판사 옥상정원에서 ‘좋아서 하는 밴드’의 열한번째 사무실 구석 콘서트가 열렸다. 40분 남짓 이어진 공연 내내 직원들은 박수치고 노래하면서 특별한 공연을 맘껏 즐겼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인남녀에게 놀이문화는 취직 전과 취직 후, 이렇게 둘로 나뉜다. 취직 전에는 뭘 해도 재미있고, 어디를 가도 신이 난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모아 친구들과 엠티도 가고, 금요일 밤이 하얗게 새도록 클럽에서 춤도 추고, 주말이 되면 ‘뭐하고 놀까’ 고민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취직을 하고 나면 신나는 엠티는 지루한 워크숍으로, 클럽에서 지새우던 하얀 밤은 계속되는 야근으로 변한다. 주말이 되면 ‘쉬는 게 최고’라며 집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신입사원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고 나면 놀이란 곧 1차 삼겹살에 소주, 2차 맥주에 노래방으로 결론난다. 그렇게 5년, 10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놀 줄 아는 법을 잊어버린 ‘뼛속까지 직장인’이 된다.

그런데 지금의 김 대리는 5년 전 김 대리가 아니다. 1990년대 말 홍대 인디신 초창기에 대학을 다녔고, 기타 줄도 좀 튕겨봤고, 블러와 오아시스의 첫 내한공연에 제 돈을 주고 갔던 김 대리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고 에어기타를 친다. 김 대리가 이러한데 1986년생인 신입사원은 말해 무엇하랴.

사무실 놀이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사무실 안팎에서 감지된다. 굳이 넥타이를 풀지 않고 클럽에 가서 록밴드의 기타 연주에 환호하고, 삼겹살 회식 대신 사무실에서 공연을 즐기며 간단한 파티를 연다. 회사원들은 더이상 지루하기만 한 넥타이부대가 아니다. esc가 그 현장을 다녀왔다.

 
» 지난 7월28일 서울시 서초구 삼성출판사 옥상정원에서 ‘좋아서 하는 밴드’의 열한번째 사무실 구석 콘서트가 열렸다. 40분 남짓 이어진 공연 내내 직원들은 박수치고 노래하면서 특별한 공연을 맘껏 즐겼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를 계곡 물소리라고 생각하고 연주할게요.”

4인조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 조준호(26)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의 평범한 사무실 빌딩 옥상정원이 계곡물이 흐르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서울 근교의 근사한 계곡으로 변했다.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멈췄고, 어둑어둑하던 하늘은 맑게 갰다. 서울의 빌딩숲 사이로 천천히 노을이 지는 광경까지 눈에 들어왔다. 퇴근을 준비하거나 야근을 시작하려던 이들은 잠시나마 천천히 몸을 흔들며 리듬을 즐겼다.

서울의 사무실을 시원한 계곡으로 바꿔놓은 마법은, 길거리 공연으로 유명한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이하 ‘좋아밴’)가 매달 진행하는 ‘사무실 구석 콘서트’다. 사무실 구석 콘서트는 말 그대로 사무실 구석에서 작은 콘서트를 여는 이벤트로, 신청을 받아 한 달에 두 번씩 ‘좋아밴’이 직접 신청자의 사무실로 찾아가 무료로 공연을 펼친다. 3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열한차례의 콘서트를 진행했다.

 

 




텅빈 사구실 구석서 야근으로 지친 직장인에게 위로

사무실에 찾아가 작은 콘서트를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미국의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시작했다. “미국 엔피아르(NPR)라는 방송국에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구요. 밴드를 방송국 사무실로 초대해 콘서트를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작은 사무실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록밴드도 어쿠스틱 편성으로 공연을 해요. 그걸 보고 악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공연을 하는 ‘좋아밴’에게 딱 맞는 형식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 아이디어를 살려서 저희가 직접 찾아가는 사무실 구석 콘서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거리공연을 주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무실 같은 실내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밴드의 바람도 이 콘서트의 탄생에 한몫했다.

사무실 구석 콘서트 신청 페이지에는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야근으로 지쳐가고 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직장인들,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사무실 한켠에 약간의 공간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저희들은 그곳에 짐을 풀고 공연을 해볼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좋아밴’의 팬들이 주로 신청을 했지만, 몇 달이 지난 요즘은 ‘좋아밴’을 모르는 이들도 사무실 구석 콘서트에 대한 설명을 보고 신청을 한다.

“열 차례 정도 공연을 진행하고 나니 직종별로, 또 사무실별로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도 느껴요. 분명 큰 회사인데 대부분 퇴근하고 많지 않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소규모 회사인데 공연 소식에 주변 회사 직원들까지 함께해 50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한 경우도 있어요. 또 프로그래밍 회사의 경우에는 공대 출신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표현에 익숙지 않고요. 반면 동화책 등을 만드는 출판사는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였죠. 사무실마다 다 다르고 저마다 특징이 있지만 좋은 공연을 만드는 건 전적으로 저희의 실력에 달렸다는 것도 알아가고 있어요.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이제는 제법 안정됐어요. 아직까지는 서울에서만 진행하는데 안정되면 서울이 아닌 지방에도 가서 사무실 구석 콘서트를 해보고 싶어요.”

 
 
» 지난 7월28일 서울시 서초구 삼성출판사 옥상정원에서 ‘좋아서 하는 밴드’의 열한번째 사무실 구석 콘서트가 열렸다. 40분 남짓 이어진 공연 내내 직원들은 박수치고 노래하면서 특별한 공연을 맘껏 즐겼다.
 

회사 옥상정원에서 펼쳐진 한여름밤의 콘서트

열한번째 사무실 구석 콘서트가 열린 곳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출판사. 콘서트가 열린 지난달 28일 오후 6시. 삼성출판사 옥상정원은 공연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의 손길로 부산스러웠다. 콘서트를 위해 작은 플래카드를 만들어 걸고, 의자와 식탁을 배치했다. 엘리베이터에 콘서트를 알리는 작은 포스터도 붙였다. 이번 사무실 구석 콘서트를 신청한 사람은 삼성출판사 뉴미디어팀의 정지우씨. “이런 콘서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팀 사람들이 모두 함께 보고 싶어해서 신청하게 됐어요. 일하다 보면 바빠서 콘서트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시간도 없잖아요. 한여름 밤에 회사 옥상정원에서 콘서트를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신청서를 보냈죠.”

6시30분이 되자 30여명의 삼성출판사 직원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시작해 볼까요?”라는 조준호씨의 외침과 함께 콘서트가 시작됐다. 거리공연을 주로 하는 밴드답게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첫 곡 ‘신문배달’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옆에 두고 아직은 낯선 시선으로 ‘좋아밴’의 악기를 살펴보고, 공연하는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렇게 몇 곡이 지나가자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리듬에 맞춰 박수도 치고 발로 박자를 맞추며 웃었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도 들려왔다. 어느새 ‘치이’ 하고 맥주 캔 따는 소리와 종이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팀장 허락 받고 왔어?’라며 속삭이는 소리가 ‘좋아밴’의 퍼커션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또다른 리듬을 만들어냈다.

 
 
» 지난 7월28일 서울시 서초구 삼성출판사 옥상정원에서 ‘좋아서 하는 밴드’의 열한번째 사무실 구석 콘서트가 열렸다. 40분 남짓 이어진 공연 내내 직원들은 박수치고 노래하면서 특별한 공연을 맘껏 즐겼다.
 

맥주와 치킨이 배달되면 공연은 절정을 향하고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좋아밴’ 멤버들의 수다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관객들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도중에 자리를 뜨는 이들도 있었고, 중간에 합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누구의 발걸음도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딱 하나 신경 쓰인 이들이 있다면, 콘서트 도중 멋쩍게 들어온 치킨과 피자 배달원들. “마지막 곡입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40여분간의 콘서트는 막이 내릴 뻔했지만, 역시나 이어진 ‘앙코르’ 요청에 ‘여행의 시작’이라는 곡을 연주했고, ‘좋아밴’의 노래에 화음을 맞추며 짧은 콘서트는 진짜 막을 내렸다.

물론 그다음 일정은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자와 치킨. 관객에서 회사원으로 돌아온 이들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음식을 나눠 먹었다.

 

 

 

 
» 〈좋아서 하는 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

조준호(노래하는 퍼커셔니스트·26), 안복진(아코디언 치는 피아니스트·24), 백가영(베이시스트·23), 손현(기타 치는 베이시스트·29)으로 이뤄진 4인조 밴드. 2008년 4월 첫 공연을 시작한 이후 전국을 돌며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다. 2009년 4월 첫번째 이피(EP) <신문배달>을, 2010년 5월에는 두번째 이피(EP) <취해나보겠어요>를 발매했고 2009년 12월에는 이들이 전국을 누비며 거리공연을 하는 여정이 담긴 <좋아서 만든 영화>를 개봉했다.

 

사무실 구석 콘서트

‘좋아밴’ 누리집(joaband.ba.ro)에서 신청하면 된다. 간단한 사연을 남기면 매달 두 명을 뽑아 직접 사무실로 찾아간다. 아래 신청 조건을충족한다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① 사무실 구석에 좋아밴 4명이 나란히 앉을 정도의 공간이 있다.

② 6시에서 7시 사이에 공연을 시작하면 관람을 할 인원이 15명 이상 있다.

③ 40분 정도의 공연은 야근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④ 시디를 팔아도 된다.

⑤ 우리 사무실에서 공연하면 쫓겨나지는 않게 해줄 수 있다.(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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