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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소식3- 헉 동지

헉 동지를 처음 본 것은 2002년 쯤이 아니었나 싶다.

집회 대오 가운데서 유난히 한국말로 된 구호를 유창하게 했던 모습이었다.

 

다른 동지들보다 한국에 있었던 기간도 길고,

유독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헉 동지.

어떤 큰 집회에 올릴 촌극의 극본을 직접 한국어로 쓰기도 했는데

촌극에 나오는 주변 인물 중, 공장의 여성 경리직원에 대한 극중 역할에 대해

한참을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사장들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다, 그래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냐

뭐 등등의 내용이었으리라.

 

헉 동지는 2004년 1월 9일,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 집회에서 깨비 동지와 함께 연행되었다.

출입국 직원 서너명에게 질질 끌려가는 그 장면이 연합 사진기자한테 찍혀 지금도 인터넷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다.

헉 동지는 외국인 보호소에서 100일 넘게 구금된 동안 자신의 심정을 일기와 시로 꼼꼼이 기록했고, 그 다이어리를 농성단에게 전해주고 4월 26일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 다카 ZIA International airport >

 

한국처럼 야간 생활을 하기 어려운 방글라데시

해가 뜨면 하루의 일과를 빨리 시작해야 하고,

오후 5시 해가 질 때 쯤 하루의 일을 마무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카의 세계적인 인구밀도와 교통 체증 그리고 정치 파업으로

한달을 머물렀지만, 못 가본 곳도 너무 많고 늘 빠쁘게 쫓겨 다녀야 했다.

 

그래서 헉 동지와도 잠깐 밖에 만날 수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사람들은 가방 끈이 긴 그를 '마스터 헉' 이라고 불렀었는데

그곳에서 고등 학생들에게 수학 과외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간간히 한국어 통역 아르바이트도 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할 계획도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고

헉 동지 생활이 많이 어렵다고 다른 동지들은 이야기 했다.

 

지난 유월에 결혼했다며, 주름 가득한 웃음을 짓던 헉 동지에게

집에 꼭 놀러가겠다고 해 놓고서는 결국 난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내가 출국하는 날 헉동지가 공항에 나왔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경찰들의 검문 검색이 심해 일반 사람들은 공항 근처에 오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참 미안할 따름이었다.

 

" 다음에 올 때는 한국 동지들 좀 많이 데리고 와요. 다 보고 싶은데..."

" 아니, 온다고 했던 사람들 많은데 왜 다들 안 오는 거에요?"

 

보호소에 면회를 갈 때마다, 아님 함께 연대 투쟁을 하면서 동지들이 했던

'꼭 방글라데시에 가겠다" 는 약속을 왜 안 지키냐는 항의성 발언에는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또 한국에 있는 동지들에게 말했다.

"강력하게, 더 열심히 투쟁합시다! 동지들"

 

아, '마스터 헉' 동지의 허허 웃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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