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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증처럼 마음 속에 쌓여있는 답답함과 분노와 아픔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걷고, 기록하고, 마음에서 잊지 않는 것 밖에 ---

 

아픈 마음으로 만난 4대강 현장... 영산강을 따라 걷다
10.03.09 21:46 ㅣ최종 업데이트 10.03.10 21:55  dmsdlv)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말로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면서 마음 속에서 잠시 치워두었던 것은 그 사안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전 백수가 되어 시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신문을 열심히 구독하게 되었고 하루 걸러 한 번씩 4대강의 문제점을 깊이 다룬 기사들을 보게 됐습니다.
 
점차 내 마음 속에 지금의 공사상황에 대한 궁금증과 답답함이 커지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영산강 도보순례에 대한 내용을 보았고 '그래 영산강으로 가자' 결심했습니다.
 
  
▲ 신성리 이장님의 말씀을 듣는 참가자들 주민으로서 겪은 피해와 앞으로 우려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 김하나
4대강

 

보트로만 탐사했을 뿐 내 발걸음으로 영산강과 만나본 적은 없던 터였습니다. 지난 1일, 나주시 다시면 석관정에 도착하니 광주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실무자,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성당 신도들이 출발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의 상황만큼이나 날씨도 좋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맞고 걸으며 강변을 둘러보니 덤프트럭 10-20대 가량 움직이며 쉴 새 없이 흙을 실어나르고 있었습니다. 물길 우회 공사, 준설 작업, 작업한 토사를 야적하기 위해 덤프트럭 여러 대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에서 보았던 로봇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 죽산보 공사 현장 물막이 공사와 물길 우회공사가 진행중이다.
ⓒ 김하나
4대강

 

비가 오는 날도 공사는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가한 사람들은 나주시 죽지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30분경 죽산보 공사현장에 다다랐습니다. 죽산보에서는 보를 건설하기 위해 물길을 돌리고 물막이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을 이렇게 헤집어놓을 줄 상상하지 못했기에 눈 앞에 펼쳐진 공사현장은 충격이었습니다.

 

정부에서는 홍수예방, 물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 강 옆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말은 이와 배치됩니다. 참가자들은 신석리 이장님으로부터 지역 주민 입장에서 보는 공사의 문제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보리밭이 침수피해를 입었고 공사가 진행되고 나면 수위가 높아져서 피해가 더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일 터인데 정부의 눈에는 이 침수피해에 대한 것이 그저 간과해도 될 하찮은 일일까요? 정부가 내세우는 목적과 다른 진짜 목적은 수심 6m 확보와 수로 폭 확보 즉, 운하 건설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래로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무자비한 준설을 진행하고, 위로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보를 만드는 것이지요.

 

  
▲ 논길을 걷는 참가자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원, 천주교 신도, 광주환경연합 활동가 및 회원, 시민들이 강을 바라보며 걷고 있습니다.
ⓒ 김하나
4대강

 

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강을 틀어막아서는 안 되고 흐르게 두어야 할 터이지만,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러한 상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입니다. 4대강 사업에 투입되는 총 예산은 22조이며 이 중 영산강에 투입되는 예산이 2조8천억이고 죽산보 공사는 영산강 공사현장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1500억이 투입된다고 합니다.

 

4대강 사업은 전국적으로 내년까지 제반 공사를 마쳐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보를 건설하게 되면 수위는 홍수 발생시 지금보다 2-3m 정도 높아져 침수피해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 승촌보 공사현장 보를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먼저 물막이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 김하나
4대강

 

현장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광주환경운동연합 임낙평 의장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다른 지역 공사현장과 속도를 비교해서 독촉하려는 목적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공사를 하기 전 환경영향평가와 수리모형실험을 거쳐야만 하는데 이것을 생략하고 강행하고 있는 것 또한 졸속으로 진행된다는 증거입니다.

 

걷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걷고 있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 있을까요. 영산강을 걷는 걸음은 그 후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7일에는 광주환경연합 소속 소모임인 광주천 지킴이 모래톱 회원들의 승촌보 공사현장~영산포 구간 답사에 동행했습니다. 

 

4대강 사업 일환으로 영산강에 설치되는 보는 2개로 각각 죽산보와 승촌보인데 이날 걸은 곳이 바로 승촌보 공사현장을 포함한 구간입니다. 오전 9시경 용산마을에서 출발하여 승촌마을로 들어서니 미나리꽝이 펼쳐지고 그 곳에서는 어머니, 아버지들께서 물장화를 신고 한창 작업 중이었습니다.

 

  
▲ 미나리 채취 중인 마을 어머니들 이 곳은 광주지역에서 유통되는 미나리의 70%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한다. 하천에 인접한 곳이기 때문에 미나리를 재배하기 좋은 조건으로 생산량도 많고 마을의 안정적인 소득원이다.
ⓒ 김하나
4대강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나리꽝은 광주 지역의 70%이며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면 이 곳도 침수될 계획이며, 승촌마을은 저지대이기 때문에 공사를 통해 수위가 높아지면 침수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어서 마을과 강 사이에 제방을 높게 설치할 것이라고 합니다. 강과 단절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곳곳에 만들어진 하중도도 물에 잠겨버립니다. 마을주민들은 대부분 반대하고 있으나 무서워서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승촌보 공사현장 역시 죽산보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를 건설하고, 2500톤급 바지선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기본 수심을 4.5m로 유지하고, 수위를 11~12cm 정도 유지할 계획으로 공사를 진행 중이므로, 이름만 보일뿐, 규모는 댐에 가깝다고 합니다.

 

걷는 내내 마음이 콱콱 막혀 왔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르는 풍경들을 마음에 새기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었습니다. 광주땅을 지나 나주에 들어서서 걷다보면, 아름다운 하중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 나주지역 강변에 조성된 하중도와 유채꽃밭 강 가운데에 있는 하중도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나주시에서 조성한 유채꽃밭이 있다.
ⓒ 김하나
4대강

 

강 가운데에 만들어진 하중도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강변쪽에는 나주시에서 유채꽃밭을 조성해 놓았지만 공사가 계속 진행되면 내년이면 이곳도 볼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광주하수종말처리장 인근의 습지도 없어지게 될 것이고, 멀게는 영산강 상류 담양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강은 물만 흐르는 곳이 아니라 그 물에 깃들어 물고기와, 풀과 나무, 새들이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사람이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흘러 만들어온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려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현재 4대강별로 각각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이 진행 중이며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현장답사, 소송, 시민홍보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라지고 난 후 미래 세대들에게 어떤 자연을 남겨줄 것인지. 어떠한 말과 글로 이 아픈 마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4대강 막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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