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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수다

 

내가 아는 그녀와 그.

그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마음을 갖게 된 건 2001년 메이데이 전야제 때였다고 한다. 새벽까지 밤을 새우며 투쟁가를 부르고, 발언을 하고, 구호를 외치던 그 밤, 얇은 옷을 입은 그가 너무 추워 보여 그녀는 자신의 옷을 주었고, 그는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무대에서 투쟁 마임을 했고, 그녀는 그를 카메라에 담았다.


또 다른 그녀와 그.

이 두 사람은 차가운 명동바닥에서의 기나긴 투쟁 속에서 사랑을 키워갔다. 그녀는 밤새 쏟아지는 빗속에 꼿꼿이 서서 출입국관리소 정문 앞을 지켰고, 그는 잡혀간 동지를 구출하기 위해 한겨울에 30일이 넘는 단식투쟁을 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이 그려진 작은 편지를 전해줬고, 그의 새로 산 핸드폰에는 그녀의 사진이 가득해졌다. 


두 커플 모두 2004년에 흔히들 말하는 국제결혼을 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무너질 듯 아픈 날들을 지나 법무부의 몰상식한 폭력 인터뷰를 넘어 감격의 만남에 이르는 과정을 거쳐서 말이다. 지난 토요일, 나는 나의 동지이자 친구인 이 여인들을 만났다.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남편들을 방치한 채, 유쾌한 수다에 시간가는 줄 몰랐던 그 날 밤, 나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 국가와 법이라는 이름으로 낱낱이 까발려지고 난도질당해야 했던 그 경험에 숨이 턱턱 막혀왔고, 어렵고 힘든 나날들을 견뎌낸 그들의 당당한 사랑에 한없이 겸허해졌다.


국가는 이들의 결혼에 대해 말했다.

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불법체류자와 결혼하느냐?

이 결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냐?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디까지 간거냐?

그리고 고맙게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표시하며 간간히 안부 전화도 잊지 않는다.

전세방은 어디에 얻었는지, 둘 관계가 별 문제가 없는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또 때로는 뜬금없이 일터에 찾아와 묻기도 한다.

알 카에다와 관계가 있느냐? 혹시 주변에 알 카에다 조직원이 있으면 알려줘라.


나 원 참, 황당하고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법무부가 벌이고 있는 이 엽기적인 행각은 비자를 발급한다는 권력을 이용해 벌이는 인격모독과 사생활침해이며 때로는 성폭력에 이른다. 그동안 법무부 인터뷰 과정에서 수 많은 커플들이 겪어야 했을 인격적인 모멸감과 분노를 떠올리니 피가 불끈불끈 치솟는다.

자국민 여성의 보호 및 출입국관리를 위한 그들의 감시와 통제는 대한민국이 대대로 이어왔다고 자부하는 단일혈통주의를 고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회의 혈통이 순종 남성의 피로 이어지고 있으며, 여성을 함부로 내돌려서는 안된다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다른 민족 남성의 피는 피부색과 국가의 경제력으로 차등 지어지고, 체류자격으로 분류되어지며 ‘좋지 않은 피’에 대해서는 ‘엄격한’ 절차를 요구하는 인종차별을 추가한다. 이러한 사고에 기반한 그들의 행정은 그 알량한 권력을 마구 휘둘러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나는 이 여인들이 법무부를 드나들면서 가슴한편의 불안과 또 한편의 솟구치는 분노를 안고 헤쳐 왔을 그 길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지금의 남편을 처음 본 어머니가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을 극복해야했고, 때로는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로부터의 냉랭한 시선도 넘어야 할 산 이었다. 하지만,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투쟁 속에서 동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알콩달콩 예쁘게 또 때로는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아가는 두 친구의 당당함이 이 땅의 견고한 체제를 파탄내기 위한 또 하나의 행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출입국을 쳐부숴야 한다며 유쾌하게 수다 떨 수 있었고, 더디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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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방송국에 보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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