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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도 씹지 말아야 한다.

얼마전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역의 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닥 무거운 것도 아닌데 누군가 뒤에서 들어주겠다고 했다.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아무 대꾸도 없이 슬쩍 뒤에서 들어준다.

언뜻 돌아보니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온 듯한 젊은 청년이었다.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계단에 올라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그는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총총히 갈길을 간다.

 

문득 그의 도움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를 들고 올라가는 내가 안타깝게 느껴져서

혹은

내가 여자이고 자신은 힘센 남자라는 생각으로

혹은

이전에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올라본 경험이 있어서

혹은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이유로

그저 잠시 도움을 준 것 뿐일 수도 있지만

 

내 상상력은 서글픔으로 되돌아와 한참을 생각하게 했다.

 

언젠가 영국에서 만난 어린 한국 친구가,

영국에서 몇년간 생활하며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그 친구가 말하길,

자신은 길에 버려진 한국 담배 꽁초나 담배갑은 보이면 다 줍는다고 했다.

한국사람들 욕먹는거 싫어서요.

라고 했었다.

유달리 예의바르고 성실한 그 친구의 태도에서 느껴졌던 애처로움 같은 것.

그런 서글픔이었나 보다.

 

가만히 있어도 욕먹는 사람들은

도덕적이지 못하면 죽일놈이 되고

조금이라도 남들 보기에 착한일을 하게 되면

그 존재에도 불구하고 라는 수식어를 단채 조금 칭찬을 듣거나 중간은 가나보다.

그래서 사회적인 존재 자체로 욕먹기 좋은 사람들은 알아서 조심하게 된다.

지하철에선 더 열심히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인사도 더 잘 해야 하고

누군가 시비를 걸어도 참고 넘어가야 한다.

아주 착해져야 욕먹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나도 알아서 조심했어야 했나보다.

마을버스와 접촉 사고가 났던 날,

'확실히' 정차해있던 우리차를 좌회전 하던 마을버스가 긁었는데도 불구하고

접촉사고로 발이 묶여버려 화가난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리며 나에게 화풀이를 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한 몇몇 사람들의 목소리

 

저 여자 말하는거 대단하네.

저 여자 껌씹으면서 운전하면서

저 여자

저 여자

저 여자 

 

다짜고짜 소리치는 운전사 아저씨에게

항의를 하고 내 입장을 주장한다는 이유로도

껌을 씹고 운전을 하고 말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도

나는 충분히 욕을 먹을 수 있었다.

으악~

 

욕먹기 좋은 사람들은

착해져야 하고 온순해져야 하고

껌도 씹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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