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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Abdul Ghaffare 이 한국을 떠났다.
8월 18일 오전 9시 대한민국 김해 공항 출발, 방콕 경유, 파키스탄 가라치 도착.
우리는 그를 큰 가팔이라고 불렀다. 가팔이 두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키가 작은 가팔은 작은 가팔, 키가 큰 가팔은 큰 가팔이라고 불렀다. 큰 가팔이 갔다.
그가 출국한 후, 며칠이 지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큰 가팔도 갔고, 많은 내 친구들이 갔다는 걸.
98년 1월이었다. 안양 이주노동자의 집에서 자원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 문이 빼꼼히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턱수염이 더부룩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랍에서 방금 온 듯한 아저씨. 월급을 못 받았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강원도 사투리가 섞인 것도 같고, 영어를 섞어서 쓰는 것도 같고. 조카랑 같이 일을 했는데, 사장이 돈을 안주고, 깔아놓은 돈은 얼마고, 빨간 날 일한 건 어떻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도 지금이라면 열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상담내용을 A4용지로 앞 뒤 빼곡하게 두장을 주저리주저리 썼다.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무스타파 아저씨였다.
며칠 후 무스타파 아저씨는 같이 월급 못 받은 조카라며 ‘분명히’ 서부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작은 가팔이었다.
“손용(선영), 내가 이름 줄께. 쏘냐. 어때?”
“쏘냐? 무슨 뜻이에요?”
“골드”
그날부터 나는 쏘냐가 되었고, 작은 가팔은 어느 날 큰 가팔이라며 또 다른 가팔을 데리고 왔고, 왈리, 아쉬팍, 라주, 야신, 카슴, 후세인, 알리를 만나게 되었다.
짙은 눈썹에 콧수염, 턱수염으로 한참 아저씬 줄 알았던 작은 가팔은 알고 보니 스물 다섯, 나와 동갑이었고, 우리는 말을 트고 ‘친구야~’ 가 되었다. 후까시 맨 라주는 다들 도망가 버린 내 한글 수업에 신기하게도 끝까지 남아있던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라주는 또박또박 한글로 쓴 이름이 가득한 다이어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백화점 앞에서 “커피 한잔 할래요?”라며 받아낸 여자들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아~ 이 흐뭇한 한글수업의 성과여! 모두가 독실했지만, 그 중 가장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야신은 나를 앉혀 놓고 몇 시간이곤 알라와 코란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를 불쌍히 여겼다. 무뚝뚝하고 목소리 크고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의 큰 가팔이 파키스탄에 있는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를 받고, 기도를 하다가 대성통곡을 했다.
공장에서 돌아온 친구들은 “내가 기계야, 사람이야?”라면서 어깨를 으쓱했고, 그럼 또 “너 몰랐어? 넌 기계야”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그러면 모두들 넌 프레스기계, 넌 무슨 기계 하나씩 이름을 붙여주고 왁자지껄 떠들며 웃었다. 일자리가 없어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살다가, 선반에서 잠자던 작은 가팔이 떨어져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슈-욱 다이빙 했다며 작은 가팔은 웃었다. 벼룩시장을 보고 찾아간 공장에서 다짜고짜 반말인 사장을 함께 만났고, 방을 구하려고 전화한 집주인에게 ‘외국사람인데요’라며 마치 뭔가 꿀린 사람이 되어 얘기하기도 했다.
그 해 여름, 나는 학교를 간다고 집을 나와 이주노동자의 집으로 갔고, 수 백 장의 루띠를 먹었고, 무스타파 아저씨와 신나게 춤추고, 힘들 때면 “쏘냐, 이게 인생이야”라는 작은 가팔의 위로를 받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들 중 한글반 학생 라주를 포함한 몇몇은 작업에 성공하여 한국에서 결혼을 했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단속으로 추방되거나 스스로 돌아갔다. 8월 18일 Mr. Abdul Ghaffare, 큰 가팔의 출국으로 난 이제 모두 없다는 걸 참 빨리도 깨달았다. 그리고 다들 너무나 보고 싶었다.
“쏘냐, 요즘도 데모해? 너 어쩌려고 그래?”
“돈도 벌어야지, 말이야”
“어머니, 아버지가 니 걱정 안 해?”
작은 가팔의 목소리가, 큰 가팔의 걱정이 귓가에 윙윙거린다.
바보. 데모 시작하게 만든 게 누군데.
나 원 참.
아, 보고 싶은 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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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쏘냐, 네 이름이 여기서 왔구나.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겠다.
네가 왜그렇게 긴 투쟁을 하는지 이제 처음 마음으로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쏘냐, 그 소설을 어서 써 달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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